[Review] 영웅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은 – 연극 ‘용의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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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불문하고 영웅 이야기는 인기가 많다. 영웅은 난세에 나타나 악의 무리와 부패한 지배층으로부터 이 세상을 구하고 민중의 편에 선다. 이야기 듣는 사람의 통쾌함과 즐거움을 극대화하기 위해 대부분의 영웅 이야기 속 인물은 전형적인 모습이다. 영웅은 비범하게 태어나 역경과 고난을 딛고 비로소 영웅으로 거듭난다. 영웅과 대치하는 악은 뚜렷한 캐릭터성 없이 영웅의 활약을 돋보이게 하는 ‘기능’으로 존재한다. <오디세이>의 오디세우스는 모두 알지만 그가 어떤 적과 맞서 싸우는지 자세히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고려 말의 영웅, 김통정
고전 같은 옛이야기를 할 때 영웅이야말로 호불호 없이 내세울 수 있는 주인공이다. 제11회 산울림 고전극장 개막작인 <용의 아이>도 김통정이라는 영웅을 주인공 삼는다. 물론 김통정은 역사에 기록된 실존 인물이지만, 연극의 이야기는 제주도 신화인 ‘김통정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여 전개 과정에서 한층 더 환상적인 요소가 많이 개입한다는 게 특징이다.
우리의 영웅 김통정이라는 사내는 몽골과 전쟁 중인 고려에서 몽골 장수의 목을 밴 김천지의 아들로 태어난다. 그러나 그가 태어나기 전에 아버지는 전사하고, 홀로 남은 어머니는 아기를 살리기 위해 동굴에 숨겼다. 김통정은 그 동굴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지만, ‘사람으로 태어나 괴물로 죽을 운명’이라는 신탁을 받는다. 그 후에는 으레 영웅이 그렇듯 양아버지 밑에서 보통 인간과는 다른 비늘과 엄청난 힘을 숨기고 성장한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에 도적떼가 쳐들어온다. 이들에게서 마을을 지키려던 김통정은 실수로 괴력을 발휘하고, 금세 소문이 퍼져나간다. 김통정의 존재와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몽골은 고려 왕실과의 합작으로 그를 죽이려 한다. 자신 때문에 자신을 길러준 가족이 죽었음을 알고 자포자기 상태에 있던 그에게 삼별초의 대장이 찾아온다. 김통정이 삼별초에 합류하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앞으로 나아간다.
이처럼 김통정에게 초점을 맞추면 이 연극은 보편적인 영웅 이야기로 읽힌다. 비범하게 태어나 큰 힘을 가진 인물이 가족을 잃는 역경을 겪고, 삼별초의 대장으로 거듭나기 때문이다. <용의 아이>는 영웅의 이야기를 무대화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가 영웅으로 거듭나기까지 계속 대립하는 김방경이라는 인물에도 초점을 맞춰본다. 많은 영웅 이야기 속에서 영웅의 반대편에 있는 존재는 영웅을 빛나게 하기 위한 역할이었을 뿐,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본 적이 없다. 그에게 빛을 비추면 무엇이 반사되어 보일까.
스스로 ‘가장 더러운 인간’이 되기를 택한 김방경
영웅의 반대편에 서 있는 김방경은 어떤 인물인가. 자비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악의 핵심으로 보이지만, 의외로 정이 깊은 구석이 있다. 자기 사람이라 여기는 소수에게 강한 애착을 가진 인물이기도 하다. 삼별초를 따라 떠난 딸 여월의 소식을 알기 위해 자신의 한쪽 팔을 바치는 것도 마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애착이 김방경을 더욱 잔혹한 사람으로 만든다.
여월의 소식을 알기 위해 한쪽 팔을 바쳤을 때, 여월이 삼별초 토벌을 막기 위해 제 발로 그에게 돌아왔을 때. 그에게는 일을 돌이킬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김방경은 그 기회를 모두 마다하고 딸을 사형시키기로 결정하며 ‘가장 더러운 인간’이 되기를 택한다. 그래야만 양심의 가책 없이 삼별초를 모두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행위를 ‘화풀이’로 명명하는 그는 이게 대의와 거리가 먼 일임을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마주 보고 선 두 사람은 서로 닮아가는 법. 갈등이 깊어질수록 김통정은 김방경을 닮아간다. 적군이라 할지라도 죽이기를 망설이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그를 삼별초로 데려와 새로운 삶을 선사해준 배중손이 김방경의 손에 죽자 김통정은 증오심에 빠진다. 삼별초와 함께 탐라로 후퇴한 다음에도 주변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고, 예전에 소중하게 여기던 가치를 모두 잊고 지낸다.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괴물로 죽는다는 신탁은 이런 의미였을까.
그러나 마지막에 김통정은 김방경과 다른 선택을 한다. 복수를 위해 무모한 싸움에 뛰어들고 탐라 사람들까지 위험에 빠뜨리는 대신 홀로 희생하기를 결심한 것이다. 괴물로 죽을 것이라는 신탁을 깨고 자신의 손으로 운명을 거머쥔 김통정은 복수의 굴레를 넘어선다. 그리고 괴물이 아니라 영웅으로서 마지막을 맞이한다.
인간종말기, 어떻게 살 것인가
<용의 아이>는 무신정권이 무너지는 과정에서 권세 다툼이 격렬하던 고려 말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다. 무대 한중간에 걸린 커다란 검이 이 시대의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무대 위 이야기와 관객석 사이에는 몇백 년의 격차가 있다. 그런데도 연극을 볼수록 이야기로만 느껴지지 않고 자꾸만 현실이 떠오른다. 그 이유는 연극 속 대사처럼 ‘인간의 시대는 영원한 칼의 시대’이며, 이 시기를 굳이 고려 말기라 부르지 않고 '인간종말기'라고 불러도 무리가 없어서가 아닐까.
‘칼의 시대’, '인간종말기'에 희생되는 것은 전쟁을 선택한 적 없는 천민과 노비, 평범한 사람들이다.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는다. 좀 더 지나면 그마저도 의미가 없어지고, 복수는 전쟁을 위한 명분이 될 뿐이다. 모든 역사 속에서 반복되는 일이다. 이런 세상에서 개인에 불과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인간종말기 자체를 뒤집는 것보다 그 안에서 어떤 얼굴을 하고 어떤 태도로 살아갈지 생각하는 일 정도일지도 모르겠다.
김통정이 김방경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건 비범한 능력이나 특별히 선한 천성 때문이 아니다. 증오심에 사로잡혀 혼란스러워할 때, 그는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신을 도왔던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을 떠올린다. 피로 이어지지 않은 자신을 지키려다 목숨을 잃은 가족들, 뒤처진 자신을 구해준 삼별초의 동료들, 새로운 삶을 선물한 배중손, 그리고 자신을 따르고 애정을 줬던 여월까지. <용의 아이>에서 김통정을 영웅으로 만든 건 그 수많은 평범한 얼굴들이었다.
난세에는 모두가 영웅을 기다린다. 비범한 누군가가 우리 모두를 구원해주기를 꿈꾼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영웅을 만드는 건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한 명 한 명의 선택이 아닐까. <용의 아이>는 영웅의 활약상을 들려주고 끝나는 전형적인 영웅 이야기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우리에게 어디서 어떻게 영웅을 '만들' 것인지 묻는 듯하다.
[김소원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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