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지금과 다를 것 없는 군상에 대해 - 이백십일 [공연]

글 입력 2023.02.13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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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은 <마음>만 접해보아서 그랬을까. 특유의 고요함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필담은 많지만 육성으로 나누는 대화는 적은 듯한 고요함이랄까.

 

일본의 ‘이백십일’은 입춘으로부터 210일째 되는 날을 의미한다. 한 해 동안 꾸려온 농사가 막바지에 흐트러지지 않도록 대비하는 날이라고 한다. 이백십일이니 산을 올라야 한다는 게이의 말이 그제서야 어렴풋이 해석이 되는 듯했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마음을 다잡기 위한 자의적인 역경.


등장인물의 수는 적고, 각자의 이미지는 강하다. 어깨를 과하게 편 채 큰 발소리를 내며 생활하는 게이, 항상 움츠러들어있지만 뱉는 말은 하나같이 똑부러진 로쿠, 원하는 삶을 찾지 못해 헤매는 병약한 지식인 도련님과 자신이 속한 세계의 외부에는 어둡지만 내부에는 누구보다 밝은 하녀, 그리고 만사 느리고 여유로운 할아버지.


게이는 기득권층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지만 정작 본인도 ‘두부 장수’ 이상의 권력을 욕망한다. 삶의 목표의 명확도와 관계없이 무언가를 지향하며 나아가는 인간상을 표현하는 듯하다. 누구나 명예와 지위, 인정, 재력과 권력에 대한 세속적인 욕망을 품고 있다고는 하나 이를 잘 드러내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 여기는 동양의 사회에서, 게이는 이를 숨김없이 드러낸다. 솔직하고 호쾌하며, 고집스러우면서도 친구를 달랠 줄도 알고 홀로 등을 밀 수 있는 주체적인 인물이다.


성큼성큼 걸으며 큰 발소리를 내는 게이와는 달리 로쿠는 좁은 보폭으로 걸으며, 항상 추위에 떠는 듯이 한껏 움츠러든 인물이다. 다소 낙관적이고 무모한 면이 있는 게이와는 반대로, 로쿠는 현실적이고 이성적이다. 게이가 꿈을 이야기하면 로쿠가 꿈에 다다르는 과정을 이야기한달까. 갈수록 나빠지는 날씨에도 무작정 아소산을 오르려는 게이를 마지못해 따라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산에 오르다 길을 잃고 서로를 잃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게이와 함께 산을 내려온다. 친구의 고집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와 길을 나란히 걷는 것으로 읽히는 장면이었다. 홀로 등을 밀지는 못하지만 타인과 서로 등을 밀어주는 법을 아는, ‘함께’할 줄 아는 군상을 보여준다.


게이와 로쿠의 맞은편에는 대학을 졸업한 도련님이 머무르고 있다. 공부한 학문을 직업적으로 살리지 못하고, 장사를 하려다 그마저도 망하고 만다. 고향에 돌아가지도 않고 여관에 눌러앉아 겨우 먹고사는데, 건강도 썩 좋지 못해 잔병치레로 돈을 날리기 일쑤이다. 가족력이 있는 폐병에 대한 두려움과 돈에 대한 강박을 이겨내지 못하고 여관의 단칸방에서 머무르기만 하다 결국엔 그 여관에서 잡일과 시중을 도맡으며 눌러앉는다. ‘자신’이 아니라 ‘타인’과 ‘사회’의 시선과 관념에 사로잡혀 방랑만 하다 결국 허울 좋은 핑계로 진정한 삶을 포기하는 나약한 인간상을 대변한다. 근대소설에 흔히 나오는 군상이다.


의사와 하인은 짧게 등장하지만 그 찰나의 순간에 도련님에게 촌철살인을 행하고는 사라진다. 의사는 도련님에 대한 안타까운 심경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만 자신의 보수와 약값은 꼬박 챙기는 성격으로, 실리에 칼 같은 면모를 보여준다. 태도만 보면 도련님에게 외상이라도 내어줄 것 같지만 그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이로써 의사가 다소 매정한 사람처럼 느껴지는 장면이 연출된다. 자본의 원리를 따라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권리를 요구할 뿐이지만, ‘정이 없다’는 평을 받을 만한 인물이다.


개인적으로 매력적이었던 하녀는, 반숙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아사히와 맥주가 같은 것임을 알지 못하지만 자신이 아는 것에 대해서는 한없이 당찬 인물로 나온다. 사회적 위계질서는 엄격히 따르지만 합리적이지 못한 의견이나 이해가 가지 않는 요청에는 주눅 들지 않고 즉시 되묻고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한다. 세상 물정에 어두워 어리석어 보이는 면도 있으나, 자신의 세계에 대해서는 지혜롭고 더없이 현명하다. 당시 유독 많았을 부류이자 오늘날에도 적지 않은 부류이다. 또, 모든 것이 빠르게 교환되고 소통되는 요즘의 사회에서는 조금만 도태되어도 ‘반숙’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과 같은 취급을 받는다. 모르는 것에 대해 모른다고 당당히 말하기 어려운 세상이라 그런지, 하녀의 당돌함이 꽤나 사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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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르다 실패한 게이는 주저 않고 재도전을 외치고, 로쿠는 잠시간 앓으며 게이에게 포기를 설득하려 하나 결국엔 게이와 다시 길을 나선다. 도련님은 일거리를 찾지 않고 당장의 수입을 위해 여관에서 시중을 들며 살고, 할아버지와 하녀는 전과 다를 것 없이 자신들의 자리에서 부지런히 살아간다. 각자의 열정과 마음을 따라 살아가는 게이와 로쿠, 정신적 외압에 결국 도피와 안주를 선택하는 도련님, 기존의 세계에 충실한 하녀와 할아버지의 모습은 혼란의 시기에 새로이 등장한 인간상을 극단적으로 세분해 보여준다.


근대사회에 설정된 인물이지만 사실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도 쉬이 볼 수 있는 인물들이다. 끝없이 목표를 향해 발을 내딛는 사람, 쫓기듯이 살아가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신의 열정과 충동에 충실한 사람, 적당한 수입에 안도해 그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수입으로 알차게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많은 지식과 정보를 알지 못해도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 또는 도피 그 자체의 삶을 선택하는 사람.


게다를 통한 인물 성격의 표현은 꽤나 인상적이었으며, 소극장에 맑게 울려 퍼지는 악기들의 소리도 조화롭게 서사에 잘 섞여들어가는 것이 연극 내내 적당한 텐션을 주었다. 나쓰메 소세키의 원작과 연극의 내용이 얼마나 동일한지, 어떤 부분이 각색되었는지 알지는 못하지만 분명 소세키만의 분위기가 연극에도 들어있었음은 틀림없다.


건장한 두 청년의 만담과 아픈 자의 한탄, 명랑한 자의 똑부러진 생각이 서사를 이루고, 붉은 산을 오르기 위한 게다 소리가 앉아있는 자마저 불안감이 들게 만드는 연극 <이백십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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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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