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내 마음에 '쿵' 하고 떨어진 건 - 전시 '피카소와 20세기 거장들'

작품 너머의 무언가였다
글 입력 2023.04.07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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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전시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땐, 단지 피카소의 작품을 실제 두 눈으로 본 적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가봐야겠다는 단순한 마음가짐이었다. 마치 '피카소와 아이들'처럼 피카소를 중심으로 몇몇 현대 미술 작품 정도가 있을 거란 뻔한 기대와는 달리, 20세기 현대 예술사조가 총망라되어있어 폭넓고 다채로운 감상을 할 수 있었다.
 
 
 
20세기 미술이 이렇게나 다양했나


본격적으로 전시 공간에 들어서기 전, 전시장 입구엔 예술사조 가이드 맵이 놓여있는데,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굵직한 미술사조 용어들이 빼곡한 설명과 나란히 적혀있다.
 
막상 전시장에 들어가고 나면, 설명을 읽으려 잠시나마 눈을 아래로 떨구는 시간조차 아깝게 느껴지는데, 이를 위해 미리 미술사조의 뜻과 배경 지식을 간단히 익히고 전시장을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본 전시의 흐름을 관통하는 예술사조는 다음과 같다.

 
1. 청기사파 [The Blue Ride]
2. 절대주의 [Suprematism]
3. 입체파 [Cubism] / 분석적 입체파 [Analytical Cubism]
4. 팝아트 [Pop Art]
5. 앵포르멜 [Art Informel]
6. 미니멀리즘 [Minimalism]
7. 비디오 아트 [Video Art]
 
 
본 전시는 20세기 현대 미술사의 시간순으로 구성되어 있어 관을 이동할 때마다 색다른 장르를 맞이할 수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수수하고 고즈넉한 풍경으로 시작하여 당최 저 오브제는 정체가 뭘까 싶을 정도의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작품들까지 감상할 수 있어, 눈으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맛과 식감이 있는 전시였다.
 
 
 
역시 피카소다

 
장르와 형식이 각양각색인 작품들이 한 데 모여 있으니, 눈동자는 빠르게 때론 느리게 작품들을 훑기에 여념이 없었다. 흥미진진하게 작품을 관람하고 있던 찰나, 가슴에 '쿵' 하고 무언가 떨어져 묵직하게 울려 퍼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건 바로 입체파 관에 있던 피카소의 <아티초크를 든 여인>을 만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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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 <아티초크를 든 여인>


 
시각적으로 추상적이다 못해 기괴하고, 언뜻 보면 괴물 같기도 한 여인의 모습은 재미있게도 뜯어보면 뜯어볼수록 사람의 형상이라고 밖엔 달리 표현할 수 없다. 얼굴의 좌우가 분리되어 있고, 코같이 생긴 것에 눈이 달려있다. 저 여인은 척추측만증이 있던 건지 몸이 알 수 없는 방향으로 뒤틀려 있다. 그래도 일단 앉아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근데 저 손에 들려있는 건 뭘까? 아티초크라고 한다. 아티초크가 뭔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고대 이집트인이 식용으로 썼던 아주 오래전부터 재배된 식용 식물인데 유럽인들이 즐겨 먹는 채소 중 하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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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초크와 모르겐슈테른


 
피카소는 스페인 내전이 발발된 1936년부터 세계대전이 종결된 1945년까지 전쟁의 시간 속에서 어둡고 불온한 분위기의 작품을 많이 그렸는데 <아티초크를 든 여인>도 그 중 하나이다.
 
실제 아티초크는 둥그런 모양의 먹기 좋은 식물이지만 피카소는 그 모양새를 아주 칼로 베일 듯 아주 뾰족하고 날카롭게 묘사하여, 마치 중세시대에 쓰인 타격용 무기인 모르겐슈테른을 연상케 했다.

저 여인의 표정을 보자. 이목구비의 위치는 불명확하지만 공허한 눈빛에선 참담한 기색이 역력하다. 탁하게 얼룩진 배경과 축축하고 슬픔에 젖은듯한 색감의 조화는 아름답지만 비참하다. 저 뒤틀린 여인의 얼굴은 전쟁의 민낯일지도 모른다.
 
이것이 바로 피카소가 세상을 바라보고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그는 전쟁의 참혹함을 직접적으로 묘사하기보단, 알 듯 말 듯한 수수께끼 같은 인물과 오브제로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고, 작품에 오래 머물도록 하여 깊은 사유와 다짐을 이끌어냈다.

<아티초크를 든 여인>뿐 아니라 나머지 피카소의 작품들 역시 흥미로운 조형적 요소로 가득하여 자꾸만 보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또한, 그의 추상적 표현 기법은 유례없이 과감하여 마치 따라올 자가 없는 듯한 그의 위풍당당함이 느껴졌다.

피카소의 작품은 검색만 하면 언제든 손쉽게 확인할 수 있지만, 직접 실물이 압도하는 광경을 목도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특히 본 전시장의 벽면을 온통 차지한 이 작품은, 크기가 주는 위압감뿐만 아니라, 전시장 벽의 색상부터 철저히 계산된 조명의 밝기마저 그 무게를 더해 깊은 울림을 준다.
 
그 시대와 시절과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고, 피부로 와 닿을 수 있도록 기획된 본 전시는 직접 두 눈으로 감상해야만 그 진가를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이 외에도 팝아트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앤디 워홀의 작품을 비롯하여, 흥미로운 미니멀리즘 작품들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또한, 본 전시에 해당하는 작품들의 컬렉터였던 루드비히 부부의 생애의 모습이 담긴 영상은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하였다.
 
이토록 다양한 감상을 불러일으키고 20세기 거장들의 마스터피스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본 전시는 2023년 8월 27일까지 관람할 수 있다. 도슨트의 친절한 설명으로 더욱 풍성한 관람이 가능하다고 하니 일정을 참고해봐도 좋을 것이다.
 
 
[정주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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