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죽음을 살아가는 자세 : 영화 '사랑하는 당신에게'

글 입력 2023.05.23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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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를 살아내기에 급급한 우리.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을 감당하기에도 벅찬 나머지, 이러한 일상에도 언젠가 끝이 있다는 걸 쉽사리 잊는다. 먼 훗날, 어떤 낌새나 징조가 드러난 후에야 생길 일쯤이라 여기는 건지. 하지만 모든 것은 순간이다. 제아무리 서서히 다가온다고 한들 일이 발생하는 건 어떤 때이니까.


'제르맹'과 그의 자식들이 겪은 죽음도 마찬가지였다. 공연 준비에 한창이던 그의 아내, '리즈'. 집안에서 고양이와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 즈음 밝은 목소리로 들어온 리즈를 맞이하는 것. 꽤나 평화로웠다. 제르맹의 건강을 걱정하며 이런저런 잔소리를 쏟아붓는 자식들이 꽤 성가시긴 해도.

 

오묘한 균형감이 있는 일상. 균열은 순식간에 생겼다. 쿵, 소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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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즈를 떠나보낸 제르맹. 그를 돌보겠노라고 자식들은 손수 시간표까지 만들어 아버지 돌봄 담당을 정해둔다. 그가 받았을 충격과 공허를 채우기 위한 시도였을 테지만, 제르맹은 그렇게까지 헛헛하지 않다.

 

아직 남아있는 게 있다. 리즈와 자신이 나눈 마지막 약속. 각자 해오던 일을 어느 한 사람이 못하게 되었을 때 상대방이 끝마무리까지 해주자고. 이를 알 터 없는 자식들, 특히 아들놈의 잔소리는 더욱 시끄러워지지만 제르맹은 조용히 리즈와의 마지막 약속을 지키러 떠난다.


생전 한 번도 춰본 적 없는, 난해하기 이를 데 없는 현대 무용의 세계로.

 

 

*

주요 내용 스포일러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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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든다는 건 어떤 것일까.


지금까지의 경험과 기억을 토댈로 여러 확신을 비롯한 가치체계를 정립한다는 것. 혹은 이미 가지고 있던 생각이 더욱 공고해지는 것.

 

작고 사소한 변화마저 '도전'이라는 단어와 연결 짓고 자신에게 가장 좋고 편한 일이나 장소, 사람, 상황 따위가 명료해진다. 물론 나 자신에 대해서 완벽히 안다고 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무엇이 편하고 무엇이 편하지 않는지는 판가름 낼 수 있겠지.


재빠르던 몸놀림은 온데간데없는 데다가 이젠 사회에서도 자신을 어르신으로 공경하기에 변화는 더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어쩌면 살 만큼 살았다고, 할 만큼 해봤다고 생각하며 그냥저냥 지금에 만족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제르맹이 그랬던 것 같다. 침대나 소파에 몸을 누이고, 누군가가 차려주는 밥상을 먹고, 간간이 고양이와 대화를 나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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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움직임 외엔 구태여 다른 걸 행하지 않던 모습. 자연히 사그라질 삶에 제동이 걸린 건 뜻밖의 죽음 때문이다. 아니, 사실 죽음을 뜻밖이라고 이름 붙이는 게 맞으려나.

 

죽음은 도처에 널렸다. 언제고 닥칠 수 있는 일임이 자명한데 대개 인지하지 않을 뿐이다. 무서워서, 무력해서, 혹은 무의미해서. 지긋한 나이의 제르맹은 자신과 리즈의 죽음이 먼 이야기가 아님을 인지했을 테다.


그럼에도 그를 움직이게 만든 건 뻔하디 뻔한, 누구에게나 닥치는 죽음의 도래. 정확하게는 죽음의 도래를 충분히 인지한 두 사람이 서로에게 남긴 의미일 거다. 사람은 누구나 삶을 떠나지만, 저마다의 시기가 있다. 고로 자신이 죽게 될 것을 생각한다는 건 자신의 죽음을 보게 될, 세상에 아직 남아있을 사람을 고려해야 함과 연결된다. 그 사람이 마지막까지 살아갈 의미를 덧대기 위하여.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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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에겐 낯설고 이질적이기만 한 것. 리즈는 자신이 주인공으로 속한 무용 공연을 한창 사랑했고, 제르맹은 현대무용이 무엇인지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다. 몇 번 보기는 했을 테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것이긴 했으니까. 그러나 그 행위를 이해하진 못했을 거다. 멀찍이 앉아 관망했을 뿐.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일에 선뜻 발을 내미는 건 쉽지 않다. 쉽지 않아도, 제르맹은 할 수 있었다. 그곳은 리즈의 열과 성이 담긴 공간이니까. 가볍게 몸을 놀리고 웃고 땀을 흘리고 애썼을 테니까. 리즈와 함께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하면 뻣뻣한 몸이나 낯선 연습방식은 문제가 안 되었다. 여전히 어렵다고는 느껴도 관둘 만한 크기는 못 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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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경험이 있을 거다. 전혀 취향이 아니던 것을 좋아하게 된다거나 이전엔 이해할 수 없던 누군가의 생각이나 행동을 이해할 수 있게 된 때.

 

이 차이는 어디서 비롯되는가. 달라졌다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어쩌면 익숙해진 걸지도 모른다. 사람은 잘 모르는 것을 경계하고 피하려 드니까. 그런데 처음의 거리낌을 이겨내고 지속하면, 다음 스텝을 이어가게 된다. 자연히.


꽤 꼬장꼬장한 제르맹의 경우엔 조금 더 큰 의미가 필요했겠고, 그건 리즈라는 사람 하나로 충분했다. 그의 꿈을 대신 마무리해 가며, 제르맹은 이해할 수 없던 리즈의 어떤 부분마저 이해할 수 있었다. 진즉 무용에 관심을 가졌다면 함께 무대를 즐길 수 있었으리라는 후회 일절 없이.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시기가 필요하다. 그래야 이해하려는 시도를 하게 되고, 끝내 받아들이는 경험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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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던 자식들도 그제야 이해의 순간을 맞이하고, 이야기는 일단락된다.

 

우리는 어떤 일의 결과를 부정적이라고 여기면, 그 결과를 만든 원인을 찾아내어 후회한다. 이러지 말아야 했는데, 이랬으면 지금은 달랐을 텐데. 하지만 이마저도 하나의 가정이고 바람이다. 실제로 자신의 예측대로 되었을진 아무도 모른다.


아는 건 딱 하나다. 이해하지 못했던 걸 이제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사랑하는 사람을 내가 조금 더 깊이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고. 중요한 건 과거에 없다. 지금 여기, 내가 감각하는 현재에 있을 뿐. 그러니 미래에 다가올 당연한 것들에 겁먹을 건 없지 않을까.

 

그것 또한 현재를 지나 과거가 될 테고, 미래를 겪은 미래의 현재엔 무언갈 하나 더 깨우치겠지. 그 믿음으로 살아간다면 이 삶이, 삶의 끝에 있을 죽음이, 그다지 무섭거나 무력하거나 무의미하진 않으리라.



[박윤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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