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외롭지만 우직한 것에 대한 이야기 - 세상 끝 등대 [도서]

글 입력 2023.03.31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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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가까이 사는 나로서 흥미가 생길 수밖에 없는 책이었다. 땅끝마다 위치한 구조물, 등대. 매일 바다를 지켜보아야 하는 직업을 갖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더욱 관심이 간 듯도 하다.

 

처음에는 생각보다 큰 책의 크기에 당황했으나 책을 펼쳐 지도와 등대 그림들을 보고 나니 조금은 큰 크기가 적당하다고 생각되었다. 점묘화 같은 그림들이 유독 쓸쓸하게 느껴지는 지도첩.


얽힌 이야기를 읽고 그림을 보며 실물이 궁금한 등대들은 인터넷에 직접 검색해보았다. 쓸쓸하기만 한 그림과는 달리 대부분의 등대는 푸르렀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푸르게 느껴진 이유는 아마 모든 사진이 전부 바다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 쉬이 납득이 되지만,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무얼까.

 

해암, 절벽 혹은 외딴섬 위에 우두커니 서 있는 것들이 전부일 뿐인데 외로워 보이면서도 견고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얼까.

 

 

[크기변환]adziogol_structrae.jpg

Copyright. Structurae

 

 

세월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 등대들이 이끌어온 수많은 배들과 그 안의 사람들. 괴담들도 많지만, 우선은 이 등대가 제 일을 하며 길을 밝혀 구조해왔을 수많은 사람들이 떠올랐고, 주어진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이 탑들이 조금은 대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오랜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구조해왔을까.


동시에 등대에 얽힌 무서운 이야기들이 꽤나 재밌었다. 외딴곳에 지어진 한 건물에서 수 년을 살아야 하는 상황 자체가 상당히 자극적임은 사실이지만 인터넷에 해당 등대 이름만 검색해도 온갖 영상이 뜨는 것을 보고서 조금은 놀랐다. 이 등대들, 유명하구나. ‘등대’라는 구조물이 공포 혹은 스릴러에 적격인 환경임을 읽으며 깨달았다.


사람 3명이 먹던 음식들을 그대로 두고 홀연히 사라지거나, 잠잠한 바다에 배를 띄워 잠시 나갔던 조수가 사라져 한참을 찾거나, 등대가 세워진 섬을 왕국으로 삼아 욕망을 충족하다가 살해당하거나 하는 이야기들은 읽다 보면 쉽게 책을 덮을 수가 없다.

 

며칠 전 밤에 ‘등대 하나만 읽어야지’라며 책을 펼쳤다가 다음 날 아침 일어나는 데에 애를 먹었다.

 


[크기변환]grip_flickr.jpg

Copyright. Flickr

 

 

동시에, 좌초되고 난파된 선박들이 너무나도 많아 아찔했다.

 

등대지기는 바위섬 혹은 땅끝에서 홀로 견디는 것이 문제라면 선원들은 바다 위 움직이는 자신들만의 섬에서 다 같이 견디는 것이 가장 문제였을 것이다. 구간 내내 순항하는 것은 당시엔 기적에 가까웠을 터였다.

 

오늘날이야 전자해도가 있고 온갖 최신 기술을 활용해 운항하지만, 그 옛날엔 종이 해도와 등대에서 비추는 불빛만을 따라 항로를 찾았을 것을 생각하니 아득했다. 암초는 어떻게 발견하고 피항은 어떻게 갔을까. 바다에서 생을 마감한 자들의 이야기가 페이지마다 펼쳐져서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적당히 자극적이면서도 세계사의 토막을 배울 수 있어서 가볍게 읽기 좋다. 과한 자극도 없지만 과한 정보 전달도 없는, 부드럽게 재미있는 책.


하루의 끝에 읽기를 추천한다. 현실에서 벗어나 잠시 바다와 그 위에 떠 있는 배, 그리고 그 배가 바라보고 있을 등대를 상상하고 있자면 왠지 모르게 느긋하게 굴게 된다. 본래 지도는 읽는 재미가 있어서, 내가 가보지 않은 지역을 콕 집어 이것저것 찾아보다 보면 ‘알쓸신잡’을 많이 얻게 된다.

 

이 책 역시 일종의 지도첩이라, 등대가 세워져 있는 지역은 비교적 축척이 높게 그려져 있다. 해당 지형들을 살펴보며 ‘등대 앞에 서 있다면 어떤 풍경이 보일지’를 상상하다 보면 시간이 정말 금방 간다.

 

현생은 잠시 멀리 두고 하루를 재미있게 마무리하고 싶다면 고독하지만 듬직한, 오래된 구조물 ‘등대’에 얽힌 이야기를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재밌어서 쉽게 덮을 수 없지만,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으니 알아서 잘 덮도록.

 

 

[표1] 세상 끝 등대.jpg

 

 

 

컬쳐리스트 태그.jpg

 

 

[이주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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