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한 입 파먹기 시리즈] 시티 오브 갓과 올드보이 ②

'파벨라 무비'와 '코리안 누아르'에 갇히다
글 입력 2023.06.13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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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 겉핥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치 겉과 속이 다른 수박을 외면으로만 보아 그 달콤한 과육은 채 알지 못하게 되는 것처럼, 어떠한 것을 채 제대로 알지 못할 때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브라질 한 입 파먹기 시리즈에서는 다채로운 브라질 문화를 다룹니다. 삼바와 축구, 자유와 열정… 그 속에 있는 이야기에 한 입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왜 브라질이냐고요? 이유는 없습니다. 수박, 맛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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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 오브 갓> (2002)

 

 

 

문화적 고정관념


 

<시티 오브 갓>은 ‘브라질의 영화도 좋다’라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는 자랑스러운 업적을 세웠습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브라질=리우=파벨라’라는 공식을 세우게 되었죠. 브라질은 이미 치안이 좋지 않은 국가라는 편견에 시달립니다.

 

이런 문화적 고정관념의 문제점은 영화 속 폭력이 실제로 브라질 사회 전체에 만연하다는 인식을 만들고, 브라질을 폭력의 배경으로만 존재하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브라질은 인종과 지역적 다양성이 풍부한 국가입니다.

 

그렇지만 세계적으로 알려진 <시티 오브 갓>과 같은 영화가 성공한 뒤 브라질이라는 국가는 미디어에서 ‘가난한 자들의 무법지’와 같은 평면적인 이미지로 재현되었습니다. 그 결과 결국 비평계에서는 여러 브라질 영화를 하나로 묶기 위해 ‘파벨라 무비(Favela Movie)’라는 용어를 만들어 내게 됩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파벨라 무비는 브라질의 파벨라를 배경으로 마약 거래와 폭력을 그리는 영화를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브라질 문화의 한 측면만을 선호하는 세계의 흐름은 2005년 <시티 오브 갓>의 한국 개봉 당시 마케팅 전략에서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개봉 직후 영화를 리뷰한 기사에서는 영화의 분위기를 설명하기 위해 ‘매혹적인 지옥’, ‘원시적인 동물성’, ‘살육의 향연’과 같은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영화의 유료시사회에서는 ‘분위기와 장르가 비슷한’ <저수지의 개들>의 DVD를 증정하는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합니다.

 

이렇듯 <시티 오브 갓>을 둘러싼 한국의 반응은 브라질 사회의 복잡한 갈등에 집중하지 않고, ‘갱스터’라는 장르와 자극적인 장면에 초점을 맞춥니다. 가장 큰 이유는 한국과 브라질 사이의 문화적 거리감이 크기 때문입니다. 두 시간짜리 영화 감상을 위해 브라질의 뿌리 깊은 사회적 문제를 공부하는 것은 관객에게 무리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관객에게 익숙한 기존의 장르를 내세우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죠.

 

그러나 이런 접근 방식은 한국 관객의 브라질에 대한 문화적 거리를 더욱 멀어지게 한다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언론인으로서의 성공을 위해 자신이 나고 자란 동네 사람의 처참한 죽음을 촬영해 보도하는 부스카페의 고민은 뒤로 하고, 결국 남는 것은 브라질 파벨라의 잔혹함뿐입니다. 브라질이라는 국가에 대한 이해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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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의 개들> (1992)

 

 

 

Favela Movie와 Korean Noir


 

폭력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브라질의 영화들이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파벨라 무비’라는 장르로 분류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브라질 영화계에 기대되는 것은 다른 좋은 이야기가 아니라, 또 다른 폭력적인 영화가 되었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지난 20년 간 브라질 영화인들의 고민이 되어왔다는 점은 한국의 ‘코리안 누아르’라는 장르를 떠올리게 합니다.

 

코리안 누아르라는 장르를 들어 보신 적이 있나요? 어떤 영화들이 이 카테고리에 들어가야 할지는 대충 알 것 같은데, 명확하게 어떤 영화들을 일컫는지는 모르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바로 그것이 ‘코리안 누아르’의 핵심입니다. 코리안 누아르는 모호한 장르입니다. 명확한 기준이 없어요!

 

장르에 포함되는 영화 사이의 공통점도 많지 않습니다. 유일한 공통점은 폭력적이라는 정도입니다. 코리안 누아르는 해외의 비평가들이 임의로 만든 일종의 가상 장르입니다. 한국 영화가 발견되기 시작한 시점에 한국 영화에 드러난 복잡한 사회적 맥락을 전부 반영하지 못하고 표면적인 영화의 톤과 무드를 중심으로 분류한 것이죠.

 

한국 영화는 무자비한 폭력과 충격적인 비주얼, 그 속에 숨어있는 신랄한 사회 풍자로 세계 관객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폭력적인 비주얼만이 한국적인 영화를 결정하는 요소가 되어버렸고, 한국 영화계는 그런 세계의 시선에 맞추기 위해 스크린 속에서 폭력을 다시 재생산하고 있습니다.

 

콘텐츠가 만들어 낼 문화적 고정관념을 걱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과 브라질 영화인들이 고민하는 것이 비슷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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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글에서는 <아가씨> (2016)도 '코리안 누아르'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세계의 기준 벗어나기


 

영화를 통해 형성된 문화적 고정관념에 한국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요? 제가 판단하기에 한국은 다양한 ‘베리에이션’을 만들려는 듯합니다. 새로운 인물이 기존의 이야기 이끌어가기, 기존의 장르를 한번 혹은 두 번 비틀어 주기, 특이한 설정 추가하기. 혹은 독립영화 씬에서는 아예 새로운 장르 창조에 도전하기도 합니다.

 

한편 브라질이 ‘파벨라 무비’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시도는 한국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합니다. 넷플릭스 시리즈 <신토니아>에서는 여전히 파벨라를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갱스터의 잔혹함을 전면에 내세워 다루지 않고, 갱에서 활동하고는 있지만 언제나 두려움에 떨고 있는 캐릭터를 그립니다.

 

이전의 영화와 같이 노골적인 폭력을 보여주지만, 폭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게 된 상황을 설명하기도 합니다. 영화 <바쿠라우>의 경우 배경은 리우가 아닌 북동부로 넘어왔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일어나는 국제적인 갈등을 우화의 형식으로 그리며 폭력을 사용하게 된 배경을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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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쿠라우> (2019)

 

 

‘한국/브라질의 영화는 폭력적이다’라는 오명을 벗어나기 위해 두 국가의 영화인들이 모색한 방향이 다른 것이 흥미롭습니다. 당연하게도 둘 중 어느 한 방법만이 옳다고 할 수 없겠죠. 각자 그 나라의 영상 산업이 마주한 현실과 타협하면서도, 각자의 문화가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이 복잡하게 얽힌 것이 지금 두 국가의 영화의 현주소일 것입니다.

 

앞으로 두 영화 산업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브라질에서는 영화를 통해 브라질의 정수를 보여주는 영화가 대중적인 성공을 할 수 있을까요? 한국은 또 다른 장르로 세계의 시장을 놀라게 할 수 있을까요?

 

* 브라질 한 입 파먹기 시리즈 첫 번째 에피소드 - ’시티 오브 갓과 올드 보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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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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