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어른 강요 시대에 편하게 어른 되기 - 도서 ‘어쩌다 어른’

글 입력 2023.04.06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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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른 강요 시대의 편하게 어른 되기


 

보통 무언가를 시작할 때 ‘마음의 준비’를 한다. ‘어른이 될 마음의 준비’는 10대 대학입시 때부터 시작했던 것 같은데, 지금도 딱히 어른이 된 것 같지가 않다. 그럼 반대로 지금까지 어른을 준비 중인 셈인가? 이 문장에서 문득 ‘어른 기피 현상’을 느꼈다면, 반 정도만 맞다.

 

어른이라는 단어는 시간을 너무 무겁게 평가한다. 인간의 삶이라는 것은 계단 밟듯이 발달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상황과 인물들 사이에서 어른과 비-어른 상태에서 끊임없이 흔들린다. 영구적인 성숙이 존재한다면 우리의 삶이 이토록 불완전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어른‘은 그런 맥락을 싹 지우고 특정한 존재로 고정되길 바란다. 그런 것을 강요하는 현상은 어떤 집단적인 불안을 뭉쳐서 괜히 개개인들에게 던지는 것 같이 느껴진다. 그것이야말로 어른답지 못한 일이다.

 

애당초 어른이란 것이 무엇인가. 20살이 되면 어른인가? 학업을 끝내고 직장을 가지기 시작하면 어른인가? 요즘은 주변에서 결혼 소식을 전해오는데, ‘그걸’ ‘하면’ ‘뭔가’ ‘어른’이 되는가? 다양한 방식으로 어른이냐 아니냐가 정의될 수 있지만, ‘어른’이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맥락을 보면 상당히 추상적이다.

 

이런 추상성을 밝혀내기 위해서, 이 대척점에 있는 단어를 가져오고자 한다. 어린이랑 어른은 무엇이 다른가? 미성숙-성숙, 실수에 대한 관용-비관용, 케어링의 대상-케어링의 주체 정도가 되겠다. 이러한 맥락에서 ’어린아이‘가 자라서 완전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전자에서 느꼈던 것들을 갑자기 박탈당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느 시점을 두고 강제로 어른이 된다는 것은 별로 성숙해지는 일도 아니고, 거기에 집착하는 것은 성숙해진다고 믿으면서 스스로를 학대하는 끔찍한 일이다. 아니, 솔직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세상에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어딨는가?

 

나는 아이로 취급받고 싶지도 않고, 어른으로 취급받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이 불안정한 고용시대에 모두가 ’어른‘에 거북함을 느낄 것이며, 사실 이전 시대에도 그랬을 것이다. 더이상 돌아오지 않는 어린이 시절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며, 그걸 애도하는 것은 아직까지 존재하는 어린아이의 부분을 스스로 말살하는 것과 같다. 우리 부모님이 그걸 더 강요받은 세대였다면, 난 그들을 기꺼이 동정할 것이다.

 

이런 지점에서 볼 때, 오늘 소개할 책 <어쩌다 어른>은 어른을 강요받는 많은 사람에게 즐겁게 읽힐 수 있는 책이다. 왜냐면 이 책의 저자는 사회가 강요하는 어른의 역할에 한평생 시달리고 책에서 이미 ’어쩌다 어른‘이 되었음을 선언하면서도, 소위 어른 같지 않은 모습을 지켜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도달한 어른은 내가 앞서 비꼬았던 어른과 다르다. 그는 기꺼이 양 면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성숙하다고 할 수 있으며, 양면을 오갈 수 있다는 점에서 진정한 어른에 다다랐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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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 어른’에게 매료되다


 

앞서 소개했듯이, 책 <어쩌다 어른>은 이런 시대에서 어쩌다 ’어른‘이 되어버린 저자의 마음을 진솔하게 담은 책이다. 책은 크게 세 장에 걸쳐 전개된다. 첫 번째 장은 ‘사소한 취향과 실없는 농담이 우리를 구원한다’ 다. 여기서 저자는 자신의 소소한 덕질, 경험을 통해 소소하게 찾은 삶의 지혜와 낙관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두 번째 장 ‘아무도 칭송하지 않는 일을 열심히 하는 이유’에서는 변하지 않는 나를 뺴고 무언가, ‘어른‘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저자가 느끼는 고독, 씁쓸함 등을 특유의 문체로 담아낸다. 세 번째 장은 ’내 인생의 고유한 특별함은 무엇인가‘에서는 이런 딱딱한 세상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저자의 캐릭터 자체에 있다. 그는 책의 왼날개에 있는 소개부터 ’이영희‘라는 자신의 이름을 재치있게 풀어낸다. 3~4장 가량의 짧은 에세이에서 드러나는 저자의 캐릭터는 뚜렷한 특징을 찾아낼 수 있다.

 

첫째, 농담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이상한 꿈을 꾼 다음 (뭡니까, 프로이트)라고 덧붙이거나, 오야지 온나를 설명하면서(어쩌지. 쓰면서 나도 모르게 흠칫했어…)라고 쓴다. 이런 저자의 쓰기 스타일 덕분에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가볍다. 심지어 무거운 주제를 중심으로 내용이 전개될 때도 이런 유머를 잃지 않는다.

 

이런 일관적인 분위기를 유지하는 덕분에 이 책이 심각하고 무거운 것으로 읽히지 않는다. 반대로 말하자면, 자신의 무거운 경험을 가볍게 만들면서 묘하게 진지한 사람들을 안심시킨다. ’진심병’을 앓고 있는 저자가 희망을 잃지 않고 삶을 이끌어온 원동력이 이 책에도 녹아들어 있다.

 

둘째, 혼잣말을 하듯이 내용을 전개한다는 점이다. 앞서 예시로 설명했듯이, 작가는 자신의 관점과 농담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괄호를 치는 부분에서는 못 다한 말을 덧붙이기도 한다. 사실 책을 모두 읽은 지금, 책을 읽었다기보다는 누군가의 일기를 훔쳐 읽은 기분이다.

 

저자가 이런 형식을 취한 덕에, 책은 전반적으로 더 진정성있게 느껴진다. 좀 더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저자는 자신의 찌질해 보이는 면마저도 기꺼이 드러낸다(후술하겠지만, 그가 정말 찌질한 것이 아니다. 찌질함을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은 가장 용감한거다).

 

감히 말하는데, 이 부분이 이 책의 가장 멋진 부분이다. 장난스럽게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이야기하는 저자의 모습은 저자 그자신과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찌질할 자유‘를 기꺼이 선사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기꺼이 대중에게 드러낸 점 역시 저자의 가장 ’어른스러운‘ 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두 가지 특성과 더불어 더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자신의 삶을 장난스럽게 묘사하는 그가 사실 ’오버스펙‘한 여자라는 점이다. 말하자면 사회에서 그는 이미 어른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는 점이다. 글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삶이 얼마나 치열한 것이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경쟁자들을 보며 좌절감을 느끼면서도 자기계발서를 열심히 읽고, 국내의 여러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대학원을 진학한 그는 ‘사소한 취향’만이 중심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한평생 능력, 결혼, 성공, 매력 등에서 소위 어른스럽지 않은 사람과 같은 생각들을 떠올렸다는 것은 꽤 흥미롭다. 심지어 그는 자기 자신이 어쩌다 어른이 되었다고 이야기하고, 진심병을 앓고 있는, 주인공 주변도 못 간 어떤 조연 캐릭터나, 쓸쓸히 앉아있는 아이라고 스스로 묘사한다.

 

그래서 책 <어쩌다 어른>은 더 호소력 있다. 평범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어른 중 하나인 ‘영희’씨 역시 어쩌다 어른이 되어서 자책과 열패감에 시달린다는 것, 그 역시 소소한 취미 속에서 삶의 희망을 느낀다는 것. 한바탕 쏟아낸 저자의 이야기의 강물을 따라 같이 걷다 보면, 그 평범한 어른을 사랑하게 된다. 그가 살고 있는 평범하고 치열한 삶에 깊게 공감하게 된다.

 

어른과 비-어른의 경계선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이 찌질하고 멋진 어른을 기꺼이 추천한다. 온갖 ‘어른’으로 점철된 시대에, 그만이 진정으로 어른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는 이였으므로.

 

 

[이승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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