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가 사랑했지만 사라진 것들 [사람]

당신도 이런 기억들이 있나요?
글 입력 2023.03.01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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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흐른다. 이 사실은 불가역적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고 우리 모두에게 가장 공평한 건 시간이 흐른다는 것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새로움을 만나고 성장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동시에 쇠퇴되며 내 기억 속 깊은 곳으로 사라져버린 것들이 있다.

 

기억 깊은 곳이라고 말하니 문득 영화 '인사이드아웃'의 기억 저장소가 떠오른다. 내 기억 속에도 잊혀 사라져 버린 것들이 저리도 많을까?

 

그와 반대로 내가 기억을 함에도 불구하고 사라져버린 것들이 많이 있다. 사라진 원인은 내가 성장해서, 시간이 지나서, 물리적으로 낡고 제 역할을 하지 못해서 등이 있을 것이다.

 

가끔은 사무치도록 그리운 내가 사랑했지만 이젠 볼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몇 가지 말을 해보고자 한다.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논밭을 달리고, 기차에 인사하던


 

할머니 댁은 도심에서 한참 떨어진 농촌에 위치했다. 그 동네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거주하셨고 명절만 되면 가족들이 전국 팔도에서 온 소리에 세상 왁자지껄하곤 했다. 


우리 가족도 귀성객 중에 하나였다. 3시간 남짓을 달려 산길을 돌고 돌아 멀미가 날 거 같다 싶을 때쯤엔 마을을 알리는 팻말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창문을 조금 열어 차가운 바람을 맞으면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커다란 나무, 수호목이 우리를 반긴다. 나무 아래에서 여름이면 부채질하고 봄에는 바둑을 두던 어르신들께 창문을 내려 인사를 한다. '누구 집 누구고?' 물어보시면 아버지는 사람 좋게 웃으시면서 대답하신다. 


추수를 하고 막 지나 아무것도 남지 않은 밭에는 그저 수풀만 무성하다. 외투도 제대로 걸치지 않은 채 어린 나는 사촌 오빠에게 언니에게 동네를 돌자면서 떼를 썼다. 그나마 제일 어린 사촌 오빠가 못 이긴 척 일어서면 오빠와 나는 동네를 굽이굽이 돌아 기차가 지나가는 밭으로 걸어간다. 기차가 오는 소리, '댕댕댕' 조금 위협적인 종소리가 들려오면 길을 걷다가도 우리는 기차를 보기 위해 달린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황무지 같은 밭 위에 서서 지나가는 기차에 손을 흔들면 어디로 가는지 모를 기차 안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 똑같이 손을 흔든다. 그날의 우리는 제법 시골에 사는 아이들 같았을 거다.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다. 10여 년도 넘게 지나왔다. 그 사이 많은 것이 변했다. 큰 나무 아래 앉아 우리를 가장 먼저 맞이해주시던 동네 어르신들의 슬픈 부재, 골목골목 들어선 신식 주택들, 사라진 강아지 소리와 염소들, 경운기를 몰고 논으로 밭으로 나가시던 할아버지의 부재, 그리고 나도 모르게 많이 사랑했던 우리 할머니 댁의 부재. 


지난여름 우리 할머니의 오래된 집, 우리 아빠의 고향이자 삶의 터전이었던 낡은 그 집이 불길 속에 활활 타들어갔다. 폐허처럼 터만 남은 그 집을 난 그 후로 가서 보지 못했다. 불길과 함께 재만 남은 그 속에서 우리의 옛 기억들은 함께 타버리지 않았기를 남 몰래 기도했다. 성인이 되고 한참이나 지난 지금 예전만큼 시골집을 좋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름엔 모기와 파리가 들끓고 겨울엔 온도조절이 되지 않아 살기 편한 아파트를 그리워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립다, 그리워. 아무것도 모르고 산과 밭을 뛰어다니던 내가, 지금보다 젊고 기억이 선명한 우리 할머니, 거친 손으로 내 손을 잡아주던 우리 할아버지, 언니 오빠 가득 모여 윷놀이를 하던 그 따뜻함, 배불러 하면서도 계속해서 먹었던 명절 음식들과 철부지 초록색의 내 유년도. 

 

 

 

일요일 오전 엎드려 신문을 보던 엄마의 등 위로 업히던


 

인터넷이 발달하기 전,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기 전 우리 집은 신문을 매일 아침 배달 받았다. 새벽부터 현관문에 끼인 신문을 빼오는 건 우리 아빠의 일과였고 아침 밥상 위에 신문을 반쯤 펴놓고 식사를 하시며 신문을 읽으시곤 했다. 일요일 아침에는 내리쬐는 햇살을 조명 삼아 엄마는 거실에 엎드려 여유롭게 한 장, 한 장 신문을 넘겨보셨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엄마가 신문을 넘기는 소리만 고요하게 울려 펴졌고 '엄마'를 외치며 나는 작은 발로 엄마에게 다가갔다. 그 무엇보다 커 보이던 엄마의 등 위에 업혀 세상에서 제일 작았던 내 몸을 포갤 땐 나도 모르게 느껴지는 아늑함에 그 등 위에서 새근새근 다시 잠들곤 했다. 


지금은 내가 엄마 키보다 커도 한참 컸지. 등 위에 업히리라곤 상상도 할 수 없고 아날로그의 상징인 신문은 우리 집에서 사라진지 오래이다. 일요일 아침마다 느꼈던 그 여유와 따듯한 체온도, 젊은 엄마와 젊은 아빠가 신문을 보며 나누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이젠 안녕 안녕. 이제는 휴대폰으로 손쉽게 뉴스를 찾아 읽고 새로운 오락거리를 즐기며 가족 간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여전히 세상이 아날로그였다면? 엄마 등 위로 업힐 수는 없겠지만 우리들은 여전히 따뜻했을까?

 

 


쉬는 시간 10분은 너무 짧아, 일요일 저녁은 너무 지독해.


 

일요일 저녁 하면 떠오르는 프로그램이 있는가? 나는 깊게 고민하지 않고도 말할 수 있다. 바로 '개그콘서트'! 두어 시간을 깔깔거리면서 웃다가 보면 어느새 프로그램을 마치는 10시가 되었고 개콘 밴드의 엔딩곡을 들으면 우리 가족은 모두 내일이 월요일임에 절망하곤 했다. 학교에 가야 돼, 출근을 해야 돼. 각자의 일상이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면 꿀 같았던 이틀은 너무도 빠르게 지나간 것이다. 


학교를 다닐 때를 생각해 보면 쉬는 시간 10분도 마찬가지였다. 자랑할 건 아니지만 제법 쾌활했던 10대의 나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쉬는 시간 10분이 넘어서 발바닥에 땀이 나게 복도를 뛰어 다시 교실로 들어간 적이 있다. 생각해 보니까 그래. 10분 동안에 화장실도 갔다가 매점도 갔다가 친구랑 놀기까지 해야 하니 이 얼마나 짧은 시간인가! 특히나 사춘기 소녀들에게 말이다! 


양심에 없는 소리일 수 있지만 난 아직도 내 10대가 어제 일 같다. 금방 다시 교복을 입고 학교로 등교를 하고 있을 것 같다. 학교라는 틀 안에서 학생이라는 지휘를 갖고 선생님의 말씀과 학칙이라는 규율에 따라 조금은 억압받으면서도 그 어느 때보다 가장 자유롭고 숨김없는 그때의 너, 나 우리로 다시 돌아간 거 같은 느낌은 하루를 지내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느닷없이 찾아온다. 이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하면 학교를 졸업한 지 몇 년이 지났는데 어제 일 같으냐고 웃거나, 공부를 좀 열심히 한 친구의 경우엔 나는 절대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다지 특출나게 행복하거나 사랑받은 기억은 없던 학창 시절인데 이토록 기억나는 건, 사무치게 그리운 건 그 시간들이 주는 특유의 빛깔 때문이 아닐지 생각해 본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그리운 순간이 있는가? 혹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을, 이 시대를 나중에 그리워할 때가 올 것인가? 내가 너무나도 사랑했지만 시간이 지나 이제는 사라진 모든 것들. 


갑자기 '사라진 모든 것들에게'라는 노래가 떠오른다. 그 노래엔 이런 가사가 있다. 


 

사라진 모든 것들에게

잊혀진 모든 밤들에게

그럼에도 속삭이던

조그마한 사랑과 마음들에게

돌아갈 수 없다 한 대도

이 밤 또 노래를 불러야지

그리워하는 마음이

미래를 향하는 마음이라며

 

 

내가 그 순간을 사랑하게 해줘서, 기억하게 해줘서 고맙다고 지나간 모든 것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밤이 되기를 바라며. 모두에게 굿나잇!

 

 

[안영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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