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헤매는 아이들, 성장 없는 방황 - ‘소년대로’ 신진호 연출

글 입력 2023.04.19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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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대로_비밀기지_포스터(최종3).jpg

 

 

‘소년’과 ‘대로’의 조합인 ‘소년대로’라는 말은 어쩐지 창창한 미래를 일컫는 것 같다. 우리는 무의식중에 젊고 어린 것에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다고 여기며, 그런 존재가 크고 넓은 길로 나아가는 건 너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지로 소비되는 청춘이 아니라 실제로 청춘이라 불리는 나이의 사람 한 명 한 명 앞에 펼쳐진 길은 천차만별이다. ‘소년’ 앞의 ‘대로’가 꼭 긍정적인 미래를 의미하지만은 않는 것이다.


극단 비밀기지의 연극 <소년대로>는 자신 앞에 주어진 길이 막막하기만 한 보호종결아동과 가출청소년의 이야기를 다룬다. 가출팸을 만들어 반지하방에서 함께 살아가는 세훈, 경선, 철수, 민. 이들 앞에 고양이 포우가 나타나고,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는 의견과 절대 키울 수 없다는 의견이 충돌하며 갈등이 시작된다. 이들은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까. 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소년대로>는 쉽게 성장을 말하지 않는다. 도착지를 알려주지도 않는다. 연극에서 우리는 아이들과 함께 헤매는 수밖에 없다. 지난 10일 <소년대로>를 만든 극단 비밀기지의 신진호 연출을 만나 출구가 없는 이 연극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볼 수 있었다.

 

 

신진호 연출.jpg

 


“극의 제목이기도 한 ‘소년대로’는 배우들이 중간에

무대를 마구 뛰어다니는 장면으로 표현하려 했어요.

아이들은 무대 세트 위를 거리처럼 계속 걷죠.”


 

<소년대로>가 작년 9월 공연 이후 약 7개월 만에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다시 관객을 만났습니다. 어떤 과정을 거쳐 왔는지 간단하게 들어볼 수 있을까요?


<소년대로>는 '2021년도 국립극단 청소년극 창작벨트 낭독공연'에서 선보인 세 작품 중 하나예요. 그 이후 작년 9월에 나온씨어터에서 정식 공연을 했어요. 당시 좀 더 다듬어서 한 번 더 공연을 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는데, 이번에 기회가 되어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관객을 만났습니다.

 

 

3년 가까이 <소년대로>와 함께한 셈인데, 극본을 처음 받았을 때 연출님의 느낌은 어땠는지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처음 극본을 읽었을 때, 한 가지 주제로 이야기할 수 없는 작품이라는 인상이 강했어요. 비밀기지 사람들도 다양한 태도로 연극을 하고 예술을 대하니까, 이 작품과 맞닿는 부분이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던 것 같아요. 이 작품을 만들며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 내적 성장을 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지난 9월 공연과 비교했을 때 이번 공연에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완전히 다른 작품이라고 할 정도로 바뀐 게 많아요. 가장 눈에 띄는 건 무대예요. <소년대로>에는 반지하방, 공원, 술집, 길거리, 집 앞마당 등 여러 장소가 나오는데, 소극장은 공간적 제약이 커서 다양한 장소를 표현하기가 어려웠어요. 이번에는 객석을 서로 마주 보도록 배치하고 중앙에 무대를 가변적인 형태로 구성해서 다양한 장소를 구현할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따라 배우들의 무대 동선도 다 바뀌었어요.


또 <소년대로>는 대사와 지문이 많은 편이에요. 저번 공연에서는 극이 늘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그런 부분을 관객에게 굳이 다 드러내지 않았어요. 드러내야 하는 부분은 캣맘이 관객에게 직접 설명하는 식이었고요. 이번에는 최대한 지문에 있는 내용을 다 드러내려 했고, 설명하는 대신 배우가 직접 보여주는 방식을 택했어요. 모텔에서 은아가 세훈의 돈을 훔쳐 달아나는 장면이 대표적이에요. 대사 한마디 없이 인물의 몸짓과 행동으로만 상황을 보여주려 했죠.


보육원 교사, 윗집 아저씨, 캣맘 등 가출팸 주변부 사람들의 모습도 달라졌어요. 이전 공연에서는 이들이 가출팸 아이들의 우위에 서서 그들을 내려다보는 구도였다면, 이번 공연에서는 가출팸 아이들과 동일선에 두었어요. 아이들과 대비되는 병약하고 노쇠한 인물에서 오히려 아이들과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성장이 멈춰버린 인물이 된 거죠. 그렇게 하니까 어른과 아이들의 구별이 흐릿해지며 서로 만나는 지점이 생기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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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이번 공연을 보며 공간 연출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어요. 반지하방인 중앙 무대와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세트 위, 그리고 지하까지 하나의 무대에서 여러 공간을 볼 수 있었어요. 공간 연출 얘기도 좀 더 들어보고 싶어요.


저희가 무대디자이너와 함께 작업할 때는 주가 되는 하나의 공간을 모티브로 삼고 거기서부터 여러 개의 다른 공간을 만들어가는데, 이번에는 반지하방이 중심이 되었어요. 반지하방을 기준으로 위로 올라가면 거리가 형성되고, 밑으로 더 내려가면 마트라는 공간이 형성되는 식이죠. 


극의 제목이기도 한 ‘소년대로’는 배우들이 중간에 무대를 마구 뛰어다니는 장면으로 표현하려 했어요. 아이들은 무대 세트 위를 거리처럼 계속 걷죠. 끊임없이 겉도는 거예요. 세훈의 대사 중 어느 대로에 서도 갈 데가 없어서 그냥 계속 걸어 다닌다는 내용이 있는데, 그 모습을 이 장면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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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대로>에는 성장이 없어요. 어디로 갈지 모르는 아이들만 있죠. 

그들을 그냥 지켜보는 일이 관객에게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인물들이 끝없이 헤매는 모습은 지난 1월에 공연한 <라이더>에서도 볼 수 있었던 기억이 나요. 그 작품도 <소년대로>와 마찬가지로 고정민 작가님과 함께하셨죠?


맞아요. 그게 고정민 작가님이 그리는 세계의 특징인 것 같기도 해요. 계속해서 밀려나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등장하죠. 사실 여기서 말하는 거지만 <라이더>는 <소년대로>의 후속작이에요. <라이더>의 '세훈'이 <소년대로>의 '세훈'이거든요. 

 

 

그건 처음 알았어요. 두 작품의 관계에 대해 좀 더 듣고 싶은데요. 


<라이더>의 경우 제가 미등록 이주아동에 대해 다룬 글을 읽고 고정민 작가에게 관련된 작품을 써보면 좋겠다고 의뢰를 드리며 시작되었어요. <소년대로>가 보호종결아동을 다뤘다면 저는 그보다 더 밑에 있는 청소년은 누구인지 들여다보고 그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었거든요. 

 

 

이렇게 청소년극에 꾸준한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 스스로 청소년기에 아쉬움이 많은가 봐요. 그때도 연극을 하고 싶었는데 당시에는 제가 그걸 어른들에게 자신 있게 이야기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어요. 그때 느꼈던 아쉬움과 혼란 같은 감정이 생생해요. 그래서 청소년의 삶에 더 관심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청소년을 만나는 공연이란 무엇이고, 어떠해야 하는지 고민도 많이 하고요. 앞으로도 제 작품에는 청소년이 꼭 등장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또 청소년이 등장하는 이야기에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감각이 있어요. 배우가 작품에 임하는 걸 보며 종종 느껴요. 성인인 인물은 직업이 있거나 이미 확립된 역사가 있는 반면, 청소년 인물은 그런 게 별로 없잖아요. 그래서인지 배우가 청소년 인물을 맡으면 좀 더 순수하게 작업에 임하게 되더라고요. 그런 지점이 제게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다른 인터뷰에서 연출 작업을 하실 때 극을 분석하기보다 ‘어떤 감각을 가지고’ 관객과 마주해야 하는지 생각하신다는 내용을 봤어요. 이번 작품에서 연출님이 중점에 둔 감각은 무엇인가요?


사실 이 극은 설명하기가 어려워요. 청소년이 나오는 기존 작품 중에는 성장의 이야기가 많잖아요. <소년대로>에는 성장이 없어요. 어디로 갈지 모르는 아이들만 있죠. 그들을 그냥 지켜보는 일이 관객에게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어디로 갈지 모르고 밖으로 계속 내몰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지금 현대인과 만나는 지점도 있는 것 같아요. 우리 모두 코로나 이후 길을 잃었다는 느낌이 많이 들거든요. 극을 보다 보면 아이들만이 아니라 고양이 포우도, 캣맘도, 윗집 아저씨도 어디로 갈지 모르는 건 마찬가지예요. 명확한 주제를 내세우기보다는 그런 감각 자체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었어요.

 

 

말씀대로 <소년대로>에 나오는 인물들은 가출팸 멤버가 아니더라도 모두 길을 헤맨다는 느낌이 들어요. 다양한 인물 중에서 연출님이 가장 공감했던 인물은 누구일까요? 그 이유도 궁금합니다.


은아요. 공감하기보다 애처롭게 느껴지는 인물, 처한 상황이 제 마음에 와닿는 인물이었어요. 어떻게 보면 나쁜 애지만 이 아이가 처한 현실을 보면 또 그럴 수밖에 없는 부분도 있거든요. 은아가 질문을 던져요.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이렇게 처음부터 출발점이 같았나?’라고요. 그게 강렬했어요. 실제로 보호종결아동이 시설을 나오며 받는 자립금은 자립하기에 너무 부족하거든요. 

 

이 공연을 연습하던 당시 뉴스에서 보호종결아동 자살 소식이 자주 들려와서 비밀기지 사람들 모두가 힘들어하기도 했어요. 어른인 우리가 이들이 시설을 나와서도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에 관심을 기울이고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공연을 보며 연출이 만족스러운 부분은 어떤 장면이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오묘하게도 마지막 장면이에요. 가출팸 아이들이 비현실적으로 들뜬 분위기 속에서 여행에 대한 토론을 하며 중간중간 말도 안 되는 대화를 이어 나가죠. 초연 때는 그 장면을 보며 우는 관객분들이 많았어요. 저는 그렇게 슬프게 끝낼 생각은 없었기에 이번에는 해당 장면을 좀 더 밝게 마무리하려 했어요. 투 차피의 ‘코코넛 라이프’라는 음악도 틀었어요. 그 노래의 뮤직비디오가 계속해서 길을 따라가는 내용이거든요. 커튼콜 때는 배우들이 춤도 췄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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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없어도 열심히 해볼 수 있는 게 연극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매력인 것 같아요.” 

 

 

작품 속에서 삶의 방식을 둘러싸고 세훈과 경선은 크게 충돌합니다. 연출님은 <소년대로>가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가득 찬 작품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시기도 했어요. 연출님은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요? 


어려운 질문인데요. (웃음) 요즘 저는 연극을 할 것인가 내 삶을 더 돌볼 것인가 사이에서 자주 고민해요. 저는 이 업계에서 비교적 빨리 자리를 잡은 편인데, 그렇다고 해서 무언가가 극적으로 바뀌지는 않거든요. 배우의 경우 종종 영상 쪽에서도 활동하지만, 연극 연출가는 다른 분야로 가기도 애매해서 외로워질 때도 많아요. 한번 연극에 발을 들이고 무대라는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세계를 만나고 나면 연극 바깥으로 도망치기가 어려워지죠.

 

 

그럼 연출님이 연극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건 언제였나요? 지금까지 계속하는 이유도 들어보고 싶어요.


처음에는 재미없었어요. (웃음) 재미없고 잘 이해도 안 되는데 오묘한 세계가 있더라고요. 그게 뭔지 궁금해져서 몇 번 더 극장을 찾아갔어요. 그 무렵 산울림소극장에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봤는데, 거기서 나왔던 대사가 저를 극장으로 이끈 것 같아요. ‘남들이 모두 잠들어 있을 때 홀로 눈을 떴구나.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뭘 기다리고 있는 거지.’ 이런 느낌의 대사였어요. 그걸 들으며 무더운 여름날 에어컨도 안 나오는 극장에서 백 명 남짓 되는 관객이 공연을 본다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보는데, 연극이 나에게 정신적인 풍요를 줄 거라는 믿음이 막연하게 생기더라고요. 


연극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나서도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아는 것도, 가진 것도 없이 그냥 좋아서 했죠. 저는 뭐가 없어도 열심히 해볼 수 있는 게 연극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매력인 것 같아요. 한번 개봉하면 몇백 명씩 동시에 볼 수 있는 영화가 있는 시대에 60석이 만석인 공연을 하다 보면 왜 이걸 계속할까 생각이 들 때도 있죠. 하지만 극장이 주는 편안함과 그 안에서 또 다른 세계를 만나는 게 정말 큰 기쁨이기에 계속하고 있습니다. 

 

 

앞서 계속할지 고민한다고 하셨지만, 말씀을 쭉 들어보니 앞으로도 연극을 만드는 연출님의 모습이 그려지는데요, 향후 연출님의 일정이 있다면 공유해주실 수 있을까요?


청소년 단편 3개로 구성된 '요즘 젊은 XX들'이라는 프로그램이 9월에 공연 예정인데, 거기서 연출을 맡아서 비밀기지 멤버들과 작업 중이에요. 청소년이라는 키워드로 올라가는 공연이라 흥미로울 것 같아요. 세 명의 작가와 함께하는데, 그분들이 작품에서 그리는 청소년의 모습이 다 다르거든요. <소년대로>가 마무리되면 그 공연 전까지는 조금 쉬어갈 생각이에요. 작년부터 연달아 작품을 하다 보니 체력적으로 부치더라고요.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마치며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관객분들이 각자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소년대로>를 보시면 좋겠습니다. 또 같이 연극을 만드는 비밀기지 사람들에게, 바쁘고 힘들겠지만 연극을 하는 동안에는 뭐가 없더라도 재밌게 즐겨보자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공연사진: 황호규 촬영 / 극단 비밀기지 제공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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