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읽는 이들이 바꿀 비인간과의 관계 [미술/전시]

글 입력 2023.06.20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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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4일부터 18일까지 코엑스에서 2023 서울국제도서전이 진행되었다. 이번 도서전의 주제는 <비인간, 인간을 넘어 인간으로 NONHUMAN>으로 인간과 비인간이 함께 살아가며 변화시킬 세상의 모습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인간이 중심이 되어 살아가던 세상이 위태로워지기 시작하고 이들이 남겨놓은 삶의 흔적들이 세상을 향한 경고를 외친다는 사회적인, 전 지구적인, 우주적인 시선이 도서전을 관통한다. 도서전에서는 인간과 인간을 넘어, 인간과 동물, 인간과 식물, 인간과 사물들 사이의 불평등을 없애고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당면한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주제 전시 <비인간, 인간을 넘어 인간으로> NONHU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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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인류의 위기를 회피할 수 없고 마주해야 하며 우리가 인지하지 못했던 혹은 외면하고 있었던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주제 전시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도서전의 핵심인 인간과 비인간의 이야기들을 큐레이션 된 책을 통해 전달했다.

 

<비인간, 인간을 넘어 인간으로>를 키워드로 큐레이션 된 도서는 모두 600권이다. 600권의 책은 ‘사라지다’, ‘저항하다’, ‘가속하다’, ‘교차하다’, ‘가능하다’의 주제의 갈래들을 따라 나누어진다. 그리고 주제의 갈래들은 또 세분화된 영역으로 분류되는데,

 

 

1. 우주, 지구, 세계관 / 동식물, 미생물, 기생충 / 가상, 사물, 기계, 로봇 / 공간, 도시, 지방 / 죽음, 정신, 형식 체계가 사라지다.

 

2. 인종차별, 젠더 갈등, LGBT / 식민지, 전쟁, 난민, 생존자 / 불평등, 가난, 소외, 노동 / 질병, 장애, 비장애성, 비정상 선언 / 인권, 범죄자, 존엄사, 고독사에 저항하다.

 

3. 지구온난화, 공장식 축산, 플라스틱, 생태 위기 / 신자유주의, 기술의 불확실성, 에너지와 식량 위기, 미세먼지, 쓰레기 / 감염병, 핵실험, 환경호르몬 / 스며든 이방인 / 인간을 따돌리는 미래를 가속하다.

 

4. 전지적 비인간 시점 / 지구와 함께 살기 / 세상의 빈틈을 메운 상상의 존재들 / 인간을 둘러싼 것들을 관찰하는 힘 / 실존적 초인, 변신, 경계를 넘어선 인간과 물아일체 속에 교차하다.

 

5. 동물, 인류가 새롭게 발견한 관계의 영토 /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 / 철학적 대전환 / 다양한 타자들이 있는 세계와 만나기 / 공존과 연대로 나아가는 세상은 가능하다.

 

 

마치 책을 꺼내어 읽는 것처럼, 각각의 주제로 세분화된 책들의 구절을 꺼내어 읽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책의 일부를 구성하는 구절들이지만, 그 구절들은 책 속에서 우뚝 솟아 나와 사람들의 잠재된 의식을 자극하기에, 전시의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충분했다. 전시는 하염없이 들여다보게 되었던 구절, 사진으로 찍어 간직하고 싶었던 구절을 책을 통해 만나볼 수 있는 공간으로 이어졌다. 벽을 가득 채운 책을 꺼내 읽어가면서 하나의 구절로는 차마 설명하지 못하는 내밀한 이야기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구성하던 것들의 사라짐과 동시에 발현되는 새로운 것들의 등장, 인간중심적인 사고들이 불러일으키는 폭력과 비윤리에 대한 저항, 인류가 직면하는 위험과 위기의 가속, 그럼에도 시도되는 인간과 비인간의 교차, 이와 함께 펼쳐지는 가능의 세계. 이 모든 것은 하나의 순차적인 과정처럼 이어지며 인간과 비인간의 소통이 필요하다는 관점을 제시한다.

 

 

 

비인간 아카이브와 비인간-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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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인간 아카이브>와 <비인간-되기>는 도서전의 핵심 주제를 품고 있음과 동시에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허물어주는 참여형 인터랙티브 아트이다. <비인간 아카이브>은 우리가 비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 모든 것들이 하나의 차원 안에 공존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비인간 아카이브>는 자신이 생각하는 비인간을 직접 그림으로써 비인간의 우주를 채워나갈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마치 태양계를 구성하고 있는 행성들처럼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존재하고 있는 비인간들은 모두 우리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각자의 비인간일 것이다.


<비인간-되기>는 비인간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직접 비인간과 관련된 얼굴 필터를 제작할 수도 있었고 비인간이 된 ‘나’를 바라볼 수도 있었다. 두 프로그램 모두 우리가 그동안 생각했던 ‘비인간’이 어떤 것인지를 인식할 수 있게 해주고 우리 인식 속 ‘비인간’의 범위를 넓혀주었다. 비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물질들이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기도 하였으며, 인간과 비인간의 뚜렷한 차이를 무엇이라 이야기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불러일으키게도 하였다.

 

텍스트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수 있는 도서전의 메시지를 참여형 프로그램으로 전달했다는 것에서 모든 연령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각각의 다른 이해도와 공감을 전부 포용해 주었다는 것에서 이번 도서전이 가지는 의미가 남달랐다고 생각한다. 도서전을 통해 우리가 인지해야 하는 문제는 어떤 이들에게 특정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라는 사실을 다양화된 프로그램을 통해서 이야기하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강연과 세미나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강연과 세미나이다.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책을 쓰는지, 어떤 책을 읽는지에 따라서 차별화된 개인의 관점을 공통된 주제로 풀어내는 시간은 그 어떤 프로그램보다 사랑받고 있다. 이번 도서전에서도 인간과 비인간을 다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강연과 세미나가 준비되었다. 특히, 주목할 수 있었던 것은 비인간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강연들이었다. 직관적으로 ‘비인간이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니지만 ‘인간’다운 대우를 받지 못하고 ‘인간’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이들 또한 비인간으로 바라보며 이들의 목소리를 내주는 강연들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또한, 소설가들이 그려내는 비인간의 모습에 대한 북토크들도 많은 관객을 동원했다. 책 속의 비인간들이 구현해 내는 모습들을 통해 독자들은 인간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강연은 비인간이라는 책 속의 한 장르가 인간의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에 가치를 부여한다.




읽는 인간들이 바꿀 비인간과의 관계


 

이번 서울국제도서전에는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많은 이들이 모였다. 36개국의 530개의 출판사, 약 130,000명의 참관객까지. 책이 전달하는 의미를 함께 나누고자 하는 사람들, 이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모여 도서전을 가득 채웠다. 매년 도서전을 찾는 엄청난 인파를 바라보며, ‘읽음’을 사랑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새삼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번 도서전에서는 특히 이들이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얼마나 허물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도 함께 생겼다. 불안과 두려움으로 가득 점철되어 있던 인류 미래에 대한 고민도 비인간과의 공존과 연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긍정적인 미래를 그리게 해주었다.

 

내년에는 또 어떤 시선으로 세상과 책을 바라볼지, 2024년 도서전에도 함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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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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