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자연을 생각한다는 말에 숨은 뜻 [전시]

글 입력 2023.03.27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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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을 위한다.”, “자연을 지키고 보존한다.”라는 말은 자연을 생각한다는 마음에서 온다. 보통 우리가 누군가를 생각한다고 함은 자아가 아닌 타자를 의도적으로 의식의 수면 위로 끌어 올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환경을 위한다.', '환경 오염을 줄인다.', '동식물을 보호한다'는 사고 아래 깔린 숨은 의미는 '내가 아니라 자연스레 위해 보기는 어렵지만 그들을 의도적이나마 생각하며 최대한 배려하려 노력한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인류를 제외한 자연과 그 속의 많은 개체를 타자로 분류하려는 성질은 어쩌면 꽤 납득 가능한 사고다. 진화론을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종’이 있다고 배웠으니까. 우주라는 공간 안에, 지구라는 한 행성 안에는 무수히도 많은 종이 있다. 시간이 갈수록 진화되어 도태되거나 살아남는 종이 생기고 인류는 여러 가지 명목으로 그 수많은 종을 계층화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중 인간은 힘이 약하지만 무기를 만들 힘이 있어서, 서로 응집하는 사회력이 있어서 최상위 포식자로 분류될 때가 많다.


강한 우리는 자연을 생각한다. 자연을 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연을 돌본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자연을 돌보는 게 맞을까? 혹시 자연이 우리를 돌보는 게 아닐까? 자연이 없으면 우리는 스스로를 돌보며 살 수 있을까? '자연을 위한다'는 건 어쩌면 철저히 먹이사슬 최상위에 있다고 여기는 인간만의 편협한 시선은 아닐까?


여기, 어쩌면 우리가 자연의 일부임을 증명하는 두 전시가 있다.

 

 

 

물의 살결, 물의 핏줄, 물 분자로 이루어진 우리

<나탈리 카르푸셴코 사진전>

2022.12.23.~ 2023.05.07. 그라운드시소 성수



자연은 아름답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동경하고, 그래서 우리는 바다를 동경한다. 바다는 오랜 시간 동안 신기한 미지의 세계인 ‘아틀란티스’로 여겨졌고, 인간은 항상 바다를 탐험하려는 욕구를 가져왔다. 또한 이를테면 “바다 같은 마음’을 비범하고 참된 인간의 넓은 마음을 비유할 때 쓰곤 한다. 무한히 품는 바다의 성질을 가지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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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나탈리 카르푸셴코의 시선은 담담하다. 그녀는 자연을 애써 과장하거나 웅장하게 담으려고 하지 않는다. 담담히 여기는 시선과 달리 자연에로의 참여는 과감하다. 그녀는 바다에 풍덩 빠지거나 물에서 숨 참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자연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동물들, 자기 모습을 수직적인 위계 관계가 아닌 동일선상에 병렬적으로 담는다. 고래와 그 옆에서 자유롭게 수영하는 그녀를 보여준다. 바다를 이국적인 시선으로 보지 않는다.


해당 전시에서, 나탈리는 환경 오염 또한 그저 보여준다. 보통 환경 오염의 위험성을 말하고 싶을 때 우리는 자극적인 시각 자료로 자연이 훼손되거나 파괴된 모습을 보여주어 충격을 준다. 하지만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피하려고 하므로, 보이면서도 고개를 돌린다. 따라서 나탈리는 충격 요법 대신 파괴된 자연이 그대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마치 통각으로 가벼운 상처를 인지하는 것처럼, '아파하고 있음을 알지만 지금이라면 흉지지 않게 나을 수 있다.'는 듯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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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오염을 타인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차원으로 서술하지 않는다. 발끝에 비닐을 묶어 수중촬영 한 이 작품에서, 그녀는 스쿠버다이빙을 통해 바다와 한 몸이 되고 바다가 가진 축복과 절망을 몸소 경험한다.


자연을 타자로 분류하지 않으려는 시도는 계속된다. 그녀는 바다와 자연의 모성으로의 연관에 집중한다. 모성은 곧 품는 것, 무엇이든 포용하는 모습을 의미한다.

 

포용하는 모습은 사랑을 의미하고, 사랑은 존재 이유가 된다. 자연의 포용, 물의 흐름, 동물의 따스함과 바람결에 날리는 풀의 감촉으로 우리는 사랑받게 되고, 사랑을 주기 위한 사람으로 거듭 다시 태어난다.


 
“물에서 암초, 암초에서 뼈, 뼈에서 살, 살이 바람으로, 바람이 눈으로, 눈이 물로, 물에서 여성으로”
 


인간이 만들어낸 사회 구조가 부여한 틀과 역할론적 담론에서 벗어난 우리는 자연스러운 모습 그 자체로 서로를 사랑할 수 있게 된다.

 

 물 밖의 고래와 물 속의 인간은 모두 숨 막혀 하는 존재들이므로.

 

 

 

자연과 기술을 결합하다

<DRIFT: In Sync with the Earth>

2022.12.08. ~ 2023.04.16. 현대카드 스토리지



인간은 기술을 만들어내고 익히며, 이 기술로 사물을 만든다. 그렇게 인간은 인간의 산물에 의존하며 살아가고, 이는 기술과 인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의미한다. 인간과 자연이 그러한 것처럼 인간과 기술도 마찬가지이다.


 네덜란드 아티스트 듀오 ‘드리프트’는 테크놀로지 미학을 통해, 자연을 예술적 경험으로 치환한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사물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더 이상 알지 못합니다. 결국 이들은 모두 지구로부터 나온 것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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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erialism

 

바비인형부터 햄버거, 신라면, 스타벅스까지. 우리가 먹고, 마시고, 가지고, 노는 행위에 쓰이는 사물들을 모두 해체하여 보여줌으로써 결국 이들도 자연의 재료로 이루어진 분자 단위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0세를 시작으로 4세, 40세, 80세, 그리고 죽음까지. 해체된 인간은 물, 전해질,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핵산, 비타민, 헤모글로빈의 구성 요소로 가시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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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ylight

 

꽃들의 수면 운동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밤낮의 길이와 온도 습도에 반응하여 잎과 봉우리를 스스로 움직이는 개폐 활동을 실크, 물리학, 바느질로 만들어내 자연과 기술, 인간의 결합을 상징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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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itude

 

중심축을 기준으로 설치된 20여 쌍의 투명 유리관이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이 작품은, 언뜻 동물의 뼈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유려한 바다의 흐름 같아 보이기도 한다. 이는 호흡하고 운동하는 듯 느리게 움직이며 빛의 반사를 받아 눈부시게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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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gile Future

 

‘자연은 스스로 유기적 성장을 한다’라는 사실에 기반한, 자연의 자가 증식 시스템을 상징하는 시각적 재현이다. 흩날리는 민들레 홀씨들을 전구와 결합했다. 민들레 씨를 호 불면 날아가고, 어디로 날아가는지 어디에 뿌리를 자리 잡는지도 모르지만 이들이 항상 우리 곁에 있는 것처럼, 연약하게 빛나고 있지만 군집이 되어 또 하나의 모양으로 성립하는 해당 작품은 연약한 인간 개개인으로 구성된 집단, 나라, 사회와 별다른 바 없어 보인다. 각각 빛나는 것들이 한꺼번에 모여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 안에, 애초에 없던 위계질서 따위를 만들어 굳이 줄 세우려 하는 과거의 편협한 시각은 깨져야만 한다. 이미 우리는 자연의 성질이 내재하여 있음을, 누군가가 어디의 위 혹은 아래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자연의 일부임을 지각한다. '우린 모두 나무야.', '그의 마음은 심연의 동굴 같았다.', '그녀의 마음은 넓은 바다요.' 등, 자연에 비유되는 무수히 많은 심상이 있다. 자연을 타자화하고 분류하려는 노력을 멈추면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모두가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며 더 나은 쪽으로 발전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해당 전시들은 만연해 있는 촘촘한 편견을 강렬하게 통감하지 않는다. 대신 예술이라는 수단으로 메시지를 전달해준다. 메시지를 받을지, 거부할지, 다른 이에게도 공유할지는 개개인의 선택이다. 다만 자연에 속한 누구든지, 자신의 일부를 배척하지 않았으면 하고 나 역시 담담히 바랄 뿐이다.

 

 

[김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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