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좀비 지옥? 현실 지옥! [만화]

네이버 웹툰 <위 아 더 좀비>
글 입력 2023.04.23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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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웹툰 ‘위 아 더 좀비’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서울 중심부에 위치한 초고층 타워이자 국내 최대 쇼핑몰. 서울의 랜드마크인 한 타워에서 원인 불명의 바이러스가 발생, 전대미문의 좀비 사태가 발발한다. 그러나 바이러스로 인한 카오스도 잠시, 전 국민을 공포의 도가니에 빠뜨렸던 일명 ‘서울 좀비 사태’는 군경에 의해 약 3시간 만에 진압되기에 이른다.

 

365일 내내 수많은 인파로 발 디딜 틈 없던 타워는 불과 몇 시간 만에 폐허가 됐고, 정부는 사람들을 구출한 후 타워를 봉쇄하고 안에 남은 좀비들을 고립시켜 좀비 지구를 만들기로 결정한다. 인간이라면 좀비 지구를 탈출하기 위해 구출될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인지상정. 그러나 몇몇 비감염 생존자들은 구조 요청 시도를 전혀 하지 않은 채 각자 모종의 이유로 타워 안에 숨어 살기 시작한다. 

 

네이버 웹툰 <위 아 더 좀비>는 독특한 설정으로 눈길을 끈다. 대부분의 ‘좀비 아포칼립스물’이 좀비로 인해 닥친 재해의 공간을 탈출하거나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들의 생존 욕구와 긴박한 모습을 다루는 반면, 이 작품은 ‘좀비 세상으로부터 탈출해 생존을 갈구하는 인간들’이라는 명제를 보란듯이 부순 채 다소 평화롭게 흘러간다.

 

타워에 남아있는 생존자들이 좀비로 인한 위기가 산재하는 공간을 애써 탈출하지 않는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지옥 같은 현실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 재난보다 더 재난 같은 현실로부터 도피하여, 차라리 숨을 공간투성이인 넓은 타워에 남기로 한 것이다. 탈출하다가 죽게 될까 봐 미처 대피하지 못했다는 핑계를 대며, 각자의 사연을 품은 채 타워 내부에서 삶을 영위해 나간다.

 

이미 현실에서 끔찍한 재난 속에 살아가던 청년들은, 자신의 생존 사실을 숨긴 채 금전적 및 심리적 부담 없이 풍부한 자원을 활용하며 타워 내부에서 몰래 버티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기에 이른 것이다. 마음의 병, 가난, 거듭된 실패 등으로 인해 항상 양심의 가책과 부담을 느껴야 했던 세상으로부터 도피한 인물들의 아이러니한 생존기가 생생하게 그려진다.

 

 

 

차라리 좀비 떼와 공생하길 택한 낙오된 청년들의 생존기



 

“인생을 멋지게 완주할 자신은 없고, 그렇다고 그만 살 수도 없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살다가 여기 갇히게 됐고. 개이득이다 싶어서 이러고 있는 거예요.”

 


타워 안 인물들의 중심에는 주인공 ‘김인종’이 있다. 어릴 적, 아버지의 사업이 거하게 망한 탓에 어머니는 병을 얻어 돌아가셨다. 할머니와 둘이 살게 됐을 때부터 그의 장래희망은 공무원도 좋고, 회사원도 좋으니 그저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 원체 소심한 성격 탓에 어디에서도 튀지 않고 그냥저냥 무난하게 살다가 남들처럼 대학교에 입학한다.


열심히 살아도 평범한 사람이 되기 쉽지 않다는 것을 비로소 대학생이 돼서야 깨닫는다. 딱히 갑부가 되겠다는 생각을 가진 적도, 막대한 성공을 이루겠다는 큰 꿈을 꾼 적도 없었지만 가난이 족쇄처럼 따라붙는 자신에게는 적당히 평범한 삶을 바라는 것도 과분하다는 사실을 뒤늦게나마 자각한다.


별 볼 일 없는 인생에서, 그나마 평범한 사람이라는 꿈이라도 꿀 수 있게 해준 이유였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부터는 삶의 갈피를 완전히 잃는다. 게으르게 살다가 게임을 하며 시간을 때우기 위해 온 타워에서 좀비 사태가 터진 이후로, 탈출을 위해 힘쓰지 않고 1년 동안 타워에 눌러앉다시피 하게 된다. 낙오자가 된 현실 속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탈영병 ‘임경업’도 그와 비슷하다면 비슷한 사연을 가지고 있다. 그는 충동도, 졸음도, 하기 싫은 것도 모두 잘 참는 완벽주의자로 자랐다. 부모님 뜻대로 의대에 진학했지만, 입대 후 이때까지 몰랐던 사실을 처음 깨닫는다. 자신은 ‘납득이 안 가는 것’을 절대 참지 못하는 사람이었다는 것. 불합리한 일 투성이였던 군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폐급’ 취급을 받다가, 좀비 사태를 기회 삼아 탈영을 감행한다.


고등학교 때는 유도 선수, 성인이 돼서는 종합 격투기 선수로 살아온 ‘김소영’은 겉으로는 누구보다 강인해 보이지만 속은 곪아 있는 인물이다. 어릴 적부터 의지할 곳 없이 남동생을 돌보며 아등바등 살아와야 했던 탓인지, 성격이 급하며 감정 조절과 공감에 서툰 성인이 되었다. 


자신의 전부인 동생을 괴롭힌 학교 폭력 가해자를 우발적으로 살해하고 도망치다가 자수를 결심한 날, 하필 좀비 사태가 발발한다. 그때 잃어버린 동생을 1년째 찾지 못해 타워 밖으로 나가지 않고 있다. 동생이 타워 어딘가에 살아있을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이 있어서 남아있는 것은 맞지만, 탈출을 시도하지 않는 근원적인 이유는 살인이라는 끔찍한 죄와 자신의 모습에 대한 부정이자 도피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김인종, 임경업, 김소영 이외에도, 최선을 다할 힘과 의지를 잃은 채 몇 년째 웹 소설 작가 지망생으로 살아가던 ‘왓 존슨’. 모든 게 빠르고 급하게 굴러가는 나라인 대한민국에서 뭘 해도 느린 천성 탓에 구박만 받으며 살아왔던 ‘이지혜’. 그리고 단번에 9급 공무원 합격을 이뤄냈지만 민원을 처리하는 업무에 지쳐 우울증 심리 상담을 받고 있던 ‘한보라’까지.


인물들의 다양한 사연을 통해, 복잡하고 고통스러운 세상의 과업과 현실의 죄책감으로부터 도피하여 차라리 좀비 떼 사이에서 살아남길 택한 청년들의 모습과 그 속앓이를 마주하게 된다. 작중 배경은 좀비 바이러스가 점령한 세상이라는 판타지를 표방하고 있지만, 만화 속 이야기가 마냥 가상의 것처럼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지극히 현실적인 청년들의 사정 덕택인 듯하다. 

 

 


지긋지긋해도 결국은 함께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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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아 더 좀비>는 좀비들을 피해 살아남아야 하는 인간의 지난한 생존기를 다루는 대신 좀비 타워를 현실의 도피처로 삼고 살아가는 모순적인 상황 속, 인물들의 미시적인 사연과 감정을 포착하는 방식으로 캐릭터에 집중했다는 점에서 특별해진다. 더불어, 이 만화가 더욱 탁월해지는 지점은 이러한 인물들이 타워 내에서 마침내 진실한 관계를 맺고 공동체를 이루게 된다는 아이러니함에서 비롯된다. 


지긋지긋한 타인들과 번잡한 사회를 피해서 좀비뿐인 공간으로 도피했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본질적으로 공생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타워 안에서는 여러 공동체가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주인공 인종 역시 1년을 홀로 고립돼 살다가 경업, 소영을 필두로 형성된 공동체에 우연히 합류하게 된다.


사회의 무한 생존 경쟁에서 밀려나 낙오됐던 인물들이 오히려 좀비 사태라는 긴박한 위기를 맞이하자, 비로소 숨 가쁜 현실로부터 도피하고 잠시 숨을 고른 후 자신과 타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다르면서도 어딘가 비슷한 서로의 상처와 결핍을 이해하려 애쓰며 갈등하고 공감하는 방법을 배워 나간다.


인물들은 타워 내에서 마주하는 온갖 사소한 사건 사고를 통해 자신의 몰랐던 모습을 알아가고 나름의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 공동체 안의 유일한 어린아이인 ‘정왕왕’의 미래를 위해 다 함께 머리를 모아 골몰하기도 하고, 바다를 보고 싶다는 왕왕의 꿈을 실현해 주기 위해 거주 공간을 물바다로 만드는 실없는 사고를 치기도 하면서 잃었던 웃음을 잠시나마 되찾는다.


어디에서나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던 인종은 타워 내의 사고뭉치로 전락하는 뜻밖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만사 귀찮아하고,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행동도 잽싸지 못해서 문제를 일으키기 일쑤지만 편견과 참견 없이 남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는 성정 덕택에 의도치 않게 문제를 해결하는 기이한 능력자로 활약하게 된다.


또한, 화려하고 특별한 인생이 아니라 그저 휴식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보라는 타워 안에서 청소, 요리, 화분 가꾸기 등 다양한 취미를 만들어 가는 모습을 보인다. 뭐든지 느려서 무시당하는 것이 일상이었던 지혜가 차린 무인 카페는 음료가 나오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다고 비난받는 대신, 사람들이 고민거리를 털어놓을 수 있는 타워 내 유일한 창구로 거듭나기도 한다.


바삐 굴러가는 현실에 치여 자신을 돌볼 시간이 부족했던 청년들에게 필요했던 건 거창한 것이 아니라 잠시 숨을 돌릴 틈, 오직 그것 하나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감당해야 하는 현실적 문제들 때문에 자신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조차도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그러니까 공허와 허무라는 인생의 진짜 위기가 코앞에 다가왔음에도 그것이 위기인지 모르고 살았던 청춘들의 초상이 그려진다.


죽음의 상징인 좀비가 그득하지만, 잠시나마 직업, 빈부, 성공, 사회적 지위 등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남들의 인생과 나를 비교하지 않은 채 살아갈 수 있는 타워가 안락한 공동체로 역할하게 된 것은 모순적이면서도 어쩌면 마땅한 일이다. 언젠가 사회로 다시 돌아갔을 때 좀비가 아닌, 투명 인간이 아닌 진짜 사람으로서 숨 쉬고 살아가기 위해 자아를 찾고 서로 연민하며 그렇게 버텨간다. 


<위 아 더 좀비>가 그리는 이야기는 누군가에겐 좀비 사태보다 더 심한 재난처럼 느껴지는 경쟁 사회에 대한 일종의 경보음처럼 느껴진다. 노력으로 극복하지 못하는 한계와 무력감을 마주한 청춘들이, 자신을 돌보고 살필 수 있도록 조금만 따뜻하게 타인을 바라보는 세상을 만들어 가자며 서로에게 외치는 고함이자 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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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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