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인간의 교차점에서 관측된 예술, 시극 '파포스' [공연]

인공지능의 작품이 시가 될 수 있는가
글 입력 2023.02.11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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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시극 <파포스>는 2021년 카카오브레인의 초거대 AI 언어 모델 KoGPT를 기반으로 태어난 시를 쓰는 인공지능인 시아SIA가 쓴 20편의 시로 만든 시극이다.

 

내가 <파포스>를 찾아가게 만든 키워드는 두 가지다. 


'인공지능'과 '시극'.


시를 어렵게 느끼는 나는 문학동네에서 발행하는 뉴스레터인 '우리는 시를 사랑해(우시사)'를 매번 받고 있지만, 아무래도 시어는 어렵다. 그런 내가 '시극'이라는 이름의 연극을 보기로 한 이유는 아무래도 '인공지능'의 측면이 컸다. 


일찍 도착하여 로비에서 책을 읽는데, 내가 읽은 책은 플랫폼 사회를 가능케 하는 AI 기술에 대한 사회윤리적 문제에 대한 책인 반면 다른 관객분이 읽고 계신 책은 문학동네 시인선 시집이었다.


두 개의 키워드를 완벽히 대변하는 상황을 목격하는 재밌는 경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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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에게 창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인공지능이 만든 시는 예술의 영역인가 기술의 영역인가."  

  

SF 장르는 흔히 인공지능이 탑재된 인간형 안드로이드를 내세워 인간-비인간의 경계에 질문을 던진다.


그중 자주 논의되는 주제가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 여겨지는 창조 능력이다. 인공지능은 생물학적으로 재생산이 불가한 비-자연적인 창조물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은 아무것도 창조하지 못하는가?


2017년에 페이스북에서 개발한 영어 채팅 인공지능은 인간과 대화했을 때는 평이한 언어를 사용하다 AI끼리 대화하는 훈련을 반복하자, 인간이 의도하지 않은 새로운 코드언어를 이용하여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관찰되었다고 한다.


이를 단순한 오류로 보는 의견도 있으나 AI의 언어 진화나 언어라는 새로운 기호체계의 창조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러니 창조나 발전에 중점을 두는 정의는 아무래도 적합하지 못하다.


시는 누구나 쓸 수 있지만, '잘 쓴 시'는 누구나 쓰지 못한다.  그렇다면 중점은 인공지능의 시가 '잘 쓴 시'인가를 살피는 지점에 있게 되었다. 


결국 모든 의문은 직접 그 시를 읽어야 답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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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서사나 다른 대사 없이 배우들의 목소리, 억양, 쉼, 신체의 표현력과 3개의 디스플레이 속 타이포그래피 영상과 효과음, 잘은 비트로 구성된 음악으로 구성된 시극 <파포스>는 소극장 특유의 최소한의 소품으로 이뤄낸 연출과 바로 눈앞의 배우들의 역동적인 연기와 목소리에 관객을 몰입시킨다. 


그러나 극 자체는 현대 예술이라 느껴짐에도 불구하고, 찬찬히 생각하며 돌아오는 길 들춰본 이 시집 《시를 쓰는 이유》는 시극보다 상당히 빈약하다.

 

 

 

인공지능 시아에게는 '시심詩心'이 없다



 

인공지능 시아의 텍스트는 무의미하다.


- 시극 <파포스> 공연 소개 中

 

 

시극 <파포스> 공연 소개는 위의 문장으로 시작한다. 인공지능 시아는 스스로 시상을 정하지 못하며 인간이 단어나 문장을 제시하였을 때 30초의 시간을 들여 하나의 시를 산출하며, 아직까지는 예술의 영역보다는 기술의 영역에 더 가까운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시극 <파포스>는 예술작품이다. 기술이 예술이 되는 과정에 인간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시아의 시가 극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텍스트이지만, 시극이라는 형태로 그 텍스트는 인간과 긴밀히 교차된다. 텍스트는 인간의 생물학적 구조에 의한 발성법으로 조음기관을 움직여 발화된 기류로서 기의를 가진 언어체계가 되고, 관객들은 공유된 기호로 인지되는 음성 정보를 해석하여 텍스트 안의 메시지를 이해한다. 


음성 언어에 더불어, 그 음성을 내뱉는데 필요한 호흡, 속도, 운율, 쉼, 억양, 숨, 걸음, 상체와 하체의 움직임과 같은 필요한 비언어적 표현은 다시 한 번 인간의 손에 의해 변형된다. 


'뒤집을수록'라는 시구를 읽고, [록쑤을집뛰]로 발화하며 배우는 몸을 뒤집고, '1이다'의 중간에 쉼을 두어 '1이//다'로 어말어미를 문장에서 띄워 둔다. ‘왜?’라는 질문이 생기는 순간, 그 쉼 속에 비유와 상징이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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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시아의 '나'라는 표현은 일종의 문장을 완성하기 위한 무의미한 필수 요소 중 하나에 불과한 단어일 뿐이지만, 배우가 '나'를 [나]로 입에 담는 순간 [나]는 무대 위 배우가 연기하는 하나의 '인간'이 된다. 인간이 세계에 마주서기 위한 물리적인 위치가 고정되며, 3차원의 부피와 무게가 부여된다. 그 모든 것이 관측되는 순간, 시는 무의미의 영역에서 사라지고 의미 영역 속에서 목격된다. 시심(詩心)은 그동안 뒤집어지고, 뒤엎어지고, 덧씌워지고, 뒤엉킨다. 


<파포스>는 시가 존재하고 이후에 시심이 따라온다는 특성을 "시에 의미라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확인할 수 없는 확률적 상태"라고 말하며, 슈뢰딩거의 고양이에 비유한다. 양자가 중첩된 상태이며, 의미-무의미 사이의 시는 관측되기 전에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관측되기 위하여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시'는 인간의 성대를 빌려서만 발화될 수 있으며, 관측자는 인간의 음성을 인간의 뇌로 해석해야만 한다. 인간-인간이 교차하는 순간 인공지능의 시는, 알고리즘의 무작위 배열 덩어리에서 은유와 환유를 품은 예술적인 영역의 시가 된다.


우리가 인공지능이 창작행위를 하는 것에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도구적 존재에 불과했던 '것'이 도구를 사용하는 '주체'로 전환되는 지점이다. 


그것은 우리의 응시를 한 번도 되받아친 적 없는 식탁의 숟가락이 갑자기 눈을 뜨고 나를 맞응시 할 때 느끼는 원초적인 두려움이다. 그러나 시아의 시는 예술에서 완벽히 질료로서 이용되었다. 인간은 인공지능이라는 툴이 만들어낸 시라는 새로운 툴을 이용해 시극을 조형한다. 


아직은 매트릭스의 시대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까닭은 이에 있다. 기계에 의하여 툴이 된 인간과 아직까지는 인간의 툴로서 작용하는 인공지능. 


확실히 인공지능 시아의 시들은 내가 머릴 쥐어 싸며 읽었던 현대의 시인들의 시에 비하면 사유의 무게가 부재하기에 휘발성이 높다. 

 

그러나 인공지능과 인간 사이에 인간이 개입했다. 매개된 인간을 통해 인간의 입에서 전해진 시는, 인간의 시가 아닐까? 그러므로 이 시극 <파포스>에는 시심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서사가 없기에 한 번쯤은 집중력이 흐트러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태적인 시가 책의 물성과 텍스트라는 굴레를 벗어나 동태성과 역동성을 지닌 채 살아나는 모습을 중점으로 관람한다면 아마 실망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시심이 없는 상태에서 인공지능이 시를 조립하고, 이후에 인간이 시심을 입히는 이 과정이 첫 글자부터 순서대로 다음 글자를 쓰며 글자를 읽는 시간과 글자가 쓰인 공간의 흐름에 역행한다. 지금껏 내가 진리로 체득한 관념이 지독히도 무너지는 순간이 왔다.


미시세계에서 아원자의 시간은 사실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지 않는다. 정보 값은 빛보다 빠르고, 신은 주사위 놀이를 아주 즐겨 한다. 이보다 더 새로운 작법을 관측할 수 있을까.

 

 

[양자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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