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기구한 인생은 짧아도, 예술은 길다: 고양이를 그린 화가 루이스 웨인展

글 입력 2023.06.19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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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웨인 포스터_세로.jpg



작년에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서 루이스 웨인 展이 열렸던 것을 기억한다. 귀여운 고양이 얼굴을 보고, 이 작가는 누구인지 알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고양이보단 강아지를 주로 키워봤지만 고양이도 참 사랑스러운 생물이니까, 그런 고양이를 주로 그린 루이스 웨인이 궁금했다. 그 때 루이스 웨인 전시를 꼭 가보고 싶었는데 일정이 도무지 맞지 않아서 결국 가보지 못했다. 그렇게 그의 작품들은 한 순간 내 인생에 찾아왔다가 떠나가는 듯했다.


그런데 이번에 강동아트센터 아트랑에서 다시금, 루이스 웨인展이 열리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록 이전보다 가기에 더 멀어지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루이스 웨인의 작품들을 꼭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전시 일정을 확인하고 시간을 미리 맞췄다. 때를 놓치면 그 다음이 언제가 될 지 알 수 없다는 것을 한 번 경험했기 때문에 이를 굳이 두 번 겪으면서 재확인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다음에 루이스 웨인 전이 서울에서 언제 또 다시 열리게 될 지는 아무도 알 수 없으니까 말이다.


 



< 전시 소개 >


본 전시는 루이스 웨인의 원작과 미공개 등 작품 100여 점의 원화가 최초로 소개된다. 고양이를 다양한 모습으로 스토리텔링으로 구성한 전시는 모든 계층이 쉽게 관람할 수 있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 외 전시 기간 동안 전시 연계 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루이스 웨인 with ART STUDIO' 프로그램은 강사와 함께 작품을 감상하고 움직이는 고양이 친구를 만들어 본다. 스토리텔링식 교육으로 고양이가 사람 같다면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에 댜한 질문을 이야기하고 작품을 만들어 보는 창작 수업으로 진행한다.

 


 

 

Louis Wain, famous cat artist 루이스 웨인, 유명한 고양이 화가.jpg



이번 루이스 웨인 전을 가기에 앞서, 루이스 웨인에 대해 더 알고 감상하고 싶어서 그에 대해서 두루 찾아보았다. 그런데 루이스 웨인의 인생을 알게 된 순간, 마음이 너무 아팠다. 루이스 웨인의 인생은, 그야말로 '기구하다'는 말 외에는 표현할 길이 없을 정도로 너무나 어렵고 복잡하고 힘겨웠기 때문이다. 그는 선천적으로 구순구개열인 상태로 태어나 외양으로 인한 따돌림을 겪었다. 그런 그는 스물이 되자마자 아버지를 떠나보내면서 가장의 무게를 짊어졌다. 게다가 누이 동생들은 정신적인 질환을 앓기 시작하면서 고통받다가 하나 둘씩 세상을 떠났다. 게다가 그는 죽기까지 계속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 살았고, 끝내 그 자신조차 정신적인 질환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동물들을 그린 그의 삶이 어떻게 이렇게 안풀릴 수가 있었던 걸까. 가족들의 질환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고양이 화가로 그렇게 널리 알려졌던 루이스 웨인이 어떻게 경제적 질고 속에서 고통받고 파산할 수가 있었단 말인가. 그게 너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알고 봤더니, 지식재산권에 대해 잘 몰랐던 루이스 웨인이 자신의 계약 상대자였던 출판사 등으로부터 거하게 뒤통수를 맞았던 모양이다. 그런 악질적인 수법에 넘어가서 평생을 고통받았던 그의 삶이 너무 마음 아프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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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쇼의 초보 과학자



하지만 루이스 웨인은 끊임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말 못하는 동물들을 그렸다. 초기에는 고양이보다는 강아지를 비롯한 다른 동물들을 그렸다고 한다. 당시에 고양이를 기르는 것은 그다지 흔한 일이 아니었고 딱히 권장되는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대상이었던 고양이에 대해 루이스 웨인은 편견없는 눈을 가지고 피사체로 바라보면서 화폭에 담아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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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이는 특히 고양이 피터를 반려묘로 들인 영향이 컸다. 당시에 루이스 웨인은 가족들이 심각하게 반대를 해서 절연까지 해가며 결혼을 감행했었다. 10살 연상이자 누이 동생들의 가정 교사로 집을 찾았던 에밀리에게 반해버렸기 때문이다. 남성 가정 교사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인이었다면 여성 가정 교사는 전문적인 직업인의 대우를 충분히 못받던 시기였기 때문에 웨인 가족들은 에밀리와 결혼하려는 루이스를 감내하기 어려웠던 듯하다. 아마 그런 편견어린 시선을 받으며 결혼했기에 그가 피터를 더욱 편견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결혼한 지 3년 만에 유방암으로 아내 에밀리가 세상을 떠나면서, 루이스 웨인의 인생은 다시금 폭풍우 같은 순간을 맞이한다. 가눌 길 없는 슬픔을, 그는 피터에게 집중하면서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바로 이 때부터 다른 동물보다도 고양이들을 위주로 한 그림들을 많이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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숟가락 위에 달걀 얹고 달리기



루이스 웨인은 고양이를 화폭에 담아내면서 고양이들의 습성을 잘 파악하고 이를 반영하는 동시에, 그들을 의인화 시켜서 마치 사람이 행동하는 것처럼 그려냈다. 채색하지 않은 고양이 작품이나, 채색한 고양이 작품이나 변함없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루이스 웨인이 고양이들을 아주 사실적으로 그리면서도 마치 사람처럼 느껴지게끔 한 것이었다. 그는 고양이들을 보면서도 사람들을 생각하고, 자신을 생각했던 것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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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슨의 모자와 부츠는 좋다



특히나 사람이 쓰는 모자나 신발, 보타이나 옷 같은 아이템을 착용하고 사람처럼 서거나 앉아있는 고양이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어릴 적 받은 따돌림으로 인해 마음 속에 상처가 깊었을 그가 한편으론 이런 공동체의 순간들을 원하고 있었을까 하는 상상도 해보게 되었다. 고독이 필요한 순간도 있지만, 누군가와 함께 함으로써 얻는 즐거움과 충족감이 필요한 순간도 분명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순간조차 사람이 아니라, 말 못하는(DUMB) 동물들로 그림을 표현한 것은 그만큼 사람들이 그를 피곤하게 하고 힘들게 하고 상처받게 만들었다는 반증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차라리 말을 못해서 소통할 수 없는 동물들이 루이스 웨인에게는 가장 상처를 주지 않는 대상이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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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브 샷



약간 궁금해지는 부분은, 루이스 웨인이 고양이만 유독 좋아했던 건가 하는 점이었다. 왜냐하면 <드라이브 샷>이라는 작품을 볼 때 개인적으로 너무 놀랐다. 아무리 작품으로 상정된, 가상의 코믹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드라이브 샷을 때리려는 상황에 골프공이 아니라 그 위치에 검은 생쥐가 놓여 있으니 움찔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의외로 고양이 외의 다른 동물들에겐 별다른 애착은 없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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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 타고 달리기



루이스 웨인은 자신의 개인 작품뿐만이 아니라 동화책이나 엽서 등 다양한 곳에 삽화도 많이 그렸다. 그런데 이 중에서 '강아지 타고 달리기'라는 이름이 붙은 엽서를 보면, 고양이가 강아지에게 입마개를 씌우고 안장을 채워 달리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물론, 익살스럽고 귀엽게 느낄 수도 있는 장면이기는 하지만, 의인화된 고양이와는 달리 철저히 이용당하는 동물로만 그려진 강아지를 보면서 다소 의문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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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전시 공간 한 쪽 벽면에는 루이스 웨인이 고양이를 슥슥 그려내는 영상이 재생되고 있기도 했다. 보고 있으니 참 재밌는 기분이 들었다. 고양이의 얼굴과 귀를 하나의 선으로 루이스 웨인이 그리는 걸 보고 있으면, 우습게도 저 정도는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이후 눈을 그리기 시작하고 세밀한 터치로 털의 결을 살리고 표정과 움직임을 구체화하기 시작하면 이젠 그건 나처럼 미술을 교과목으로만 배운 사람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 된다.


이렇게 능력있고 뛰어난 사람이, 자신의 재능을 펼쳐서 사람들의 인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상응하는 정당한 대가를 지불받지 못하고 힘든 생활을 이어가다가 끝내 고통 속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 나에게 분노로 다가왔다. 이 부당함을 채 풀지도 못하고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나버렸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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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독서



정신병원에 입원한 후에도, 루이스 웨인은 꾸준히 작품활동을 이어갔다. 어딘가 모르게, 병원에 입원한 이후 그의 작품이 쓰는 색감이 더욱 화려해지고 다양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의 그는 좀 더 강렬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느끼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스스로 세상을 그렇게 기억하고 싶었던 걸까? 어느 쪽이었는지 그 누구도 답을 내려줄 수는 없겠지만, 그의 작품들은 변함없이 따뜻한 감성을 관람객들에게 전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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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이 명제가 루이스 웨인에게는 너무 가혹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루이스 웨인의 기구했던 인생이 과연 짧았나. 약 80년의 세월을 사는 동안, 그의 인생은 결코 순탄한 적이 없었다. 가족들은 아프거나 빨리 세상을 떠났고, 경제적인 어려움은 평생을 따라다녔다. 겨우 돈을 좀 벌어서 뭔가를 해보겠다고 투자한 것은 쪽박을 차서 더 큰 빚을 떠안게 되었고. 그런 그의 생을 되뇌어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울분이 차고 서글픔이 밀려든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그러나 그런 고난의 한가운데에서도, 루이스 웨인은 삶에 굴하지 않고 꿋꿋이 자신의 작품들을 남겼다. 그의 인생을 알기 전에 보는 그의 작품들은 아름답고 귀엽고 사랑스러움의 결정체처럼 느껴지곤 한다. 하지만 그의 인생을 알고 나서 바라보는 그의 작품은 생기를 넘어 삶에 대한 투지와 굴하지 않는 의지로 느껴진다. 비록 인생은 허상마냥 허무한 것이지만, 그의 예술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80년이 넘은 현 시점까지도 아름다운 예술로 우리가 기억하지 않는가.


기구한 인생은 짧아도, 예술은 길다. 그것을 온전히 자신의 삶으로 증명해낸 루이스 웨인은 관람객들에게 많은 바를 시사하고 있었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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