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느림의 미학, 클래식 감상소 [공간]

글 입력 2023.01.14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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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에 가까워지자 희미하게 들리는 음악소리는 나를 가슴 뛰게 만들었다. 하나의 공연장에 들어선듯한 느낌으로 문을 열자 큰 음악소리가 들렸고, 분위기에 압도당했다.

 

맨 앞자리에 지정받은 나는 스피커와 가까운 위치에 있어서 좋았다. 이곳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을 제일 가까이서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신이 났었다.

 

세심한 고민으로 음료를 고른 후, 공간에 담긴 모든 것들들 서서히 느끼기 시작했다. 잠시 눈을 감으며 편안히 앉아있는 사람들, 음악과 함께 책을 음미하는 사람들,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적으며 감상하는 사람들까지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즐기고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읽을 책과 필기할 다이어리 그리고 오로지 음악에 집중할 마음까지 단단히 준비하고 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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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는 소설을 자주 읽지만 시집을 가지고 왔었다. 이곳의 음악을 감상하며 읽기에는 가장 적합할 거라고 생각했다. 스토리에 깊이 있게 몰입하기보다는 느리게 시를 음미하면서 음악을 듣는 것이 나만의 방식이었다.

 

잠시 눈이 피로해질 때쯤 다른 곳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때 내 눈앞에 보였던 작은 바깥 풍경은 한 계절의 끝을 알려주었다. 이때가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갈 시기였으므로 짙은 색의 마른 나뭇잎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때 들렸던 곡은 매우 잔잔했던 기억이 나며, 보이는 풍경과 매우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한참 동안 작은 창문을 바라보며 이곳에 눈이 내린다면 어떤 풍경을 만들 것인지, 어떤 곡과 어울릴 것인지 상상을 했다.

 

잠시 책을 덮은 후, 다이어리를 꺼내 무언가를 적고 싶었다. 그래서 이곳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막힘없이 술술 써 내려갔다. 처음 방문한 헤이리 마을은 낯선 감정이 들지 않았고, 오히려 반갑고 편한 느낌이었다.

 

마치 오랜만에 방문한 느낌을 받았으며 그만큼 나와 어울리는 장소라고 생각했다. 또한 작은 클래식 공연장 같다고 느꼈다. 실제가 아닌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일 뿐이라도, 눈을 감으면 공연장에 와 있는듯한 기분이 계속 들었다.

 

행동들을 멈추고 오로지 음악에만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다. 밖에서 눈을 감고 있는 건 오랜만이었다. 사실 언제 눈을 감고 들리는 소리에만 집중해 본 적이 있었나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현재 보이고 들리는 것에 집중하지 않은 채, 다가오지 않은 시간에 불안해 마음 급했던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카메라타는 음료를 마시며 음악을 감상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현재에 보이는 것에 집중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나오는 곡이 무엇인지, 곡을 들으며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지금이라는 순간에 집중해야 즐길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평소 카페에서 들었던 곡이 기억이 나는가 또는 음악을 들으며 마음이 저릿했던 순간이 있었는가. 물론 이런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기억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늘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는 것에 쫓겨 음악을 즐기지도, 현재를 즐기지도 못했다.

 

그래서 나는 카메라타에서 보낸 시간이 매우 소중하게 느껴졌다. 이 공간만이 주는 특별함이 존재했고 나에게 주는 메시지가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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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으로 올라가면 카메라타의 모든 걸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여기에서는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음악을 즐기는지 볼 수 있어 흥미롭다. 각자 향유하는 방법은 다를지라도 모두가 음악에 집중하고 있는 뒷모습은 기억에 오래 남았다.

 

평소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거나 대화하는 모습을 봤었는데, 그저 음악에 집중하는 모습은 인상 깊었다. 내가 많은 타인의 뒷모습을 본다는 게 신기했으며 또한 다들 대화는 지양하며 같은 자세로 같은 노래를 듣고 있는 모습이 하나의 장면 같았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한 공간에서 여유를 누리는 모습을 보며 크게 와닿았다.

 

아마 카메라타의 매력이자 장점은 스피커로 듣는 웅장한 클래식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포착하기 힘들었던 모습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느림이 미학이라는 말이 참 잘 어울리는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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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앞자리에 앉아있었던 나는 곡이 끝날 때마다 보드에 눈이 갔다. 바뀌는 곡의 제목을 보드에 쓰며 앨범 표지까지 같이 올려져 있었다. 대부분 알지 못하는 음악들이었지만, 새로운 걸 맞이한다는 기분이 들어 매우 흥미로웠다.

 

낯선 음악은 내 귓가에 계속 들렸지만 오히려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들리는 대로 집중하며 그저 음악의 감정에 따라 나도 함께했다.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에 쫓겨 나 자신을 잃어갈 때, 스스로를 다시 찾고 싶을 때 카메라타를 다시 찾을 거 같다. 과거와 미래가 아닌, 현재를 즐기며 살아가는 나를 발견할 수 있기에.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 절실히 필요하다면 이 곳에 편히 앉아 음악을 듣기 바란다.

 

 

[이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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