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바다 위 성장 소설 - 마이그레이션 [도서]

글 입력 2023.06.22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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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변화’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는 점점 무겁다. 올해 벚꽃은 유독 이르게 피었고 5월부터 이어진 무더운 날씨는 우릴 질식시킨다. 지구 반대편에는 농작물을 파괴하는 귀뚜라미 떼가 마을을 삼켰다는 뉴스가 보도된다. 눅눅해진 종이 빨대를 씹으며 이젠 개인의 노력만으로 기후 위기를 막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샬롯 맥커너히의 소설 <마이그레이션>은 대부분 동물이 멸종한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그러나 읽을수록 독자는 이 소설이 지닌 현대성에 더 압도된다. 지금도 동물은 인간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아 멸종되고 있다. 이는 자연의 순리에 인간이 개입했기 때문이다. 결국 보호를 목적으로 인간이 다시 사라질 그들을 관리하는 것 역시 오만이다.

 

결국 우리는 대부분의 동물이 사라질 때 남은 북극제비갈매기가 더욱더 애틋해지고 갈매기를 따르는 ‘프래니’의 여정을 마지막까지 함께할 수밖에 없다.

 

 

갈매기.JPG

 

 

그렇다면, 왜 하필 새이며 그중에서도 북극제비갈매기인가?

 

 

우리 인간이 끝내 무너뜨리지 못하는 유일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조류의 리듬이다.

 

- 32p

 

 

인간은 조류의 리듬을 끝내 무너뜨리지 못했다. 이게 과연 사실인지 소설적 서술인지는 모르겠으나 결국 조류의 리듬은 그들의 멸종을 최대한 늦추었다. 그중에서도 북극제비갈매기는 동물 중에서도 가장 먼 거리를 이동한다. 북극에서 남극을 갔다가 1년 안에 돌아온다. 상상하기도 아늑한 거리를 30년 정도의 수명으로 계산하자면, “지구에서 달까지 세 번 왕복”할 수 있는 거리이다.

 

작은 육체로 이어가는 무한한 비행, 거기서 느껴지는 생명력이 바로 북극제비갈매기를 쫓을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미처 해소하지 못한 의문이 있었다.

 

내 물음을 더 근본적으로 파고들어 가자면, 왜 동물이었을까. 거기엔 소설에서 은근히 느껴지는 뉘앙스가 있다. 인간 역시 동물이기 때문이다.

 

소설 속 “살기를 요구하는 야생 본능”은 인간인 자신의 본능을 말하며, “동물들이 죽어 가고 있다. 머지않아 우리는 이곳에 홀로 남겨질 것이다.”라는 문장에서 동물에는 인간이 포함될 것이다. 특히 2장 마지막 문장“나는 너무 망연자실하여 눈물도 나지 않았다. 거의 짐승이나 다름없었다.”는 이 소설 전체가 독자를 설득할 힘을 가졌다고 느꼈다.

 

*

 

단순히 북극제비갈매기만을 쫓는다면 이 소설은 르포의 성격이 아주 강한 논픽션으로 읽힐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주체는 프래니였고 이 덕분에 환상적인 ‘이야기’로 기억될 수 있었다.

 

프래니의 여정에서 우리는 프래니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다. 특히나 “삶에 대한 단서”를 찾아다녔고 마침내 북극제비갈매기를 쫓기 위해 배에 탄 것에서 이 긴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삶에 대한 태도는 간결한 문장으로 곳곳에서 등장한다. 예컨대 “삶의 영향력이란 무엇을 주고 무엇을 남겼느냐”로 특정할 수 있지만, “세상에서 무엇을 얻었는지”로도 볼 수 있다는 다른 관점을 제시한 문장들 말이다. 이 문장은 유독 오래 곱씹을 수밖에 없었는데 삶을 진실하게 고민하는 프래니의 태도를 통해 독자에게 울림을 주는 힘이 있었다.

 

무언가를 남기려는 삶도 의미 있지만, 세상에서 무엇을 자기 방식으로 얻어 소화할 수 있는지와 같은 것들 말이다. 유독 전자에 의미를 둔 사람들에게는 큰 위로가 되지 않을까. 그러니까 우리는 갈매기를 쫓는 프래니를 끝까지 지켜볼 수 있는 이유는 프래니의 사고방식으로 보여주는 삶의 의미 덕분이다.

 

 

바다.JPG

 

 

이 소설만의 흥미로운 점은, 새를 따라가지만, 바다를 묘사하는 문장들이다. 새를 쫓는다면 하늘을 바라볼 것이고 이 때문에 하늘에 대한 묘사가 주를 이루리라 생각했다. 책 표지 역시 하늘과 구름과 갈매기들이 그려져 있기도 하다. 그러나 소설에서 가장 빛나는 묘사는 바다를 향한 프래니의 진심이었다.

 

 

엄마는 늘 내게 말하곤 했다. 바다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멍청이밖에 없다고. 나는 그 말을 품고 살아왔다. 하지만 두려움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두려워할 필요도 없잖아?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은 내가 바다를 두려워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숨 쉬고 내 심장이 뛰는 한, 모든 순간 바다를 사랑했다.

 

- 327p

 

 

모든 순간 바다를 사랑한 프래니가 배를 탄 것, 그리고 남극을 향한 것은 모두 그가 따라간 동물이 북극제비갈매기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는 바다 위에서 기뻐하고, 선원들과의 갈등으로 괴로워하고 고향을 그리워할 자격을 떠올리며 상실감을 느끼기도 한다. 프래니의 여정에서 바다는 빠질 수 없는 공간이고 이 요소들 덕분에 이미지가 없어도 드넓은 하늘과 바다가 쉽게 그려진다.

 

유달리 바다에서 솔직했던 프래니는 에필로그에서 어느 정도 해답을 찾은 것처럼 보인다. 과거 무언가를 잃었고 미래에도 무언가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바다를 따라 성장했고 앞으로도 성장하며 아일랜드로 떠날 것이다.

 

 

마이그레이션_표지_앞표지.jpg

 

 

[이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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