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백조를 꿈꾸는 오리들에게 [영화]

영화 <프란시스 하>를 보고
글 입력 2023.07.12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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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타 거윅 판 뉴요커 ‘소공녀’


 

프란시스 하1.jpeg


 

극 중 주인공 ‘프란시스’는 브루클린의 소형 아파트에서 단짝 ‘소피’와 동거 중인 27살 여성이다. 그녀는 무대의 중심에 서는 최정상의 무용수를 꿈꾸지만 현실은 무용단 견습생이자 대역으로, 아동 무용 강사로 벌이하며 근근이 살아간다.

 

소피와의 신뢰를 위해 오랜 연인의 동거 제안을 거절했지만, 이내 소피가 개인적인 사정을 들며 먼저 관계에서 이탈해 버리자 혼자 남게 된 프란시스는 난감한 처지가 된다. 설상가상으로 무용단에서도 임시 해고되며 그녀는 친구, 지인, 가족 등의 집을 무작위로 전전한다.

 

불안정한 현실 속에서도 내내 쾌활하고 굳세게 살아온 그녀이지만, “나이는 먹을 만큼 먹고서 참 속 편하게 산다” 같이 비수를 꽂는 직설적인 발언에는 한동안 위축되기도 한다. 한편, 같은 예술계에 종사하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프란시스는 갖은 이유들로 종종 겉돈다. 

 

충분한 경제적 지원을 바탕으로 원하는 대로, 원하는 만큼 시도할 수 있는 프리랜서 작가는 매번 돈에 쪼들려 사는 프란시스의 삶을 과장된 자기 연민이라 낙인찍고, 저마다 살기 바쁜 정식 무용수, 안정적인 직업과 삶을 택한 친구들도 그녀의 심정을 온전히 알 턱이 없다. 그렇게 매분 매초 바삐 굴러가는 각자도생 ‘뉴욕’에서 프란시스는 진정한 홀로서기를 시작한다. 


그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한 작품이 문득 떠오른다. 바로 이전 오피니언 콘텐츠에도 기고했던 국내 독립영화 ‘소공녀’다. 극중 주인공 ‘미소’도 프란시스처럼 정처 없이 떠도는 존재이자, 지향이 명확하며, 몽상가적인 기질이 있고, 오지랖 넓은 지인들의 충고로부터 늘 시달린다.

 

다만 상이한 지점도 있다. 미소에게 삶의 낙이 위스키, 담배, 남자친구였다면, 프란시스에게 그것은 ‘무용수’라는, 다소 더 원대한 꿈이다. 미소의 소박한 행복은 일용직 알바 정도의 벌이면 충분히 이룰 수 있고, (결국에 현실적 여건으로 인해 미소를 잠시 떠나긴 하지만) 남자친구와의 일상적인 데이트로 얻어지는 것이지만, 프란시스는 업으로써 자격을 증명하고 인정받아야 하는 위치에 있다.

 

이러한 간극으로 인해 프란시스의 예술을 향한 열망은 (어찌 보면 미소보다 더) 가망은 없는데 때만 쓰는 철부지의 욕심으로 비치기도 한다. 삶의 섭리를 다 통달한 것마냥 어른스러운 구석도 있고, 타인의 마음을 다독일 줄도 아는 미소와 달리 실제로 감정 기복도 심한 데다 부산스럽고 덜렁대는 그녀의 성격은 그런 어른 아이 같은 모습을 더 부각하기도 한다.

 

한없이 엉뚱하고 뭐든 흘러가는 대로 맡기는 프란시스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는 힘들 수 있다. 다만 그 어설프고 치기어린 모습이 눈에 자꾸만 밟히는 이유는 명확한 회로 없이 부유했고, 어느 이유로든 항시 불완전했던 우리들의 부끄러웠던 한때와 닮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백조가 되지 않아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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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는 한동안 자신의 처지를 부정하고 회피한다. 생계를 위해 웨이트리스로 일하면서도 그저 음료를 따르는 것뿐이라며 애써 포장하기도 하고, 모교에 방문해 행사 알바, 기숙사 조교로 머무르면서도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본인의 창창한 가능성을 강조하며 자기 위안을 삼기도 한다. 결국 이리저리 치이던 프란시스는 다시 무용단으로 복귀해 과거 단칼에 거절했던 사무직으로 근무하게 되고, 부업으로는 안무가로 활동을 시작한다. 

 

여생을 함께 할 소울메이트라 믿었던 소피는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남자를 만나 떠났고, 늘 운명적인 연인과의 조우를 염원했지만 끝내 그 공백을 채울 사랑도 찾지 못했고, 원하는 정식 무용수의 꿈도 달성하지 못했지만, 프란시스는 그렇게 또 다른 방식으로 삶의 여백을 채워간다. 

 

그리고 그곳엔 프란시스가 제 자리에 당도하기까지의 과정을 경유하며 맺은 인연들이 모여있다. 어찌 보면 헛되게 인식될 수도 있을 그 시간 속에서도 결국 남는 것은 있다는 걸 새삼 깨닫는 순간이다. 


영화는 흑백 화면을 덧대 인물들을 담는다. 누벨바그 고전을 연상케 하는, 명과 암으로만 구현되는 세계. 여기서는 낭만만을 품고 자유로이 살아갈 수 없는 청년들의 척박하고 암울한 현실 그리고 열패를 집약하는 장치로 쓰인다.

 

이렇듯 영화의 배경과 스토리는 다크 하지만 톤 앤 매너는 꽤나 동적이고 낭창하다. 나는 그것이 캐릭터의 매력에서 발한다고 굳게 믿는다. 냉소와 비아냥에 상처 입기도 하고 초라한 제 모습에 위축될 때도 있고, 삶이라는 숙제는 더욱이 어렵고 스스로를 감당하는 것마저 여전히 버겁지만 힘차게 뛰고, 꼬박꼬박 웃고, 다정한 대화도 주고받으며 그럼에도 삶을 이어가는 프란시스의 입체성은 꼭 성공해야만, 화려해야만 행복할 수 있다는 틀마저 파쇄시킨다.

 

목표를 향해 불나방처럼 달려들고 무모한 도전을 감행하는 것도 청춘의 특권이지만 때로는 물러서는 것도 그만큼의, 아니 그 이상의 담력을 요한다는 점에서 응원하고픈 선택이다. 꿈은 포기했을지언정 인생은 계속된다는 것을, 무대에 설 수는 없어도 ‘삶’이라는 영화의 주인공은 언제나 나라는 것을 담백하게 전한다.

 

 

[김민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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