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무것도 아닌 듯, 성능경의 예술 행각 [미술/전시]

예술은 놀이를 향한 행각
글 입력 2023.02.27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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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우리의 목소리를 내기 편한 세상에 산다. 물론, 그 목소리가 받아들여지는지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힘 있는 자가 아니면 묻힌다는 건 같을 수 있더라도, 과거와 달리 지금은 목소리라도 낼 수 있다.


작게는 우리 주변 사람에게 말하는 것부터 시작해 더 나아가는 자신의 메시지를 SNS이라는 개인 공간에 올릴 수도 있고 심지어는 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하나의 콘텐츠를 제작해 영상으로 올릴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와 달리 목소리를 낼 수 없던 사람이 있었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의 한국 사회를 산 사람은 개인의 목표나 신념보다 국가가 내세우는 신념과 목표 안에서 움직여야 했다. 특히 1970년대 한국 사회는 ‘조국 근대화’라는 격랑 속에 있었고 그 당시 한국 사회는 근대화를 명목으로 물질적 힘을 경험하는 공간 그 자체였다.

 

그 당시 대통령이던 박정희 대통령은 1969년을 “싸우며 건설하는 해”로 말했다. “싸우며 건설하는 해”의 의미는 “올해에는 모든 국민이 왕성한 애국정신을 나타내어 나라의 모든 과업을 꾸준히 실천하는 정신자세의 확립을 강조합니다.”라는 그의 말에서 드러난다.


즉 모든 국민이 소임을 다하며 싸우며 건설하는 일꾼이기를 요구한 것이며 “1960년대를 결산 짓는 해이며, 또한 민족의 중흥을 기약하는 대망의 70년대를 준비하는 해이며, 제2차5개년 계획의 제3차연도로서 우리 민족에 있어서는 실로 역사적으로 중대한 해가 되겠읍니다.”라고 하며 경제개발에 힘써야 함을 주장한 것이다.


이처럼 당시의 사회는 국가의 목소리가 커 자신의 목소리를 바로 내기 어려운 사회였고, 개개인의 개성을 조직과 국가의 단결성에 위험한 것으로 치부했다. 다시 말하면, 당시 사회는 자신의 성격을 바탕으로 자유롭게 생각하고 창의적인 사고력을 발휘하기보다 국가에서 강조하는 하나의 목표를 따르고 원래 있는 공업재료를 토대로 ‘건설’해야 했던 때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운 사회 상황에도 개인의 목소리를 낸 작가가 있었다. 그가 바로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전시의 작가인 성능경 작가이다. 성능경 작가는 경기도 미술관 홈페이지에 다음과 같이 소개된다. “1970년대 한국 현대미술의 전개 과정에서 전위적 실험미술로 기성 화단에 변화를 모색했던 대표적인 작가로 평가된다.”


성능경 작가의 가장 유명한 작업은 신문과 사진 등의 기성 매체를 주로 활용해 주제를 전달했던 1974년 제3회 《ST》전에서 선보인 〈신문: 1974.6.1.이후〉이다. 이 작품은 전시 동안 해당 날짜의 신문을 직접 소리 내어 읽고 면도날로 신문 기사를 오려내는 반복적 행위를 통해 유신 시대의 언론 탄압을 비판한 작업이다. 그의 작업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개념미술 작가인 존 발데사리의 〈나는 예술을 만들고 있다〉라는 개념미술 작업이 떠올랐다.


이처럼 그의 작업은 탈 장르적인 개념미술로 분류된다. 그는 국내 작가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30년간 행위 미술을 지속해온 작가로 자택 겸 작업실에서 작가의 신체와 일상의 재료로 예술의 탈물질화, 일상성의 회복을 지향하는 퍼포먼스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작가의 전시를 이번에 백아트갤러리에서 만날 수 있다. 2023년 2월 22일 수요일부터 2023년 4월 30일 일요일까지 월요일과 공휴일을 제외하고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백아트 갤러리에서 《아무것도 아닌 듯... 성능경의 예술 행각》이라는 전시를 진행한다. 2월 22일 수요일에는 개최행사로 오후 5시부터 성능경 작가의 퍼포먼스를 진행했는데, 퍼포먼스를 관람하면서 느낀 점 위주로 전시를 소개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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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퍼포먼스는 시작 전부터 유쾌하게 시작했다. 이유는 작가가 오프닝 전부터 전시장 밖에 나와서 퍼포먼스에 사용될 부채로 부채질하시며 지나는 사람에게 “행복하시고 건강하시고 돈 많이 버시고”라는 말을 계속 전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이 원하는 소망을 그렇게 큰 소리로 지나가는 사람에게 전하는 모습을 보며 어딘가 모르게 위로가 되었다면 이상한 일일까.


그렇게 기분 좋게 시작한 퍼포먼스는 퍼포먼스를 진행하는 동안도 다들 웃으면서 진행되었다. 퍼포먼스는 사진과 같이 은박지로 뒤덮인 공간에서 작은 밴드와 함께 진행되었는데, 처음 시작은 작가가 자신이 들고 있던 부채에 쓰인 글을 큰 소리로 창을 하듯 읽고 부채에 불을 붙이고 불이 붙은 부채로 부채질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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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에 적힌 글은 전시 제목과도 연계가 있는 듯했다. 작가는 “세상에 있는 듯 없는 듯 있는 신이시여”와 같은 글을 소리 내 읽었는데 전시 제목이 “아무것도 아닌 듯”이라서 전시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유추해볼 수 있었다. 그렇게 부채가 반쯤 타고나면 다음 퍼포먼스로 넘어가는데 작가가 옷을 하나씩 벗기 시작한다.


나중에는 팬티 한 장만 입고 퍼포먼스를 진행하는데 이상하게 그게 외설적이라든가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작가 역시 본인이 옷을 벗은 이유를 “젊은 사람의 몸만 몸이 아니고 늙은 사람의 몸도 몸이고, 늙는 건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는데 작가가 순수한 의도를 갖고 한 행동이라 그런지 ‘눈을 어디에 두지’와 같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 이후 작가가 김연아 선수의 유명한 자세를 따라 하는 짧은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뒤에 붙여놓은 은박지에 대해 설명하는데 이 점이 감명 깊었다. 평소에 규모가 큰 전시를 볼 때마다 쉽게 지치고 질리고 넘치는 정보에 주어진 전시를 다 보려면 2시간은 기본으로 걸리는 나였기에 항상 전시를 보러 다니는 일은 나에게 엄청난 체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나와 달리 규모가 큰 전시도 한 번에 보는 사람을 보며 그렇지 못하는 나를 탓하곤 했다. 그러나 성능경 작가는 은박지로 작품을 가려놓은 이유를 “예술은 만만한 것이 아니라서 한 번에 보면 탈 날까 봐 조금씩 소화해가며 보라는 의미로 가려놓았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이 나에게는 예술을 소화하지 못하고 버거워 했던 것은 당연한 거였다고, 네가 못난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처럼 들려 퍼포먼스를 보는 동안 위로를 받은 것 같았다.


그렇게 모든 자세가 끝나고 작가는 지압 훌라후프를 조립해서 돌리기 시작하더니 새총과 탁구공으로 퍼포먼스를 이어갔다. 탁구공에 적힌 글을 크게 읽고 그 공을 새총에 맞게 조절한 후 관객을 향해 새총으로 공을 날리는 퍼포먼스였는데, 맞는 사람도 있었고 맞지 않으려고 피하는 사람도 있었다.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 새총 퍼포먼스 덕분에 맞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홍해 갈라지듯 갈라져 시야가 트이는 재밌는 경험도 할 수 있었다.


작가가 말한 글 중 인상 깊었던 글을 몇 개 관람하며 적었는데 다음과 같다. “나는 내가 항상 무겁다.”, “Great art is often made by a terrible person.”


첫 번째 말은 인생을 살면서 나를 힘들게 하는 경우는 내가 겪는 상황이 아닌 그 상황 속의 내 반응인 경우가 많아서 공감됐고, 두 번째 말은 고등학생 때 내가 좋아하던 백석 시인이 떠올랐기 때문에 웃기면서 슬펐다. 나는 고은 시인의 시를 좋아했는데, 이유는 그 당시 힘들었던 사람들의 모습이 잘 담겨 있었고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항상 희망으로 끝났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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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누구나 알다시피 고은 시인은 성추행 문제로 수능 교과서에서도 제외되었다. 그 외에도 연예계의 한 때는 사랑 받았지만, 현재는 범죄자가 되어버린 사람들을 봐도, 작가가 퍼포먼스에서 외친 말은 우리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렇게 약간은 씁쓸해하다 보면 탁구공 퍼포먼스도 끝이 난다. 이후 작가는 막대기로 사람들을 툭툭 치고 다니며 이렇게 말한다.


“Happy stick, Money stick” 이 장면을 볼 때는 기사 임명식 장면이 떠올랐다. 기사로 임명되는 사람에게 검으로 양쪽 어깨와 머리를 치는 것처럼, 혹은 우리가 누군가의 죄를 사할 때 “너의 죄를 사하노라”라고 말하며 툭툭 치는 것처럼, 작가가 관람객에게 행복과 부를 빌어주는 느낌이라 또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모든 퍼포먼스가 끝나면 작가는 알루미늄 포일을 예시로 몇 번 뜯어 보여주며 남은 은박지는 관람객이 직접 관람하며 다음 것이 보고 싶을 때 뜯어가며 관람하라고 요청한다. 작품을 볼 때 내 눈앞에 펼쳐진 것을 순서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치 책을 읽을 때 우리가 장을 넘겨야 다음 내용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작품도 내가 넘어가고 가려진 것을 걷어야 볼 수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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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포먼스와 전시를 모두 관람하고 나면, 전시 제목이 어렵지 않게 와 닿는다. 특히 전시장 벽면에 전시제목을 보일 듯 말 듯 새겨놓은 모습이 눈에 보이는데, 이러한 점에서 전시를 구성한 사람들이 얼마나 꼼꼼히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을 관람객에게 전하고자 살폈는지 확인할 수 있어서 마치 어딘가 귀한 곳에 초대받은 사람이 된 것 같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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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전시 제목에서 나는 “행각”이라는 단어에 주목했다. “아무것도 아닌 듯”은 작가의 예술관을 표현한 말이라 생각했다. 작가는 퍼포먼스를 하는 내내, 그리고 전에도 계속해서 예술을 그냥 노는 것으로 소개했고 작가 자신을 소개할 때도 자신을 그냥 노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래서 작가가 생각하는 예술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아닌 듯, 우리의 일상에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행각”이란 단어가 내포하는 내용은 무엇일까. 행각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어떤 목적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님.” 혹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수행함” 내가 생각하기에 전시에 사용된 행각이라는 단어는 두 가지를 모두 내포하는 것 같다. 작가가 말하는 예술은 노는 것이라는, 퍼포먼스 작가의 특성인 “돌아다님”이라는 특징을 잘 담고 있으면서도 예술은 사실 단순히 노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수행”하는 것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전시를 보면, 작가의 의도를 담아내고자 세심한 노력을 들인 전시장도 같이 보인다. 그래서 전시를 보는 동안 계속 위로받는 기분이었고 누군가가 나를 초대하기 위해 열심히 고민하고 노력해서 꾸민 장소에 초대받은 기분을 느꼈다.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알고 싶고, 메시지를 공간으로 표현하는 전시를 보고 싶다면 이 전시를 추천한다.


과연, 성능경 작가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수행한 것은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전시를 관람해보고 나와는 또 다른 감상을 느껴보길 바란다.

 

 

[이세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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