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눌 필요 없어 - 청춘별곡, 디자인 아트페어 2023

정말로.
글 입력 2023.06.05 16:31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나는 현대 미술에 흥미가 있다. 그러나 학문과 역사의 경계를 뛰어넘는 방대한 범위의 미학에 대해서는 아직 잘 알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난 아직 학부생인데다가 미술을 중점적으로 공부하는 학과도 아니다. 게다가, 미술을 좋아하기 시작한 것도 요 근래 3년 정도일뿐더러 미술 외에도 좋아하는 것이 많아 미학에 온전히 집중해 본 경험도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당장 나를 부여잡고 '현대 미술이 뭐냐'고 묻는다면, 말 끝을 흐리며 얼버무리다가 자리를 피해버릴 가능성이 높다. 이렇듯 소심하기 그지 없고, 얇디 얇은 지식을 창피해하는 나의 모습을 전문가들이 본다면 혀를 끌끌 찰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디자인에 대해 속속들이 잘 아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주변에 디자인 전공을 공부하고 있는 친구들도 많고, 이미 여러 작품을 세상에 선보이며 이뤄나가는 것들이 많아진 친구도 있지만 그게 나는 아니지 않나. 오히려 순수미술보다 응용미술을 더 모를지도 모른다. 생활 속에서 자주 마주하는 예술이자 가장 가까운 미술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나는 미술이란 분야를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걸까. 미술이란, 근 몇백년 간 수많은 학자와 예술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학문이자 문화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작품들과 화풍들이 정의되고 사라지길 반복해 왔으며, 그 역사를 돌아보고 이해하는 것엔 경우에 따라 한 사람의 일생이 소요되기도 한다. 계속해서 분화하고, 생겼다가 사라지고, 경계가 만들어졌다가 지워지는 현장 속에서, 우리는 미술이라는 예술의 초입에 너무나도 큰 혼돈을 둔 것인지도 모른다.

 

예술의전당 한가람 디자인 미술관에서 14회째 개최된 '디자인 아트페어'는 올해 '청춘 별곡'이라는 이름을 달고 그 모습을 선보였다. 그곳에서 보여주는 예술은 전시와 아트페어 간의 경계를 흐릴 뿐 아니라, 작가와 관람객 간의 벽을 없애기도 하고, 순수 미술과 응용 미술의 정의를 넘어서기도 한다. 나아가 국내와 해외 간의 예술적 교류의 장이자 신진 작가와 기성 작가의 만남을 이루는 장소가 된다.

 

 

디자인아트페어2023_청춘별곡전_포스터.png

 
  
 

아트페어?


 

처음 들어섰을 때 느꼈던 것은, 아트 페어에서 느끼던 '장'의 분위기였다. 상품의 가치를 눈으로 확인하고, 설명을 듣고, 살지 말지를 결정해야 하는 그 '장' 말이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부스마다 서 있는 사람들이 모두 작가이거나 그 지인이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열정적으로 본인의 작품을 설명하고, 그 가치를 부연하였다. 초입에 있던 부스 중에는 관람객의 이름을 써 주고 본인의 서예 작품을 소개하는 부스도 있었다. 자연스럽게 작품들에 대한 설명과 관련 아트 굿즈들을 소개하는 것까지 이어지고, 관람객들이 홀린듯이 구매하는 광경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이러한 모습은 코엑스에서 연에 1회 진행되는 '서울 일러스트레이션 페어'에서 쉬이 볼 수 있었던 모습으로, 아트페어의 묘미이자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순수미술 작품의 전시장을 방문한 것 같은 분위기가 풍겼다는 것이다. 부스에는 작가가 앉아 있거나 관람객의 질문을 받고 작품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관람객이 작품을 사야한다는 압박감을 느끼지 않는, 자연스러운 전시관의 광경이 펼쳐져 있었달까. 초입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정적임과 자유로움이 매력적이었다. 점점 뒤로 가면서는 초입에서의 아트페어스러움과 순수미술 전시스러움이 혼재되어 나타났다.

 

보다 보니, 아트페어와 전시 간의 경계를 흐리고자 하는 기획진들의 고심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너무 한 곳의 분위기에 치중되지 않게, 그러면서도 관람객이 부담감 또는 혼란을 느끼지 않을 수 있도록 자연스러운 전환을 위해 노력했음이 보였다.

 

 

 

미술과 나누기


 

미술과 나누기는 떼어 놓을 수 없는 단짝이다. 조금 더 풀어 말하자면, 미술과 '편 가르기'는 떼어 놓을 수 없는 동체랄까.

 

주류에 반항하는 비주류, 기존에 반하는 새로움이 그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미술에 있어 다양한 장르와 사조는 편 가르기를 통해 생겨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키려는 세력과 바꾸려는 세력 간의 갈등, 전환의 과도기에 놓였던 이들의 고뇌가 미술의 매력을 만든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미술을 판단하고 구분짓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행한다. 그것이 옳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과연 그게 예술로서의 미술에 좋은 영향만을 주는 것일까? 좋은 미술이란 무엇인가, 예술로서 미술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 이 질문은 미술계 전반에 떠 도는 난제와도 같다. 좋은 작품이란 무엇일까. 어떤 기법을 사용하고 어떤 사조에 속하므로 옳다는 식의 판단이 과연 앞으로의 미술 생태계에서도 정론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옳고 그름, 미와 추의 기준 속에서 순수미술은 엘리트성을 지향하고 응용미술은 대중성을 지향해왔다. 그들 사이의 간격은 작아보일 수 있어도 실은 크다. 손재주와 고뇌를 통해 탄생하는 산물이지만 그 것이 대중에게 쓰이면 응용미술이고, 순수미술이 확보한 지위보다는 낮은 급의 평가를 받는 는 것이 사실이다. 같이 공부하고 같이 만들고 같이 세상에 내놓았지만 다른 취급을 받는 작품들을 보며 미술대생들은 어떤 생각들을 했을까? 사견이지만, 디자인 전공자들이 회사에 남아 야근하며 작품을 공장처럼 뽑아내는 동안 순수미술 전공자들은 작업실에서 본인의 인사이트를 담은 작품을 빚어낸다는 점이 누군가에게는 차별처럼 느껴질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디자인은 작품이 아니고 상품인가? 은근한 엘리트 순수미술로부터의 절하는 어느 새 당연해져, 어쩌면 이젠 아무에게도 타격이 없을지 모른다.

 

이러한 현실을 뒤집는다는 거창한 표현을 쓸 것까진 없지만, 조금은 익살스럽게도 '청춘별곡'은 순수미술과 디자인을 섞어 놓는다. 섞어 놓으니, 우습지만 그 간의 차별이 무용함을 알 수 있었다. 그냥 예술이고, 미술이다. 나눌 필요가 없이 똑같은 작가의 산물일 뿐이다. 그 산물의 가치에 대한 판단은 관람객이 한다. 나아가, 그 관람객은 엘리트도, 대중도 아닌 그저 사람일 뿐이다. 나는 미술과 디자인이 궁금해 '청춘별곡'이 열리던 그 한가람 디자인 미술관을 찾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곳에서 디자인과 미술에 대한 어떠한 기준이나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미술에 대한 의문은 사라진 것 같다. 나눌 필요가 없고, 보는 그대로 향유하면 그게 예술이고 미술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루시아.jpg
@최루시아

 

 

 

일단 섞어



일단 섞어 봅시다. 어려울 것 없잖아요?

그게 미술이든, 노래든, 연기든, 춤이든, 연주든.

예술이기 때문에 아무거나 섞어도 좋은 게 나옵니다. 그것에 노력이 들어갔다면.

최선을 다했다면 그것이 어떤 결과물을 낳더라도 아름다울 것입니다. 청춘과 예술은 그래서 아름답습니다.

 

 

[유서인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