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창문으로 가두면 보이는 호퍼의 세상 - 에드워드 호퍼의 시선 [도서]

에드워드 호퍼가 사랑받는 이유가 궁금하다면
글 입력 2023.07.0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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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호퍼의 이름은 모를지라도 이곳저곳에서 그의 그림을 접해와서 인지 낯설지 않았다. 그림이 걸려진 곳이라면 어디든 한 번쯤은 마주쳤을 정도로 그는 미국을 대표하는 화가 중 한 명이다. 상업과 순수 예술 사이를 부지런히 오간 그의 작품을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전시하고 있다는 소식에 그에 대한 책도 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전시를 다녀온 뒤에 이 책을 읽어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전시에서의 작품 해석과 도서 '에드워드 호퍼의 시선'의 저자 이연식의 해석 모두 보면서 다양하고 깊이 있게 그의 작품세계를 탐험해 볼 수 있었다. 인상적이었던 그의 작품과 풍경을 포착해 내는 시선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고독

It's probably a reflection of my own, if I may say, loneliness. I don't know. It could be the whole human condition.


 

저자 이연식은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을 보며 기술적으로 훌륭하지 않은데도 마음이 끌리는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해 털어놓고자 한다. '그림에 감정을 담는다'라고들 하지만 저자에게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는 늘 고민의 대상이었던 듯하다. 몇몇 어휘로 나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해보면서 호퍼와 가까워질 수 있다고 믿으며, 그 시선 중 하나인 '고독'을 소개한다.

 

그의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떤 고독이 보인다. 그는 20세기의 미국 도시를 자주 그렸다. 그러나 고층 건물이 아닌 '수직선'을 강조하는 낮은 건물들이 나란히 있는 모습이 대부분이다. 언뜻 보면 그림들은 이동 수단에 탄 채로 본 것처럼 구조가 완벽하지 못하고 흘러가는 느낌을 준다. 상업과 예술, 한 곳에 고정되지 못하고 달리기만 한 그의 생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또 대공황 시기에 자동차 여행을 다녔던 것으로 보아 마음을 두지 못함, 즉 고독은 그의 평생 숙제이자 정체성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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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속의 여인>

 

  

호퍼의 작품관에서 해는 곧 집을 뜻한다.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가 사람과 방, 그리고 창밖으로 햇빛이 들어오는 장면을 자주 포착하는 걸 알 수 있다. 공간에서 인물들은 늘 고독하다. 여성의 뒤로 보이는 구두는 그녀의 나체를 더욱 강조하면서 더욱 쓸쓸함을 두드러지게 한다.

 

다른 작품에서도 그는 이런 요소들을 집어 넣었는데 여기서는 특히 창밖에서 들어오는 햇빛이 창문의 일그러진 직사각형으로 여성을 가두는 듯한 구도를 만들어 낸다. 갇힌 현대인. 윤곽과 인체의 디테일을 버리면서까지 그가 중요하게 생각한 햇빛에 대해 생각해 본다. 호퍼에게 빛은 구원일까 고독의 원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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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저녁>

 

 

책에서 인상 깊게 남은 작품이자 실물로 보았을 때 시선을 가장 오래 빼앗은 건 <푸른 저녁>이다. 몇 안 되는 매력을 가진 호퍼의 그림이지만 그 강렬한 것들 중 하나는 바로 보는 사람마저 고독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캐리커처처럼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 사이로 담배를 입에 문 고독한 광대 하나.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로부터 머나먼 곳에 있는 듯한 표정, 엇갈리는 인물들의 시선들, 지나치게 생략된 배경까지, 고독 그 자체처럼 느껴지는 그림이다.

 

재미있는 점은 1910년 프랑스에서 뉴욕으로 돌아온 호퍼의 이 그림이 당시 미국 미술계에서는 특별한 주목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림 속 카페는 실은 프랑스이며 제목 또한 'Soir Bleu'로 불어다. 당시 주류이던 야수주의와 입체주의에 눈 돌리지 않고 19세기에 남기를 그는 고집했다. 그 결과 다층적이고 내밀한 수준까지는 아닌 이 그림이 탄생했다. 그러고는 창고에 처박혀 버린 슬픈 이야기가 있으나 '고독'에 어울리는 형에 처하게 된 게 아닌가 싶다.

 

 

 

여행

To me, the most important thing is the sense of going on. You know how beautiful things are when you're trave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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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3호 차량, C 칸>

 

 

억누를 수 없는 호기심 때문에, 혹은 견문을 넓히기 위해 호퍼는 늘 떠났다. 파리로, 뉴욕으로, 다시 도로 위로. 그는 "실려가는 감각"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모두 빠른 속도로 사물들이 형체를 잃는 것에 대한 감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19세기 이전에는 그런 감각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주변이 붕괴하는 모습을 보면서 호퍼는 공포를 느꼈던 것일까. 자동차나 기차와 같은 이동 수단 자체를 잘 그리지 않았다고 한다. 저자는 윌리엄 터너의 <비, 증기, 속도>를 소개하며 운송수단의 속도감을 표현하기 시작했던 예술가들과 호퍼의 작품을 비교한다.

 

으리으리한 문명의 증거물 대신 그는 실려가는 사람들과 흔들리는 풍경을 그렸다. 밖은 관심 없고 잡지를 읽는 여자나 떠나온 곳에서 멍하니 앉아 종이를 뒤적이는 여자들의 모습에서 '여행'이 떠오른다. 분명 즐거운 사연은 아닐 여행을 하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여행을 키워드로 보면 운송수단 외에도 그의 시선을 해석해 볼 수 있다.

 

<호텔 로비>나 <호텔 방>은 여행에서 유일하게 사적인 공간인 호텔에서의 외로운 인물들을 보여준다. 같이 있지만 서로를 바라보고 있지 않는다던가, 혼자 앉아 종이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는다던가, 각자의 인물들은 어떤 사연이 있어 이곳에 있는 듯하다. 매 순간 이방인인 여행은 사실 두근거리고 설레고 새롭기만 한 게 아니다. 호퍼도 그런 외로움을 드러내고자 했던 걸까.

 

 

 

시선, 에로티즘

More of me comes out when I improv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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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창문>

 

 

전시에서 이 그림을 실물 사이즈로 봤을 때 깜짝 놀랐던 것 같다. 시선의 공범이 된 듯한 그림이다. 아무래도 호퍼는 이런 분야에서는 전문가인 듯하다. 창문 안 속 인물에 이입하게 하는 것과 자신의 시선을 우리에게 공유하는 것 둘 다 말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저자의 설명이 가장 잘 들어맞는 것 같다.


 

"예술가들은 도박판에서 카드를 쥔 도박사들처럼, 저마다 중요한 카드를 들고 있다. 어떤 예술가는 그 카드가 한 장뿐이고, 어떤 예술가는 여러 장이다. 호퍼는 대충 두 장쯤인 것 같다. 에로티즘이라는 카드 한 장. 그리고 에로티즘을 뺀 나머지 모두를 합친 한 장."

 

135p.

 

 

호퍼의 그림에서 자꾸 보고 싶은 매력은 느껴도 깊은 감동을 느끼지 못한 이유가 이것이 아닐까. 그의 에로티즘은 작가의 말처럼 당혹스러울 만큼 노골적이고 유치하다. 누드도 누드 나름이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가 무엇일까.

 

단순히 여성의 몸에 대한 것 이상을 말하고 있는 것 같으나 감이 잘 오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욱하며 올라오는 감정이 한 번씩 느껴지는데, 그것은 그의 억눌린 욕망 아닐까. 여기서 욕망은 단순한 욕심이라기보단 외로움, 성공, 예술에 대한 갈증에서 오는 것이다. 그런 갈증은 누구에게나 있기에 그의 그림이 호소력이 있는 게 아닐까. 감정이 담긴 누디티, 그게 호퍼의 다른 한 장의 카드를 가능하게 하는 카드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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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퍼의 그림이 재미있는 이유는 사실 만만해서인 것 같다. 단면적인 구도나 정직한 시선과 주제들은 예술이 먼 이야기일 것만 같은 이들에게 꼭 그렇지 만은 않다고 말하는 듯하다. 알려져 있는 그의 삶을 모아 놓고 보면 더욱 의도가 훤히 보인다. 늘 방황하며 자신의 그림이 세간의 주목을 받는 것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반대라는 것을. 그런 점도 호퍼의 매력이다.

 

주어진 몇 가지 요소들에 주관을 담아 떠들썩 이야기해 볼 수 있는 그의 그림이 좋다. 저자도 마찬가지로 미학적으로 그의 작품을 분석하기보다도,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면서 자신의 주관을 담아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그것이 주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좋은 예술을 판단하는 단 하나 변치 않는 기준은 세상을 바라보는 예술가의 고유한 시각"이라고 호퍼가 말했듯 그의 시선들을 펼쳐 보며 여러 가지 상상을 할 수 있어 좋았던 책, <에드워드 호퍼의 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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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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