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Dear, 율리에. 너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어 [영화]

<사랑할 때는 누구나 최악이 된다> (원제 The Worst Person In The World)
글 입력 2023.07.07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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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하는 영화 속 인물들은 죄다 허점 투성이이다.

 

실패하고 좌절하고 방황하고 거절당하면서 성장해간다. 영화 속 주인공은 스스로의 삶이 최악이라고 생각하지만 영화 밖에서 팝콘을 손에 들고 주인공의 삶을 들여다보는 우리는 그 자체가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기쁘면 기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사랑할 때는 누구나 최악이 된다> (원제 The Worst Person In The World)의 주인공 율리에(레나테 레인스베)를 보면서 알려주고 싶었다. 그녀의 삶을 멀리서 바라보는 우리는 너를 아름답게 생각한다고.


영화 속 율리에는 계속해서 방황 중이다. 점수가 높아 쉽게 들어가기 어렵다는 이유로 의대를 진학했다가 곧 자신은 육체가 아닌 정신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심리학으로 전공을 바꾼다. 그러다가 시각적 표현에 매력을 느껴 사진작가로 일한다. 서점에서 일하면서 칼럼을 쓰기도 한다. 누군가 무슨 일을 하냐고 물어보면 "서점에서 일한다"라고 대답하지만 그 일이 정말 자신을 설명해 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 자신의 인생은 시작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율리에는 열등감으로 똘똘 뭉쳐있다. 아직 본인을 규정할 수 있는 일을 찾지 못한 그녀는 스스로와 성공한 만화가인 연인 악셀의 삶을 계속해서 비교한다. 악셀의 만화를 축하하는 파티에 참석한 율리에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자신의 삶이 초라하게 느껴진다. 파티의 들러리가 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녀는 악셀과 헤어질 때 이야기한다. "내 삶의 구경꾼이 된 기분이야. 내 인생인데 조연 역할을 하는 것 같아."

 

남들은 모두 자신의 길을 찾아서 달려가는 것만 같은데 나만 길을 잃은 것 같은 기분. 연인의 성공을 기뻐할 수 없는 자신에 대한 패배감. 열등감을 느낀다는 사실조차 부끄러워서 숨길 수밖에 없는 마음. 언젠가는 대단한 일을 할 거라는 본인에 대한 높은 기대감은 초라해 보이는 지금의 모습과 비교되면서 자괴감으로 변한다.

 

하지만 율리에는 본인만 인지하기 못했을 뿐 그녀는 누구보다 본인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사는 인물이다.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서 용감하게 도전했고, 아이를 원하지 않다고 연인에게 당당하게 이야기했고, 에드빈드를 사랑하게 되자 경제적으로 의지하고 있던 악셀을 떠나는 쉽지 않은 결정을 했다. 새로운 일을 할 때 율리에의 얼굴에서는 반짝반짝 빛이 났다. 그녀들의 연인도 그녀가 가지고 있는 삶에 대한 사랑과 생동력을 사랑했을 것이다. 율리에가 아름답고 똑똑하고 용감하다는 사실을 그녀만 모르고 있었다.

 

열등감, 자격지심, 가면 증후군(Imposter Syndrom. 본인의 성공의 능력이 아닌 운이라고 생각하는 심리) 등으로 똘똘 뭉쳐 있었던 나는 율리에의 불안과 고통이 투명하게 이해할 수 있어서 마음이 아팠다.

 

그럼에도 영화 밖 관객들은 알지만 정작 본인은 모르고 있는, 누구보다 아름답고 씩씩하게 잘 살아가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그녀도 알아봐 주기를 바랐다.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없어도, 아직 길을 찾아가는 중이더라도, 자신의 욕망에 솔직한 삶 그 자체로 빛이 난다고 말이다. 율리에 뿐만이 아니라 나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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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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