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뭐가 보이지? ... 레드요 [공연]

레드와 카타르시스
글 입력 2023.01.31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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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상황은 몇 번이나 존재할까. 일단 카타르시스의 정의부터 짚고 넘어가 보자. 옥스퍼드 사전에 따르면 심리학적 관점에서 “자기가 직면한 고뇌(苦惱) 따위를 밖으로 표출함으로써 강박 관념을 해소시키는 일”이라고 나와 있다.


깊은 생각에 빠졌을 때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일을 한다. 내 고뇌의 해소 방법은 걷기이다.


일부러 모르는 곳에 가서 처음 보는 풍경, 알지 못하는 골목 골목을 지나치며 걷는다. 두 시간을 넘게 쉬지 않고 걸으면 어느샌가 몸이 무거워지고, 이 이상 걸으면 다음 날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 걷다 보면 쾌감과 해소감이 느껴진다. 그런데 이 감정도 카타르시스, 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하다.


내가 기억을 할 수 있는 때부터 지금까지, 명확하게 카타르시스라고 부를 수 있는 경험은 한 손으로 꼽을 수 있다. 그중 가장 최근의 카타르시스는 연극 ‘레드’를 보던 중에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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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는 추상표현주의 화가 ‘마크 로스코’의 씨그램 빌딩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연극이다. 공연에서는 가상의 조수 ‘켄’을 등장시키고, 갈등과 논쟁을 통해 사건을 재구성한다.


 

씨그램 빌딩 사건이란?

 

1958년, 마크 로스코는 3만 5천 달러의 엄청난 계약금으로 뉴욕 씨그램 빌딩 안의 포시즌스 레스토랑 벽화를 주문 받는다. 1959년, 미켈란젤로의 벽화를 보고 레스토랑의 벽화가 속물적인 장소의 장식물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며 계약을 파기한다. (신시컴퍼니 SNS 참고)

 


로스코는 철학, 신학 등 다양한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깊은 생각을 그림에 담는다. 그래서 조수로 들어온 켄에게도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논쟁을 이어가려는 모습을 보인다. 반면,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는 켄은 마크 로스코가 언급하는 철학자들을 잘 알지 못한다.

 

공연 속 두 인물은 사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추상표현주의와 팝아트, 스승과 제자, 전대와 후대를 나타내기도 한다. ‘레드’는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고 이야기하기 보단 둘의 이야기를 통해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인생이란 무엇인지, 어떤 색에 담긴 복합적인 의미는 무엇인지.


뭐가 보이지?

… 레드요

 

로스코는 블랙과 레드로 이루어진 그림을 그린다. 로스코의 질문에 켄은 눈앞에 보이는 그대로를 말한다. 로스코는 더 자세한 감각을 묻고, 그들은 생각나는 단어 - 해돋이, 심장 박동, 레드 와인, 빨간 장미, 붉은 립스틱 등 - 를 함께 나열한다. 이 대화를 통해 로스코의 레드는 생명력, 열정. 블랙은 죽음과 잠식 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유추할 수 있었다. 

 

극이 진행되다 보면 그림의 밑 작업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얀 캔버스가 등장하고, 로스코와 켄은 음악에 맞춰 그 크고 하얀 캔버스를 빨갛게 물들인다. 내가 본 공연에서는 음악이 끝나는 타이밍에 딱 맞춰 둘이 함께 붓질을 끝냈다. 계속해서 대립하던 두 사람이 캔버스 위에서는 충돌 따위 없다는 듯이 행동하자, 이루 말할 수 없는 쾌감이 느껴졌다. 


어렸을 적, 기분이 안 좋거나 깊이 생각할 일이 있으면 노트에 네모를 그리고 그 안을 새까맣게 칠하는 버릇이 있었다. 얇은 선으로 큰 네모를 한 줄 한 줄 채워나가다 보면 마음속의 응어리가 풀리는 기분이 들었는데, 이 작은 네모와 해소가 큰 캔버스와 카타르시스로 확장된 느낌이었다.


로스코는 언젠가 블랙이 레드를 잡아먹을 거라고 말한다. 그 말이 사실이라도 된 듯, 그는 자신의 모순 안에 갇힌 채로 포시즌스 레스토랑에 벽화를 건다. 부유하고, 그림을 장식으로 쓰며, 예술에는 관심도 없는 사람들이 그의 그림에 압도당하길 바라면서.

 

풍경화, 초상화, 정물화. 빌어먹을 수프 캔, 만화책! 이런 것만으로 충분할 때가 있어요. 이렇게 창문이란 창문은 죄다 걸어 잠그고, 자연광이라고는 한 줄기도 들어오지 않는 이 빌어먹을 잠수함 안에 자신을 가둬두지 않으셨다면 깨달으셨을지도 모르죠. 

 

선생님한테는 그 무엇도 충분하지 않으니까. 선생님 그림을 구입하는 그 사람들마저도요!

 

2년간 그의 곁에 있던 켄은 이런 모순을 발견하고 지적한다. 그 어떤 대중과 구매자도 납득하지 못했던 로스코는 진정으로 자신의 그림을 이해하고, 그림이 있을 장소를 꿰뚫어 본 켄을 인정한다. 레스토랑과 계약을 해지하고, 켄을 해고하며 이 작업실을 나가 세상 속으로 가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묻는다. 뭐가 보이냐고.

 

켄은 같은 대답을 하지만 처음과는 다른 의미가 느껴진다. 지금까지 로스코에게서 흡수한 모든 것, 시대를 알고 물러나는 법, 뜨는 태양이 있으면 저무는 태양도 있다는 것. 그 모든 걸 합쳐야 비로소 켄의 ‘레드’가 된다.

 

어떤 색이 한 사람의 인생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굉장한 희열로 다가왔다. 켄이 떠나고 로스코가 홀로 서서 그림을 바라보는 장면까지, 로스코의 레드는 어떻게 변화했을까. 극을 더 곱씹고 싶어지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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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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