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가장 가까운 끝, 클로즈

그때 우린 너무 어려서 알지 못했어.
글 입력 2023.04.21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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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무엇이든 꼭 함께하고 싶은 친구가 있었다. 말도 제대로 못 나누는 수업 시간에도 짝이었으면 했고, 그 누구보다 빨리 점심을 해치우던 나였지만 그 애가 다 먹을 때까지 가만 기다려 주었다. 현장학습이라도 가는 날이면 꼭 함께 앉아 가길 전날 밤부터 기도했더랬다.

 

사소하게는 입고 먹는 것, 더 크게는 사는 곳과 학교, 직업 등등. 모든 게 달라지고 이젠 연락마저 뜸한 그저 그런 사이가 되었건만, 아직도 내 유년기의 한구석엔 그 애가 삐죽 튀어나와 인사를 한다. 어린 나도 뒤에서 손을 흔든다.

 

모두 어린 시절에 만난 잊을 수 없는 친구가 한 명은 있다. 지금은 걸음마를 떼며 만난 첫 친구 정도로 기억하고 말뿐이지만, 이미 관계가 희석되고도 남을 시간이 흘러버렸다. 우리는 그때 서로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아마 생각보다 훨씬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리라. 어쩌면 가장 순수한 형태의 첫사랑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관계가 끊어질 때쯤엔 너무 마음이 아파, 그땐 그랬던 누군가로 남겨 스스로를 보호하게끔 감정을 축소했을 수도 있겠다.

 

<클로즈>는 그런 가장 순수했던 어린 시절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너무 어려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지 알지 못한 채 흘려보내고 상처 주던, 누구에게나 익숙한 기억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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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se; (형용사) 가까운



레미와 레오는 둘도 없이 절친한 사이다. 두 가족이 지척에 모여 사는 만큼 둘은 친구이자 형제로, 또 연인처럼 서로를 보살피고 돌본다. 햇살 가득 내려앉는 봄여름의 꽃밭과 숲, 너른 들판을 자유로이 누비는 둘의 모습은 서로의 따뜻한 애정을 만나 더욱 아름답게 빛난다.

 

둘은 말도 안 되는 장난을 치길 좋아한다. 벽 뒤에 숨어 전쟁 놀이를 하는 것이다. 한 명이 적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린다고 호들갑을 떨면 벌레 우는 소리만 들리는 정적에서도 다른 한 명이 진지하게 동참한다. 어른들이 보면 귀여워할, 누구나 해본 적 있는 어이없고 황당한 상상. 당연히 너는 나를 이해하고 받아줄 수 있지? 라는 묵음. 둘만의 세계는 서로만이 이해할 수 있는 깜찍한 신뢰와 사랑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기와 질투마저 아직 자라지 않았다. 악기를 연주하는 것에 재능을 나타내는 레미를 레오는 부러워하기보단 즐거워한다. 레미가 훌륭한 연주자가 된다면 자신이 매니저가 되어 함께 어디든지 떠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둘만 있다면 그들은 부러운 것이 없어 보인다.

 

잠을 자는 것도, 등교하는 것도 그들은 꼭 함께해야만 한다. 그게 이들의 깨끗하고 순수한 애정이 요구하는 행동 지침이다. 둘은 그것을 기꺼이 따른다.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친구이자, 형제, 또 연인? 아니. 나 자신이어도 아쉽지 않을 만큼, 그들의 거리가 가깝기 때문이다.

 

 


close; (동사) 닫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레오와 레미 사이의 거리는 가까웠던 만큼 쉽게, 또 순식간에 멀어진다. 중학교에 올라와 듣게 된 '게이 같다'는 고작 한마디의 말 때문이다.

 

청소년들은 남들의 시선에 민감하다. 우리 모두 그 시기를 겪었다. 혹시 내가 남들과 다를까, 마음 졸이며 귀를 쫑긋 기울이고 바짝 긴장한 채 학창 시절을 보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치마와 바지를 줄이고 화장하거나 담배를 피우는 등의 일탈행위를 하는 것은 대개 그런 이유다. 겉모습에도 그리 민감한데, '게이'라고 낙인이 찍히는 순간 자신에게 주어질 그 모든 따가운 눈초리를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는 아이들이 있을까.

 

더 이상 레오는 레미와 나란히 누워 잠을 자지 않는다. 같이 밥을 먹지도, 등교하지도 않는다. 웃기는 전쟁놀이도 그만뒀다. 또래의 '남자' 아이들과 어울리려고 부단히 노력하며 레미에겐 눈길을 주지 않는 것에 점차 익숙해진다. 미안함이 들지만, 다른 아이들이 또 자신을 놀리는 것은 싫었다.

 

그리고 레미는 이런 레오의 갑작스러운 거절과 관계의 단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지속해서 무시당하는 비참하고 억울한 감정을 이 어린아이가 혼자 감내해야 했다. 어른도 버거운 일을. 그래서 레미는 선택했다. 문을 닫기로 말이다. 레오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상처 줄지도 모르는 사람이 영영 들어오지 못하도록 잠가버리면 그는 고통에서 아주 해방될 수 있을 테니까.

 

10대 초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 치고 <클로즈>는 조금 드라마틱하고 진부하지 않나? 하는 감상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고쳤다. 취업 면접을 보고 거절당하는 것도 충분히 가슴 아픈데, 때 묻지 않은 순결한 마음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타인의 시선에 짓밟힌다면 나라도 도저히 버틸 재간이 없다.

 

사랑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남녀노소, 빈자든 부자든 누구든지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기에 그것이 전하는 아픔도 똑같다. 남녀노소 죽을 만큼 아프다.

 

레미의 선택에 대해 레오는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해본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 누가 그 관계를 망쳤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상실이 무엇인지, 너무 어린 나이에 지독한 방법으로 배워버렸다. 남들처럼 살아보려다 팔을 부러뜨린 레오는 엉엉 울고 만다. 아픈 팔보다 더 큰 부위가 제 몸에서 뜯겨나갔기 때문이라. 순수해서 더 잔인한 이별이다.

 

미장센을 위한 장치로만 느껴졌던 레오 가족의 원예사업은 후반부에 들어서 레오의 마음을 언뜻 보여준다. 꽃이 피고 지듯이, 다시 그 아름답던 순간이 활짝 피기를. 이는 비단 주인공 레오만의 마음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돌아올 수 없는 그 순간이 계절처럼 변함없이 돌아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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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는 성장한 이들에게 바치는 영화다. 그 모든 사랑, 혼란, 상실을 겪고 우리는 자라났다.  뒤돌아보면 남아있을 그때의 기억을 그려보며, 곧 우리가 될 레오의 한때의 기억을 지켜보는 일은 값진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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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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