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쾌락과 행복에 대한 짧은 고찰 [문화 전반]

여행이 주는 즐거움은 쾌락인가 행복인가?
글 입력 2023.04.10 12:0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얼마 전 유튜브에서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인터뷰 영상을 보았다. 영상 속에서 그는 해외여행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는 지속적이지 않은 행복인 해외여행을 쾌락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순간적으로 이동진의 전문성 때문인지, 어느 정도 쾌락적인 여행의 면모에 공감이 간 것인지 확 납득이 된 스스로에게 놀랐다. 하지만 곱씹으며 생각해 보니 나에게 해외여행은 분명히 쾌락보다 행복이다.

 

우선 여행은 세 가지 갈래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여행 가기 전이다. 해외여행 가기 전은 아주 설레거나 또는 아주 힘들 수도 있다. 어딘가로 떠난다는 그 사실 자체 하나에도 설레고, 내가 꿈꾸고 있는 여행의 모습들을 상상하면서도 설렌다. 여행지 속 내 모습을 떠올려도 행복하고 그곳에 가서 입을 옷들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도 재밌다.

 

동시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뭐 입을지 너무 고민되는 나머지 옷을 극단적으로 줄여버리거나 ‘가서 사면 된다’라는 생각으로 버티기에 돌입한다. 가서 무엇을 할지도 고민이 많을 것이다. 비행기, 여권, 숙소, 등 신경 써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이 번거롭고 힘든 과정을 버텨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이때의 힘듦은 여행의 힘듦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걸.

 

두 번째, 해외여행을 갔을 때이다. 여행을 가면 무작정 막연하게 행복할 것 같다. 일상을 벗어났고, 새로운 사람들이고, 내가 보고 싶고 좋아하는 것들을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중에서 여행할 때 무조건적으로 작용하는 장점은 일상을 벗어났고 새로운 사람들이라는 것 밖에 없다. 발이 서 있는 위도와 경도, 그리고 공기가 달라졌을 테니 비일상적인 곳인 것이 틀림없고, 눈에 보이는 사람들 또한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이 태반이다.

 

이런 자유로움이 있는 동시에 자유로워서 슬플 수도 있다. 모든 일정을 내가 짜고 내가 책임져야 한다. 아무리 리스크가 있더라도 감수해야만 하고, 워낙 낯선 곳이기 때문에 예측 밖의 사건이 생기기가 쉽다. 그러한 사건이 생기더라도 국민으로서 보호받을 수 없는 이국이므로 달리할 말이 없는 게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여행을 갔다 온 후이다. 개인적으로 여행이란 갔다 온 후에 진가를 발휘하는 것 같다. 끝나고 온 직후에는 새로운 경험을 했다는 사실에 가슴이 뛰고, 시간이 지나면 그 기억이 점점 과거가 된다는 사실에 슬퍼서 그리워진다. 그리고 완전히 추억이 되었을 때 쯤에는 힘들었던 순간들조차도 미화가 된다.

 

 

FullSizeRender.jpg

 

 

이 세 단계를 거치며, 아무리 쾌락적인 순간들로 가득 찬 여행이더라도 그 순간들이 영원히 기억되는 추억으로 변화되며 온전한 내 삶의 일부가 된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쾌락도 행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순간은 섬광 같은 찰나지만, 그 순간들이 모여 시절을 만들고 한 시절은 곧 나를 이루는 과거가 된다. 따지고 보면 쾌락이 없는 행복도 없지 않을까 싶다.

 

영상 속 이동진 평론가가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인지는 안다. 그는 일 년 동안 여행을 가기 위해 모든 자신의 행복을 금지한 사람을 예로 들며 그 사람은 행복할 수 없다고 얘기했다. 매달아 놓은 굴비에 입맛을 다시며 하루하루를 버텨 살아내는 자린고비처럼, 여행을 굴비 삼아 행복을 아끼는 구두쇠를 비판한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것도 해석의 차이인 건 매한가지이다. 행복을 아낀 깍쟁이는 자신의 상황에서 최고의 행복의 순간을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걸 비판하기에는 성급한 감이 있다. 세상에 동기 없는 일 없듯이, 윤리에만 어긋나지 않는다면 모든 선택과 인생은 존중할 만하다.

 

 

IMG_5173.JPG

이 커튼만 보고는 오늘 날씨가 화창한지 흐린지 비가 오는지 알 터가 없다. 

뭐든지 꺼내보고 직면해 봐야 알게 되고, 그 모든 일에는 깨달음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 깨달음은 겪어본 사람만 이해할 수 있다.

그 깨달음의 깊이와 무게가 감당하기 힘든 정도일지라도,

커튼 여는 걸 무서워하진 말자.

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

 

 

[신유정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