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전쟁 밖에서 보는 전쟁 이야기, '몬순' [공연]

우리 곁에 불어오는 전쟁의 파편에 대하여
글 입력 2023.04.23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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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VIEW ***

연극 <몬순>



[국립극단]몬순_포스터.jpg

 

 

<몬순> : 당신의 일상은 전쟁의 시간과 무관합니까?

 

국립극단의 작품개발사업 [창작공감 : 작가]를 통해 탄생한 <몬순>은 작년 한 해 동안 개발되어 올해 관객과 처음 만나는 작품이다.

 

섬세한 인물 묘사가 강점인 이소연 작가는 근 미래 가상의 3개 국가에서 살아가는 9명의 인물을 설정하여 소속 국가, 처한 상황도 다른 이들의 면면을 통해 전쟁이 개인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을 치밀하게 그려냈다.

 

<몬순>은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4월 13일부터 5월 7일까지 만날 수 있다.

 


[국립극단]몬순(2023)_홍보사진06.jpg

 

 

 

전쟁 밖에서 보는 전쟁 이야기


 

연극 <몬순> 속 세계에는 아홉명의 등장인물, 세 곳의 나라가 있다.

 

차미와 차미의 아들 굴, 차미네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고 있는 네이지. 대학원생 새벽과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이삭, 교환학생 코우쉬코지. 퀴어 페스티벌 공연을 앞둔 연인 리오와 문, 그리고 그들의 친구 홀키.

 

이들 중 네이지, 코우쉬코지, 문은 전쟁 중인 나라 '타트' 출신 인물들이다. 극은 고향을 떠나온 세 인물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세 나라는 언어나 음식, 문화는 다르지만 연극 속 세계는 현재 우리 사회와도 꽤나 닮아있었다. 3D 게임 영상이나 ZOOM 수업, 화상 통화와 같은 일상 속 미디어 소재를 무대 장치에 담아 <몬순> 속 전쟁이 단지 연극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점을 실감할 수 있었다.

 

계절풍을 뜻하는 단어 '몬순'은 비를 동반한 바람을 일컫는다. 연극 <몬순>에 타트의 현재 상황이나 전쟁의 참상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모습은 없다. 오히려 그 주변부, 아무 영향을 받지 않을 것 같은 일상이 지속되는 곳에도 스며든 전쟁의 그림자를 그린다.

 

마치 우산을 써도 막기 힘들어 예외 없이 모두의 몸을 통과하고 흠뻑 적시는 기상 현상처럼.

 

 

[국립극단]몬순(2023)_홍보사진05.jpg

 

 

네이지의 가족은 생업인 식당을 운영하기 위해 전쟁중인 타트에 남아있다. 드론을 날려도 서른 밤을 넘게 날아가는 곳에 살고 있는 네이지는 가족들에게 세 시간마다 한 번씩, 마치 생존을 확인하는 듯한 전화를 건다. 때때로 수화기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총 소리는 네이지의 가슴을 철렁이게 한다.

 

반면, 네이지를 불안에 떨게 하는 총소리는 새벽에겐 유희로 즐기는 게임의 일부일 뿐이다. 대학원생 새벽은 미디어아트 졸업 전시 주제인 '전쟁'을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한다. 또 다른 전쟁 국가에서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연인 이삭이 종종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지만 성에 차지 않는다.

 

새벽은 전공 과목 교수의 소개로 타트에서 온 교환학생 코우쉬코지와 만나게 된다. 교수는 코우쉬코지가 대학원생이 아니란 것도, 이 수업을 신청하지 않고 도강하는 학생이라는 점도 몰랐지만 그가 '타트인'이라는 것만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작품을 구상하는 새벽은 자꾸 겉도는 느낌이 들어 혼란스럽다. '타트인'으로 타자화 된 삶을 모르는 새벽이 중심부에 다가갈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코우쉬코지가 말하는 타트어의 미묘한 뉘앙스를 이해하기 힘든 것처럼.

 

타트 출신 안무가 문은 어느 날 가게에서 점원에게 아무 이유 없이 심한 폭행을 당한 적이 있다. 그리고 문은 퀴어 페스티벌에서 연인인 리오와 이 상황을 소재로 공연을 하고자 한다. 하지만 리오는 좋지 않은 기억을 굳이 반복하는 문을 이해하지 못한다.

 

문은 폭행을 당한 후, 그 장면을 계속 머릿속으로 되감으며 이유를 찾는다. 꺼내기 귀찮은 위치에 있는 담배를 달라고 해서? 말투가 거슬려서? 헤드셋에서 소리가 크게 들려서? 하지만 상황을 곱씹을수록 문은 자신이 게이이고 타트인이기 때문에 맞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국립극단]몬순(2023)_홍보사진02.jpg

 

 

연극에는 '유리 괴물'을 소재로 한 짤막한 우화가 등장한다.

 

유리 괴물은 산책할 때마다 사방으로 아주 미세하고 고운 유리 알갱이를 흩뿌리는 괴물이다. 유리 입자가 너무 작아서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괴물이 지나간 자리에 있으면 살갗이 찢기는 것 같은 고통을 느낀다.

 

상상 속에만 살고 있을 것 같은 '유리 괴물'은 전쟁이라는 모습으로 주위를 성큼 대며 걸어 다니고 있었다. 괴물의 투명한 몸에 내가 비쳤을 때, 나는 유리 괴물인 것인가? 아니면 맞은편에서 유리 파편을 맞고 있는 사람인가?

 

연극은 결국 이 사회에 살아가고 있는 한 '모두가 전쟁의 공모자이면서 피해자'라는 점을 이야기를 통해 전달하고 있다.

 

하지만 <몬순>은 무기력하게만 마무리되지는 않는다. 네이지는 차미가 근무하던 회사가 전쟁에 쓰이는 무기를 생산한다는 것을 알고 떠나기로 결심한다. 코우쉬코지는 전쟁을 반대하는 동아리를 창단하고, 문은 타트에서 나고 자라는 고추의 모종을 다시 재배하기로 한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막이 내린 후에도 계속 곱씹어보는 질문을 던진 연극, <몬순>이었다.


 

[정선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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