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축제 밖으로, 바빌론 (Babylon, 2022)

글 입력 2023.02.19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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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플래쉬(Whiplash, 2014)와 라라랜드(La La Land, 2016)로 젊은 나이에 스타 감독 반열에 오른 데미언 샤젤(Damien Chazelle)이 퍼스트맨(First Man, 2018) 이후 4년 만에 장편영화를 들고 왔다. 바로 영화에 관한 영화, 바빌론(Babylon, 2022) 이다. 바빌론은 1920년대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 시대로 넘어가는 영화 산업의 변곡점과 맞물려, 별처럼 빛났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영화인들의 삶을 담는다. 지루할 틈 없이 속도감 넘치는 편집과 화려한 색감을 잘 녹여낸 영상미에 더불어, 샤젤의 앞선 세 장편영화를 함께 해 온 그의 오랜 친구 저스틴 허위츠(Justin Herwitz) 음악 감독이 써 내려간 사운드트랙은 웅장함의 정점을 찍는다. 오랜 기간 영화를 사랑하던 씨네필들은 벅참에 젖게 될 영화라는 생각도 든다. 여기까지가 포스터와 예고편을 통해 충분히 유추 가능했던 ‘바빌론’ 이라는 축제다.

 

하지만 축제는 커녕 대중의 반응은 뜨뜻 미지근하다. 바빌론은 국내에서 2023년 2월 1월 개봉한 이후 현재 2월 넷째주 기준 누적 관객 수 17만 명을 기록하며 흥행 부진이 사실상 확정이다. 이는 누적관객수 158만을 기록한 위플래쉬, 376만을 기록한 라라랜드와 비교했을 때 매우 저조한 성적표다. 아무래도 188분에 달하는 러닝타임과 R등급의 관람가는 만만치 않은 장벽인 듯하다.


그러나 사실 이는 예상된 결과였다. 한 인터뷰에서 데미언 샤젤은 바빌론이 흥행에 실패할 것을 예상하고 제작했다고 전했다. 샤젤은 십 수 년 전부터 바빌론의 각본을 구상했으나 본인이 누군가를 설득시킬 수 있는 위치에 올라야 추구하는 바대로 제작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고, 15년을 기다렸다고 한다. 막대한 제작비가 예상됐지만 대중성과 타협시키기 어려운 영화라 판단했던 샤젤은 제작사를 구하는 것부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대본 수정에 관한 그 어떤 조건도 요구하지 않은 채 파라마운트사에서 손을 내밀었고, 바빌론은 오랜 기다림 끝에 제작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는 배우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연출가로서 샤젤에 대한 믿음과 더불어 영화의 취지에 공감한 배우들은 바빌론에 기꺼이 동참했다. 바빌론과 함께 한 사람들은 무엇에 공감한 것일까? 바빌론의 축제 속으로 들어갔다 나와봐야 한다.

 

 

[어서와, 바빌론은 처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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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 토레스(디에고 칼바)는 영화사에서 주최하는 파티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는 멕시코 출신의 청년이다. 매일 밤 열리는 쾌락주의적 파티에서 영화계 주요 인사들을 접대하며 일하지만, 어디까지나 윗선에서 지시하는 어두운 뒷일을 처리하는 외국인 종업원일 뿐이다. 한편 매니는 파티장 입구에서 경비에 의해 출입이 저지 당한 넬리 라 로이(마고 로비)를 도와주게 되며 그녀와 인연을 맺는다. 넬리는 자신을 소개하며 자신의 이름 ‘넬리 라 로이’ 에서 ‘라’ 는 스스로 붙인 것으로, 프랑스어로 왕을 뜻한다고 말한다. 넬리가 자신을 스타라고 말하자 매니는 아직 출연한 작품도 없는데 어떻게 스타냐고 묻는데, 넬리는 그에게 스타는 되는 것이 아니라 타고나는 것이므로 자신은 이미 스타라고 이야기한다. 한편 파티장엔 실제 ‘스타’ 로 불리는 당대 최고의 배우 잭 콘래드(브래드 피트) 도 모습을 드러내며 사람들로부터 엄청난 관심과 주목을 받는다.

 

파티장 내부에 위치한 마약 창고에서 약에 취한 매니와 넬리 두 사람은 영화에 관해 갖고 있는 환상과 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매니는 지금처럼 남의 뒤치다꺼리나 하는 시궁창 같은 인생이 아닌, 대단하고 중요한 일을 하는 인생을 살고 싶다며 그것은 영화를 통해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영화에선 현실을 떠나 자신이 상상하는대로의 삶을 살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넬리 역시 이에 공감하며 현실을 벗어나 영화같은 인생을 살자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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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는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다. 뜻밖의 사고로 한 미성년자 여자 배우가 다음 날 영화 촬영이 불가능해지자, 파티장에서 마치 주인공처럼 춤추고 있던 넬리가 영화 관계자의 눈에 띄어 대타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매니 역시 술로 뻗어버린 잭 콘래드(브래드 피트) 를 집에 데려다주게 되며 그와 인연을 맺고, 바로 다음날부터 영화 촬영장으로 출근하게 된다. 넬리는 신인답지 않은 연기력과 섹스어필로 순식간에 스타덤에 오르게 되고, 매니는 밑 단계부터 시작해 영화 제작자로서 점차 성공적인 커리어를 걷기 시작한다. 잭 콘래드 역시 MGM의 간판 배우로 전성기를 보내고, 오늘만 사는 사람 마냥 화려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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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영화 산업은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 시대로 접어들기 시작한다. 기존에는 배우들이 눈으로 보이는 연기에만 집중하면 됐다면, 이제는 목소리까지 연기의 영역에 포함된 것이다. 이는 넬리와 잭이 무성영화 시대의 영광을 영원히 누리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는 신호탄과 같았다.

 

 

[한여름 ‘뱀’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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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날과 같이 파티를 즐기고 있던 넬리는 자신의 매니저라 생색내며 영화계 인사들에게 접근하는 아버지가 못마땅하고, 그가 자신이 방울뱀과 싸워 이긴 적이 있다는 허풍적 영웅담을 늘어놓는 모습에 넌더리가 나고 만다. 그녀와 그 아버지의 저급한 출신이 어디 가지 않는다는 뒷담화를 듣게 된 넬리는 저급함으로 맞대응이라도 하듯, 자신의 아버지가 뱀과 실제로 싸우는 광경을 구경할 사람이 있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호기심에 모인 사람들을 이끌고 방울뱀이 있는 황무지로 향한다.

 

파티장 안에서 듣는 방울뱀 이야기는 신비로운 영웅담과 같지만, 현실은 달랐다. 파티장에서 빠져나와 실제 방울뱀을 보러 간 자리에서 넬리의 아버지는 술에 취해 쓰러지고, 넬리는 방울뱀에게 물려 기절하며, 사람들은 혼비백산하게 도망 다닌다. 이 위험천만하고 우스꽝스러운 방울뱀 시퀀스에선 넬리가 방울뱀에게 목을 물린 부분이 적나라하게 묘사되며 혐오스럽다는 느낌까지 준다.

 

이 방울뱀 시퀀스에는 처연한 멜로디가 깔리는데, 한바탕 아수라장을 바라보는 잭의 눈빛은 평소 그답지 않게 슬픔이 가득하다. 파티장에서 벗어나 마주하게 된 유쾌하지 않은 현실과, 그동안 누려왔던 축제에서의 환상적 쾌락감 사이의 괴리를 어렴풋하게나마 포착한 데 대한 슬픔일까?

 

 

[어둠 속으로 춤추며 사라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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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축제는 저물어가고 잭과 넬리는 유성영화로의 전환에 대한 타격을 극복하지 못하며 점점 지는 별이 되어간다. 잭은 무성영화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이나 젊고 목소리 좋은 배우들에게 밀리게 되고, 넬리 역시 마약과 도박에 빠져 살다 결국 사고를 치고 자신을 도와준 매니와 함께 도망자 신세가 된다.

 

영화계에서 자신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잭은 ‘잭 콘래드의 시대는 끝났다’는 요지의 인터뷰 기사를 읽고 분노하여 해당 기사를 내보낸 칼럼니스트 엘리노어 세인트 존(진 스마트) 을 찾아간다. 영화 바빌론에서 데미언 샤젤 감독이 영화인들에 대한 경의를 직접적으로 표한 부분이 바로 이 잭과 엘리노어의 대화로 보인다. 엘리노어는 잭에게 그의 시대는 저물었음을 재차 강조하곤, 이는 그의 탓이 아니며, 그저 당연한 순리이니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비록 그는 대중들에게 잊힐 것이나 그가 죽고 난 후 사람들이 TV를 틀었을 때, 그는 다시 살아나게 된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You’ve been given a gift. Be grateful. Your time today is through, but you’ll spend eternity with angels and ghosts”. 재능이 있던 것을 축복이라 생각하세요. 당신의 시대는 끝났지만, 당신은 천사와 영혼처럼 영원히 빛날테니.

 

결국 잭 콘래드는 자신이 지는 별임을 인정하게 되지만 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살을 택한다. 넬리 역시 매니와 도주하던 중 어둠 속으로 춤을 추며 사라지고, 수 년 뒤 홀로 쓸쓸하게 죽음을 맞았다는 것이 신문 기사를 통해 암시된다. 매니 또한 넬리의 도박빚으로 그녀와 함께 생명을 위협받는 현실에 큰 공포와 충격을 경험하고 영화계를 아예 떠나게 된다.

 

 

[초창기 할리우드에서의 소수자들]

 

한편 바빌론의 스토리가 다소 복잡하다는 비판을 듣는 이유는 이 영화에서 조명하고자 하는 캐릭터들이 많기 때문인데, 넬리와 매니, 잭뿐만 아니라 초창기 할리우드에 몸담았던 소수자들의 이야기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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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최초의 동양인 여성 배우 애나 메이 웡(Anna May Wong) 이 모델인 것으로 보이는 레이디 페이 주(리 준 리)는, 무성영화 시대에 오리엔탈리즘의 신비성에 힘입어 큰 인기를 끈다. 그러나 그녀 역시 유성영화 시대가 시작된 이후 잭과 넬리와 같이 대중들로부터 외면 당하고, 심지어는 영화사로부터 계약 해지를 일방적으로 통보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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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인 시드니 팔머(조반 아데포) 는 영화사 파티장의 트럼펫 연주가로 능력을 인정 받기 시작해 유성영화 시대 진입 이후 매니의 제안으로 음악 영화까지 찍게 되며 떠오르는 스타가 된다. 그러나 영화 촬영 중 시드니의 얼굴에 조명을 비춰야 했는데, 그의 뒤에 위치한 다른 흑인 연주자들과 비교했을 때 그가 너무 백인같아 보인다는 이유로 얼굴에 석탄을 바르고 트럼펫을 연주해야 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당시 미국 남부에서는 흑인과 백인이 함께 무대에 오르는 모습이 상영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연주자가 아닌 할리우드에서 배우로서의 삶에 회의감을 느낀 시드니는 스스로 영화계를 떠나 작은 식당에서 공연을 하는 삶으로 돌아간다.

 

본업인 트럼펫 연주자로 돌아가 행복해 하는 시드니와, 할리우드에서 외면 받긴 했으나 유럽으로 새출발을 하는 모습을 보이는 페이는 어떻게 보면 자기 파괴적인 결말을 맞은 잭과 넬리에 비해 현실을 잘 수용하고 삶을 이어나가는 인물들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 바빌론에서는 그 과정에서 인종적 소수자들이 할리우드에서 마주해야 했던 차별이나 장벽을 페이와 시드니라는 인물을 통해 조명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La La Land in Babyl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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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영화 바빌론은, 영화라는 축제로 입성해 한바탕 인생을 즐기다, 축제에서 빠져나온 후 현실을 마주하고 지는 별이 되어 간 영화인들을 그린다. 그리고 188분의 러닝타임을 지루하지 않게 끌어주는 데에는 저스틴 허위츠 음악감독의 사운드트랙이 큰 몫을 한다. 일부 곡들에서는 영화 라라랜드의 사운드트랙을 오마주한 부분을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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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상 바빌론과 라라랜드가 닮았다는 인상을 받기는 쉽지 않지만, 사실 우리는 바빌론 속에서 라라랜드를 어느 정도 보고 있다. 두 편 모두 동화같은 결말을 맞지 않는데, 이는 다시 말해 바빌론 속 라라랜드는 ‘영화로 대변되는 꿈의 이상과 현실’ 이라고 할 수 있다. 매니와 넬리는 현실을 버리고 영화로 도피하면 꿈과 같은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꿈만 같지만은 않았다. 무성영화 시대엔 영화 제작 과정에서 여러가지 변수를 통제하기가 매우 어려웠기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인력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고, 모두가 영화를 완성하는 것 자체에만 혈안이 된 과정에서 스태프의 인권은 개념조차 성립하지 않았다. 유성영화 시대로 급변하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배우들은 추락하기 시작했다. 1920년대 백인들은 수시로 흑인들을 ‘negro(흑인을 비하하는 표현)’ 라고 칭했으며, 동양인은 신비한 존재로 묘사되며 소비되었다. 즉 영화는 겉으로 보았을 때 화려하고 이상적인 꿈의 축제처럼 보이지만 이면에는 더럽고 추잡한 현실이 자리하고 있는 세상이다. 바빌론 속 라라랜드 역시 누군가의 꿈이, 깨끗하지 못한 현실과 마주하며 하나 둘씩 축제의 막을 내려간 것이다.

 

우리 관객들이 보는 영화는 스크린에서 보는 것만큼 고결하고 숭고한 필드가 아니며, 과거에는 더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인들이 영화에 진심인 이유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 때문일 것이다. 마치 샤젤이 지난 백 년 간의 영화사에 고하는 찬사를 매니의 입을 빌려 넬리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마음에 공감했기에 흥행 부진을 예견했음에도 샤젤을 비롯한 제작사, 출연진들까지 한마음으로 바빌론에 임하지 않았을까 싶다.

 

 

[다시 축제 바깥으로]

 

바빌론을 보고 일주일 간은 바빌론, 아니 영화라는 축제의 황홀함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했다. 이 영화는 다시 영화사에 길이 남을 수작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데 점차 희미해졌다. 바빌론이 내게서 빛 바래갔다. 만약 관람 직후에 글을 썼다면 찬사를 늘어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글은 바빌론과 영화를 사랑해 미치겠다는 글이 아니다. 조금 침착해진 지금, 바빌론 역시 여느 영화와 같이 어디까지나 영화 속 이야기라는 생각도 든다. 영화라는 축제에서 빠져 나오고, 관객들을 흠뻑 적신 황홀감이 말라가게 되면 그 영화는 언젠가 잊힐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우리가 영화를 보는 까닭은, 그렇게 잠시나마 현실을 떠나 영화라는 축제 속으로 초대 받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잭 콘래드(브래드 피트)가 그의 오랜 친구이자 제작 파트너인 조지의 부고를 들은 직후, 자신에게 연기와 관련된 발성법을 운운하는 연극인 아내에게 분노하는 장면이 있다. 바로 ‘지금 이 지구에서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real people on this ground)’ 에게는 잠시나마 현실을 떠날 수 있게 해 주는 영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생각난 시 한 편이 있었다.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의 “Birches(자작나무)” 라는 시다.



I'd like to get away from earth awhile

And then come back to it and begin over.

이 세상을 잠시 떠났다가 다시 와서 

새 출발을 하고 싶어진다 


(...)


Not to return. Earth's the right place for love:

I don't know where it's likely to go better.

I'd like to go by climbing a birch tree,

세상은 사랑하기에 알맞은 곳 

이 세상보다 더 나은 곳이 어디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나는 자작나무 타듯 살아 가고 싶다 

 

(...)


That would be good both going and coming back.

가는 것도 돌아오는 것도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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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화자가 자작나무를 타듯 살아가고 싶다는 이야기이다. 나무를 타고 하늘로 오르는 것은 현실을 벗어나 이상을 추구한다는 것이고, 다시 나무를 타고 땅으로 내려오는 것은 현실로 복귀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프로스트는 이 시에 관해 쓴 산문에서, 나무를 타고 하늘로 오르는 것을 “momentary stay against confusion,” 즉 ‘고통에 대항하는 일시적 머묾’ 이라고 표현하는데, 때때로 현실의 고통을 벗어나고자 하지만 어디까지나 일시적이라는 것이다. 세파에 지친다는 이야기를 하다가도 “Earth's the right place for love,” 세상은 사랑하기에 알맞은 곳이라 이야기 한다.

 

나무를 타고 하늘로 올랐다 다시 땅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영화라는 축제 속으로 떠났다 다시 축제 밖으로 빠져 나와야 하는 것처럼, 우리는 지구에 발을 딛고 사는 이상 결국 현실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 다만 영화가 사람들로부터 계속 사랑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현실을 떠나 숨을 공간을 마련해주기 때문이지 말이다. 이제 당신도 다시 축제 바깥으로 나갈 준비가 되었나?

 

 

[김지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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