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처녀의 시대, 여성에게 자유를 - 베르나르다 알바 [공연]

'알바'라는 이름의 여성 부족 사회
글 입력 2023.07.20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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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다 알바의 저택 문. 타오르는 욕망의 불꽃같기도, 베르나르다의 B를 천천히 옥죄는 아이비 덩굴 같기도 한 문양은 과연 무엇을 대변하고 있을까?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강렬한 문양의 문으로 리뷰를 열어볼까 한다.

 

 

 

'베르나르다 알바'라는 이름의 좌절된 처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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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와 창녀라는 이분법적 구도로 여성을 가두는 사회상 속 베르나르다 알바는 과거 본인이 가졌던 순수성을 잃고 남편에 의해 유린된 '창녀'라고 스스로를 지칭한다.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는 이런 베르나르다가 남편을 여의고 상을 치르게 되며 폐쇄적인 저택을 배경으로 극을 전개한다.

 

극 속에서 베르나르다 알바는 본인의 '창녀' 콤플렉스 때문에 딸들의 '처녀'성을 지키려는 완고하고 억압적인 어머니로 표현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가 그녀의 여성상을 부정하거나 악인으로만 그려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스로 요새이자 감옥이 되길 자처한 어머니 '베르나르다 알바'는 딸들의 감옥인 동시에 바깥세상으로부터 여성들을 지키는 요새이기도 하다. 그 이중적 지위의 베르나르다 밑에서, 다섯 딸들은 자식으로서의 여성이 가지는 다양한 층위를 각각 보여준다.



 

다섯 딸들은 누구의 자화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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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다 알바의 다섯 딸은 각각 첫째의 예민함, 둘째의 눈칫밥, 셋째의 순진함, 넷째의 열등감, 막내의 자유으로 키워드화할 수 있다.

 

첫째 앙구스티아스는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어머니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빼빼와의 결혼을 수단화한다. 표면적으로 가장 온화하고 희망차지만, 동시에 조금의 스트레스에도 쉽게 무너지고야 마는 취약함과 유약함을 마음 한켠에 지닌 인물이기도 하다.

 

둘째 막달레나는 가정으로부터 벗어나길 포기한 히스테릭한 인물이다. 때문에 시종일관 냉소적인 웃음을 잃지 않는다. 벗어날 길 없는 가정 속에서 주변인들로부터 스스로를 타자화하는, '눈칫밥' 먹고 자라 본인을 드러내지 않을 줄 아는 인물이다.

 

셋째 아멜리아는 순수함과 부끄러움을 지닌, 전형적인 소녀상으로 묘사된다. 성에 대해 관심이 있으면서도, 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길 부끄러워하고 언니들을 사랑하는 사랑스러운 인물이다.

 

넷째 마르띠리오는 외모와 주변의 부정적 평가로 인해 자신을 긍정하지 못하고, 남자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인물이다. 때문에 남자를 멀리하면서도 그들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는 스스로를 긍정하지 못한다. 따라서 남성에게 사랑받는 다른 여성에게 열등감을 가지는 인물이다.

 

막내 아델라는 자유를 상징한다. 그녀는 수동적 자유와 몽상을 꿈꾸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닌, 적극적으로 남성을 욕망하고, 또 남성으로부터 욕망 받길 바란다. 자신의 욕망을 긍정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그녀의 옷은 유일한 유채색이다. 그녀는 자유로움을 뜻하는 인물이다.

 

베르나르다 알바의 다섯 딸들은 이처럼 그 시대의 여성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욕망과 자아를 가진 여성상을 각각 상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뀌어야 하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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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멩코, 스텝, 그리고 음악. 정열적인 노래와 춤 속에서 베르나르다의 딸들이 부르는 노래는 엄숙한 저택을 활보하는 그 자체로 여성의 욕망을 상징한다.

 

스스로의 욕망을 부정해야 하는 그들은 '한'을 노래하듯 부족적이고 기이한 선율을 내뱉는다. 그 위로 플라멩코의 정열적 스텝이 얹힌다.

 

엄숙함과 처녀성이 미덕인 시대에서, 여성들의 욕망과, 절망과, 자유에 대한 갈망을 얼핏 그로테스크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장치로 <베르나르다 알바>는 플라멩코를 선택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막내 아델라의 자유를 향한 갈망이, 그녀가 가진 여성상이 곧 정답이고 이를 억합하는 베르나르다가 악이라는 것?

 

절도 있는 스텝이 바꾸려고 했던 것은, 어쩌면 베르나르다 알바의 저택 바깥의, 남성의 성을 긍정하면서도 여성의 성은 이분법적으로 죄악시하는 세상이 아니었을까.

 

시대가 바뀌고 여성의 사회활동이 비교적 자유로워진 세상이 도래해도, 바뀌지 않는 것들이 있다.

 

여전히 저택 밖의 세상은 처녀를 추앙하고 창녀를 비난한다. 그 속에서 죽어간 베르나르다의 다섯 딸들과, 세상으로부터 딸을 지키려 기이할 정도로 히스테릭해지는 베르나르다들이, 이 세대에는 과연 존재하지 않을까?

 

따라서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는 시대극인 동시에 현실을 비판하고, 바뀌길 촉구하는 일종의 사회 고발극에 가깝다.

 

그러니 우시 사회의 베르나르다들을, 그 다섯 딸들을 거울처럼 비춰보고 싶다면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를 떠올려 보자. 정열과, 욕망과, 자유와, 그 모든 것들을 세상으로부터 보호하는 가장 모성적인 억압의 충돌을. 그 그로테스크함을 엿보고 싶다면 부디 알바 저택의 문을 두드려보길 바란다.

  

 

[김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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