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간다움이라는 틀에서 발견한 모순 덩어리 [영화]

영화 <블레이드 러너>를 보고
글 입력 2023.05.12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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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초. 인류는 유전학적으로 만들어진 인조인간인 '레플리칸트'를 만들어낸다. 레플리칸트는 인간과 동등한 지적 능력에 인간을 앞서는 신체 능력을 가졌으나 격리된 채 전투원이나 우주 개발, 또는 섹스 인형과 같이 인류의 노예로서만 사용되는 상태였다. 그리고 이들은 단점이 있는데, 수명이 4년으로 매우 짧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레플리칸트는 인류와 동일한 사고를 가졌기 때문에 자신들의 처지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고, 식민지 행성에서 레플리칸트 전투팀이 폭동을 일으킨 뒤엔 레플리칸트가 지구에서 거주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 된다.

 

지구에 불법적으로 들어온 레플리칸트를 찾아내고 처형하기 위해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라 불리는 특수 경찰 팀이 만들어지고, 이들은 보이트-캄프 테스트를 통해 인간과 레플리칸트를 구별해 내고 레플리칸트를 사살하는데, 이 사살을 처형이라고 하지 않고 폐기(retirement)라고 부른다. 즉 레플리칸트를 살아있는 인간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2019년 11월, 한때는 블레이드 러너였지만 이제는 은퇴한 인물인 릭 데커드가 다시 경찰인 브라이언트 반장에게 호출을 받는다. 십수 명을 학살하고 LA 주변으로 잠입한 신형 레플리칸트, '넥서스(Nexus) 6'들을 찾아내 제거하라는 게 그 이유. 레플리칸트 여섯이 지구에 잠입했지만 이들 중 둘이 타이렐 사에 잠입하다 제거되었고 넷이 남아 있는 상태이다. 데커드는 처음에는 거부했지만 결국 레플리칸트들의 추적에 나선다.

 

 

 

# 인간다움이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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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등장하는 사람들은 딱 두 가지 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 바로 인간과 리플리컨트(replicant), 즉 다시 말해 복제 인간이다. 1982년도에 제작된 이 영화는 인간들의 상상 속 2019년도의 모습을 재현한 영화이다. 인간과 복제 인간이 공존하며 살아가는 세상.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공존의 의미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의미와 조금 다르다. 인간과 달리 2019년 세상의 복제 인간은 인간이 만들어 낸 재산이자 생산품일 뿐 사람들은 그들의 생각과 감정에 대해서는 극한의 두려움과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창조자인 타이렐 박사도 그들의 길지 않은 수명에 대하여 외면할 만큼 그들은 “인간의 권리”를 존중받지 못한다.

 

여기서 의문점이 한 가지 들었다. 과연 이 영화에서 명시하고자 하는 “인간다움”이란 무엇일까? 이 포인트에서 가프가 한 대사가 떠올랐다.

 

 
“하긴 누구는 영원히 살겠나?”
 

 

그렇게 완벽해 보이는 인간 또한 영원히 살지 못한다. 단순히 복제 인간보다 몇십 년을 더 살 뿐 결론 죽음이라는 것을 인간들은 잘 알고 있다. 여기서 복제 인간들이 인간다움이란 = ’더 오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로이가 그렇게 목숨의 연장에 끝없는 욕망을 표출했던 것이다.

 

또한 복제인간들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없다. 인간들의 감시 아래, 무기로 때로는 유흥적 요소로 세상을 구성하는 하나의 부품이었을 뿐 그들 스스로 삶을 개척하여 나가는 모습은 절대 볼 수가 없다. 그들은 마음대로 사랑을 할 수도 멀리 떠날 수도 없다. 말 그래도 구속이 일상인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아무리 복제인간이라고 해도 이렇게 구속하고 속박하는 것은 오히려 그 적은 복제인간들의 숨겨진 야망과 본성을 오히려 더 일깨우는 각성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즉 그들의 인간다움에 대한 욕망이 이 큰 사건을 불러일으키게 된 것이다.

 

인간들은 자신이 인간다움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로 그냥 살아간다. 나도 지금 당장 내가 누리고 있는 수많은 인간다움을 무시한 채 누리지 못하는 부분만 바라보면서 권리를 달라고 억지로 고집 피우고 있는 모습이 있지는 않았을까 반성하게 되는 영화였다.

 

 

 

# 복제인간을 잡는 자, 동시에 그들과 제일 가까운 블레이드 러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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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영화 속 이곳은 복제 인간 즉 기술이 무기인 곳이다. 경찰들은 총을 소지하고 자신이 범인을 단속하는 와중에 총을 바로 사용할 수 있는 무기의 사용이 자유로운 공간이다. 그리고 여기서 제일 중요한 개념이 바로 “블레이드 러너”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서 블레이드 러너인 데커드는 복제 인간을 단속하는 경찰이다.

 

단순히 복제 인간만을 단속하고 살해하는 것이 아닌 “감정”을 가진 복제 인간을 살해하는 것이 데커드의 임무이다. 하지만 누구보다 그들에게 차가워야 할 데커드는 또 다른 리플리컨트인 레이첼과 사랑에 빠지고 만다. 첫 번째 그가 살해한 복제 인간을 통해 그는 레이첼을 자신이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영화 내내 나는 데커드가 그들을 내가 왜 살해해야 하는지 모른 체 단순히 임무에 충실하는 경찰관, 그 모습이 다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첫 번째 복제 인간을 죽인 뒤, 그의 모습은 조금 달라졌다. 레이첼과 더 사이가 가까워질수록 그는 진정한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단순히 복제 인간들이 원하는 것이 오래 사는 것이었는지 의문점을 가지고 이 사건에 접근한다.

 

blade runner를 네이버 사전에 쳐보니 blade는 무기 runner는 밀수업자라는 뜻이 또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뜻은 겉으로는 그 무기 즉 복제 인간을 상품으로만 본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을 오히려 뒤에서 숨겨주는 사람의 모습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했다. 마치 레이첼을 죽이지 않고 뒤에서 지켜주었던 것처럼 말이다.

 

 

 

# 과거 같은 미래, 미래 같은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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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상상하여 영상에 재현하는 다른 영화들은 다 진보적이고 훨씬 더 발전된 사회를 그리곤 한다. 하지만 여기 <블레이드 러너>에서는 다르다. 언뜻 보면 훨씬 더 발전된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회 같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더 퇴폐하고 발전되지 못한 장소들이 보이기도 한다.

 

나는 이 점이 다른 영화들과 달라서 인상 깊었다. 사진을 보고 분석하는 장면에서는 그 당시에는 굉장히 획기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데커드가 조사를 나간 뒷골목에서는 지금보다 더 노후해진 길거리의 환경을 보여주는 듯했다. 이는 감독이 과연 미래라고 해서 환경이 더 깔끔해지고 더 발전된 사회를 우리가 마주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점을 던져주는 것 같아서 신선했다.

 

 

[임주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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