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 세상을 정확히 그린다 [미술/전시]

글 입력 2023.05.15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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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엔 유독 조각 매체를 다룬 전시가 좋았다. 공간을 입체적으로 점유하는 특성이 재미있고, 작가의 작업 과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부분을 발견할 때면 기묘했다.


전공 학술제를 위해 제출할 소논문에서 조각을 다룬 동시대 작가들(고요손, 최우람, 최하늘)의 작업을 소개하기도 했다.


조각을 중심으로 한 전시가 다수 열린 것도 내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권진규와 문신 회고전, 《조각충동》, 《나를 닮은 사람》 등등.


그런데 올해는 다시 회화에 관심이 생겼다. 그리고 이 역시도 하나의 전시 덕분이었다.

 

일민미술관의 ⟪히스테리아: 동시대 리얼리즘 회화⟫(2023. 4. 14.–2023. 6. 25.)는 동시대 한국 회화의 ‘리얼’한 경향을 살피고, 13명의 참여 작가를 한국의 리얼리즘 미술 계보에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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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가 바라보는 ‘리얼리즘은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태도로 작가에 의해 성립하는 세계 인식·표현의 방식'이다. 전시 제목이 그렇듯 작가들은 히스테릭하게 ‘나’와 대상과 그리기에 대한 인식하기를 거듭했다.


그림에 구체적인 형상을 비롯해 수많은 요소가 담겨있기 때문에 관객은 바빠질 수밖에 없다.


붓 터치를 보려 가까이 다가가기도 하고, 캔버스 전체를 아우르는 작가의 의도를 알고 싶어 뒤로 물러나는 동작을 여러 번 했다. 그러다 벽글을 읽고 알게 된 사실에 감응하며 방금 지나친 캔버스를 다시 마주했다.


전시가 시작하는 1층 초입에 놓인 최진욱의 회화를 중심으로 동시대 한국 리얼리즘 회화의 흐름을 대략 파악할 수 있었다. 전시장 한편에 펼쳐놓은 그의 작업노트 여러 개가 기억에 남는다. 다짐처럼 되내듯 적은 수기들이 솔직해서 꼼꼼하게 봤다. 작가로서 자신이 기억할 말을 적은 것이지만, 나에게도 언젠가 영감을 줄 것만 같아 사진도 여러 장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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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작가마다 구상과 추상 사이에서 리얼리즘을 고수하며 자신만의 무언가를 계속해서 발굴하는 지점을 조명해서, 뭐랄까 되게 좋았다. 또 애초 기획대로 매체는 ‘회화’ 하나였음에도 전혀 단조롭지 않고 재밌었다.


회화에 재입덕한 게 분명하다.


공간이 작가별로 구획되어 있으나, 다른 작가 작품 몇 점이 꼭 중간에 끼어있어서 그런대로 흥미로운 연출이었다. 자연스럽게 다음 작가 파트로 이어졌다.


눈에 띄는 점은 지금 작가들은 스마트폰 카메라나 3D 프로그램 같은 디지털 매체를 적극적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화면을 보는 자신, 그 안에 대상, 실제 대상을 넘나들며 사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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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은 작가의 작업을 몇 개 꼽았다.

 

2층에 설치한 김혜원의 <마포중앙도서관>(2021), <당산철교를 건너는 2호선 열차의 내부>(2022)는 회화이지만 카메라를 연상케 하는 구도가 특징이다. 시점과 구도는 그러한데 표현 방식이 극히 ‘회화적’이어서 포착한 그 순간을 미묘하게 만든다. 색점을 찍어 형상을 구현하는 점묘화 방식을 택했기 때문에 그러한 느낌이 들게 한다.


3층 김민희의 <클레어 포트란>(2022)과 <에이바>(2023)는 마치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같다. 특히 <에이바>는 3m 규모로, 매우 거대한 사람인지 인조인간인지 모를 애매한 인물이 정면을 주시하고 있어 인상적이었다. 실물보다 사진으로 찍을 때 오히려 더 물질성이 느껴져서 그의 작품은 꼭 실제로 감상하길 바란다.


노상호의 <더 그레이트 챕북 4-홀리>(2023)처럼 AI-‘달리(Dali-E) 2’ 와 ‘미드저니(Midjourney)’-를 이용한 그림을 실제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전생체험을 기반으로 연작을 그린 이수경의 작업도 흥미로웠다.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가만히 보며 그림 멍(?) 하고 싶었던 노충현의 회화도 추천한다.

 

[한국 미술에서는 최근까지도 현대적인 구상회화라는 표현이 낯설 정도로 현대미술과 구상회화 사이에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물론 80년대 이후 활발하게 전개된 민중미술과 해외미술의 다양한 수용을 통해 그림이 현대적이기 위해 반드시 추상적일 필요는 없다는 인식이 점차 확대되어 왔다. 그러나 동시대를 반영하지 못하는 낡은 방식의 구상회화와 현대적이지만 대상세계를 배제한 추상회화 사이에는 여전히 깊은 심연이 존재한다. 대개의 화가들은 그 심연을 들여다보는 순간 현기증을 느끼고 뒤로 물러선다. 그 뒤에는 밑도 끝도 없는 현실의 대상 세계가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현실의 대상세계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관객은 같은 이유로 인해 현대적인 추상미술과 낡은 구상회화에 대해 깊은 소외감을 느낀다. 이 거대한 간격을 메울 수는 없을까?] - 전시장 벽글 중



[지소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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