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빛바랜 교실에 묻은 애매한 여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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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무키무키만만수의 곡인 '안드로메다'와 함께 시작한다. 무당벌레와 장구벌레, 그리고 풍뎅이 벌레를 요상한 주문처럼 중얼거리며 녹음 아래를 지나고 나면 낡은 학교에 도착한다. 하지만 여자 주인공인 '진'의 정신은 노래 제목처럼 안드로메다에 가 있다. 25만 원짜리 시험에서 수험표를 놓고 온 것도 모자라 시험 시간도 착각했다. ♪ 생각을 안한 지가 너무 오래됐네요. 그래서 우리는 킬리만자로. 마음이 킬리만자로처럼 먼 곳에 가 있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
Même si le ciel s'effondre, il y a un trou à travers lequel il s'élèvera.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친절한 미소를 띤 관계자가 수험표 재발급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인다. 한시름 놓는 기색 따윈 없이 덤덤하게 팔을 쓸어내리는 진의 앞에선 채점 기준을 설명하고 있다.
항상 말씀드리지만, B1은 애매하다!
중급처럼 애매한 게 없다는 말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동시에 '관용의 법칙'에 의해 학생의 노력을 높이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애매함 자체에 관용적일 순 없나? 시험장을 배경으로 하고선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다 보니 진의 순서가 다가왔다.
어설픈 바디랭귀지에 긴장한 맨 얼굴은 분명 B1이다. 시험감독은 이미 채점 결과를 얼굴에 써 놓은 듯하다. 좋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주제는 '가족'으로 흘러간다. 엄마는 외로우세요, 아빠가 일이 너무 많으신 건가? 돌아오는 반문에 진은 눈을 굴린다. 프랑스어로 더듬거리며 설명을 이어가던 진은 결국 들고 있던 가방을 목에 걸고 고개를 툭 떨군다. 말을 잇지 못하던 그녀는 결국 벅차오른 감정을 감당하지 못하고 시험장에서 무단으로 뛰쳐나온다.
하지만 진이 나가고 나서도 시험은 계속된다. 다음 사람이 들어온다. 이화여대에 다닙니다. 강남에 삽니다. 춤을 좋아합니다. 퀘벡에 가봤습니다. 좋던데요. 전 이상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프랑스에 살고 싶습니다...
그들은 모두 자연스러운 불어를 구사한다. 애매한 것은 진 뿐이다.
그럼에도 아이러니한 점은, 더듬거리는 단어와 어설픈 손짓 발짓 사이에서 가장 큰 교류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시험관은 그녀의 감정에 동요한 듯 '관용의 원칙'을 고려한다. 이화여대에 다니거나 춤을 좋아하는 사람에게선 받을 수 없을 감정이다. 언어의 목적은 결국 소통이다. 이안카 감독의 <중급 불어>에서는 그 본질에 집중하고 있다.
물론 이건 프랑스어 말하기 시험이므로 진이 B1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채점기준표가 있는 시험에서 공정성은 중요하게 여겨져야 한다. 따라서 진의 프랑스어 실력은 분명히 'B1'이고 무척이나 애매하지만, 주인공이 그 애매함을 관용적으로 바라보기를 바란다. 그녀는 능력이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책은 짧게, 도약은 빠르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게 싫다면 포기해버려도 좋다. 중요한 것은 애매한 자신을 그대로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결국 주인공이 어떤 점수를 받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열린 결말 속에서 누군가는 아쉬움을 토로한다. 흐릿한 더위와 어설픈 실력, 결말까지도 선명하지 못한 15분짜리 영화다.
하지만 애매하면 어떤가? 애매한 여름 속에서도 우리는 위안을 찾을 수 있다.
이미지 출처: Daum 영화
[이지연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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