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첫 자취를 시작하며 [사람]

비로소 시작된 홀로서기
글 입력 2023.04.20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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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가 빠질 것 같은 가방을 메고, 덜그럭거리는 캐리어를 힘겹게 끌며 간신히 도착한 서울역. 그곳에는 서로에게 관심 없는 사람들이 제 갈 길을 찾으며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그토록 바라던 상경이 이루어지던 날, 나는 이곳이 서울이라는 기분을 느끼기도 전에 약속된 시간에 맞춰 부랴부랴 움직였다.

 

예상대로 앉을 자리 하나 없던 지하철에서 그나마 지옥철이 아님에 감사하며 내 짐을 나눠 든 가족들과 함께 벽에 기대어 안정을 취했다. 다행히 자취방이 서울역과 먼 거리가 아니었기에 큰 무리 없이 도착할 수 있었고, 이따금 보이는 계단에 좌절과 고통을 반복하며 무사히 도착했다.

 

처음 방을 구했던 날보다 약 2주가량이 지난 시점이라 방에 대한 기억이 점차 희미해지던 때였다. 더군다나 방을 구하던 당시 정신적으로 너무 힘이 들어 당시의 기억도 온전하지 못했다.

 

즉, 과거의 기억이 조금은 미화되었단 소리다. 내 기억 속의 방과 실제로 맞닥뜨린 방은 약간의 차이가 있었고, 소꿉장난 같다던 엄마의 말에 반박조차 할 수 없는 5평 남짓한 공간에는 수북이 쌓인 박스가 나를 반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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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움직이면 서로 부딪히는 방에서 종일 쓸고 닦고 풀고 정리하고, 필요한 물건은 밖에서 사 오고… 몇 시간 동안 이어온 신체 노동 탓에 밖이 어두워진 줄도 몰랐다. 그제야 챙기는 늦은 저녁은 땀 흘린 뒤 먹는 달콤함과 정리가 끝난 후련함이 뒤섞인 소위 말해 존맛이었다.

 

막내딸의 상경을 돕기 위해 다 같이 올라온 가족과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씻을 준비를 하려던 찰나, 집주인에게 걸려 온 전화 한 통에 후련했던 내 기분은 금세 바닥을 찍었다. 통화의 이유는 다름 아닌 옆집에서 소음 민원이었다. 고성방가 따위의 큰 소음은 전혀 없었다고 자부할 수 있었으나 자각하지 못한 대화 속의 큰 소리가 있었겠지 하며 원룸 특유의 취약한 방음 시설에 한 번 더 기분이 다운되던 순간이었다.

 

서울 온 김에 쉬는 날 맞춰 놀다가 내려가자던 가족들과 며칠 밤을 함께 보낸 뒤 상경한 지 5일째가 되어서야 비로소 혼자가 되었다. 마지막 날까지 함께 했던 언니를 보내주며 기차역에서 흘렸던 눈물이 무색하게도 집에 돌아오니 또다시 눈물이 후두두 쏟아졌다.

 

나를 위한 반찬 택배가 문 앞에 놓인 걸 봤을 때, 온전히 내 짐만 덩그러니 남은 게 보일 때, 내가 입을 열지 않으면 아무런 소음도 발생하지 않는 정적임을 자각했을 때. 태생이 울보인 탓에 여러 순간마다 코끝이 찡해졌고, 결국 잠들기 전 일기를 쓰며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그렇지만 이 눈물의 의미는 혼자 남게 된 외로움이나 두려움 따위가 절대 아니었다. 끝까지 반대하던 가족 틈에서 고집대로 올라온 나에게 그들이 건넨 따뜻한 마음 때문이었다. 의견충돌과 팽팽한 대립의 연속이 포기와 고집이 되기까지, 그 속에 존재한 모두의 속앓이와 나 홀로 외쳤던 억울함과 속상함이 기어이 눈물을 만들어냈다.

 

결국 하고 싶은 일을 할 거라며 고집대로 올라온 나였기에 상경은 온전한 내 몫이라 여겼고, 스스로 모든 걸 해결해야 하는 과제 같았다. 그러나 처음으로 멀리 떨어져 지낼 나에게 보인 촉촉한 눈가와 따뜻한 음식, 매일 배송되던 택배들. 그 안에서 나는 많은 걸 느꼈고, 좋은 자극제를 얻었다.

 

남들보다 조금 늦게 시작한 홀로서기의 무게는 첫날 어깨에 짊어 들었던 가방보다도, 통제가 힘들 만큼 무거웠던 큰 캐리어보다도, 집안 가득 쌓여 있던 박스보다도 훨씬 더 무거운 것이었다.

 

어쩌면 지금은 내 인생의 다음 챕터가 열리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이에 나는 앞에 놓인 무수한 미션을 하나씩 해치우며 한 층 더 성장해 있길 바랄 뿐이다.


 

[지은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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