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졸업반에 다시 본 치즈인더트랩

홍설, 혹은 나의 이야기?
글 입력 2023.02.19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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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갑자기 치인트 정주행을 했다. 그거 아는가? 치인트의 연재 시작 연도는 2010년, 당시 유정의 학번은 04학번 그리고 홍설은 07학번이었다는 것을...


벌써 10년도 더 된 작품, 극중 시간대로 나이를 먹었다면 올해로 유정선배도 홍설도 30대의 번듯한 직장인이자 사회인일 것이다. 둘이 결혼은 했을까, 그래서 우리의 영원한 서브남주 백인호는 여전히 사랑하는 피아노를 치며 어디선가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 시간이 참 빠르다. 연재 당시 배경에 등장했던 폴더폰도, 싸이월드도, 2000년대의 대학생들의 패션과 대학 풍경도... 불과 2년전 깜짝 재연재를 하며 시대에 맞게 수정되고 사라진 부분들마저 아쉬울만큼.


이상하게 치인트는 장면장면 다 기억에 남고 캐릭터 한명한명 다 생각이 난다. 여전히, 지금도. 어디선가 다들 자기의 삶을 꾸리며 살아가고 있을 것만 같다. 유정 선배도, 설이도, 백인호도, 다른 모든 등장인물들도 제각기 모습의 삶을 말이다.

  

 

치즈인더트랩을 다시보며

- 평범하게 착하고 평범하게 악한 우리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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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인트 연재 당시 나는 꿈많은 사춘기 중학생이었다. 내 또래 수많은 아이들이 그랬듯 매주 목요일을 손꼽아 기다리며 치인트로 대학에 대한 로망을 키우던 그런 평범한 중학생.


매주 미친 매력을 자랑하는 유정 선배와 백인호를 보며 마치 내가 홍설이 된 것처럼 설레곤 했다. 당시 내가 응원했던 남자주인공은 처음부터 끝까지 굳건히 유정이었음을 살짝 고백한다. 로맨스릴러라는 장르답게 설렘과 의미심장한 떡밥이 공존하는 분위기도, 흥미진진한 스토리도, 캐릭터들의 매력도 통통 튀는 연출도, 꽉차고 알찬 전개들도... 그당시 내게 가장 재미있고 기다려지는 웹툰이었다.

 

에피소드마다 등장하는 상철선배와 오영곤, 손민수는 주인공 설이 앞에 나타난 빌런이었고, 유정선배를 만나 점차 당차고 똑부러지게 성장한 설이에게 결국 물리쳐짐을 당하고 퇴장함으로써 '사이다전개'의 쓰임을 다하는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2n살 대학 졸업반, 딱 설이의 나이에 다시 본 치인트는 마치 처음 보는 이야기처럼 새롭기 그지없다. 전과 달리 내 눈에 더 들어온건 삐까뻔쩍한 두 남주인공 유정과 백인호가 아닌, 홍설과 그 동기들, 어쩌면 빌런으로 치부되었던 그 수많은 캐릭터들 - 평범하게 착하거나 또 누군가에겐 평범하게 악한 수많은 인간군상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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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한 대학생이자 집안에선 또 성실한 딸이었던 주인공 홍설의 고민들은 내게 더이상 낯설지 않았다. 취업, 진로고민, 장녀로서의 설움, 끊임없는 인간관계 문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 낯설고 새롭고 무엇하나 쉬운 것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앞으로 내딛어야만 하는 청춘의 순간들.


그 모든건 홍설이라는 캐릭터의 고민이자, 나의 고민이자, 수많은 다른 대학생 청춘 독자들의 고민이었다.

 

극중 홍설의 나이는 23, 24살인데 지금보니 참 나이에 비해 성숙하고 책임감있는 멋진 학생이었다는게 지금은 보인다. 어떤 시련이나 어려움이 닥쳐도 결국 꿋꿋하게 자기 힘으로 해결해내고 이겨내고, 그렇게 변화하고 한단계 더 성장하는 멋진 캐릭터였다는걸 이제서야 깨닫게 된다.

 

나는 누군가에게 때론 홍설이었고, 남주연이었고, 상철선배였고, 또 가끔은 오영곤이나 손민수였던건 아닐까. 그 수많은 인간군상들에서 조금씩 묻어있는 나의 모습들을 발견하고 또 곰곰히 반성해보게 된다. 유정선배와 백인호가 대학엔 없다며 부르짖던 철없던 나역시 사실 홍설은 아니었던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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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아픈 손가락인 백남매 캐릭터는 인생에 커다란 상흔을 남긴, 채 아물지 못한 과거의 상처 때문에 오랜시간 방황하는 캐릭터들이다.


온전히 채워진 적 없는 결핍과 치유되지 못한 상처의 기억들은 일상생활에서도 불쑥불쑥 모난 모습으로 튀어나오곤 한다. 그리고 이 굴레를 끊고 과거로부터 비로소 벗어나 앞으로 한발짝 내딛기로 결심한 백인호와, 여전히 아물지 못한 상처를 안고 변하지도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해 주저앉아버린 백인하까지. 모두 어딘가의 우리들의 모습이다.

 

완벽하게만 보였던 유정선배 역시 불완전한 한 명의 사람이었을뿐. 맘대로 이런 사람일 것이다, 저런 사람일 것이다 단정지어 기대하고 실망했던 난 웹툰 속 유정을 스쳐 지나갔던 수많은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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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입체적인, 평범하게 착하고 또 평범하게 악해서 그만큼 현실적인 캐릭터들은 마치 실제 사람과 같아서 매번 볼때마다 공감가는 입장이 달라진다. 이번 정주행에서는 유정뿐만 아니라 백인호 백인하 남매의 서사에 특히 집중하며 봤던 것 같다.

 

독자들이 보는 각도에 따라 수많은 해석과 관점이 가능한 이야기들, 입체적인 인물들. 그래서 여전히 재밌고 또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작 웹툰이 아닐까 한다. 정말 순끼님 데뷔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전설아닌 레전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납작하고 평면적인 여타 가벼운 작품들과 달리 현실적이고 깊은, 일견 인간에 대한 통찰마저 엿보이는 그런 작품이다.

 

다시 보니 정말 새롭고 신선했지만 여전히 재미있었고 또 여전히 설레었던 작품. 언제나 추천하는 작품이다.

 


[박주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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