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정상성에 의문을 가진 작가, 김초엽 - 글리프 6호

김초엽은 SF 작가라는 수식어로 담을 수 없다.
글 입력 2023.01.01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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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사랑하는 SF 작가'


김초엽 작가에게 붙는 가장 익숙한 수식어다.


평소 소설을 잘 읽지 않던 나도, 그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으며 SF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던 터라 김초엽 작가에게 붙는 저 수식어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그의 모습과 작품은 아주 한정되어있었다는 걸 <글리프>를 통해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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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리프는 아주 재미있는 독립 출판물이다.


'작가 덕질 아카이빙'이라는 말이 이 책의 정체성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한 권의 책 안에 한 작가에 대한 모든 이야기가 담겨있다. 작품, 인터뷰, 생애 사건, 연재글, 그리고 그에 대한 다양한 필진들의 생각이 모여있다.


<글리프 6호: 김초엽 [실험]> 에서는 크게 아래와 같은 내용을 살펴볼 수 있다.


- 한국 사회에서, 한국 문학에서 김초엽이 사랑받는 이유

- 김초엽이 세계를 표현하는 방법

- 김초엽에 대한 필진의 짧은 글

- 김초엽 작품 세계관, 설정 살펴보기

- 김초엽의 일대기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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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끝의 온실> 속 주요한 식물인 모스바나와 세계관 설정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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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 작품에 대한 다양한 필진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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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에 대한 독자들의 사랑 고백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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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기와 같은 김초엽 아카이브

 

 

이렇게 보면 이 작가의 엄청난 팬이어야지 읽을 만한 책일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과 <지구 끝의 온실> 이 두 가지 책을 읽었다.

 

김초엽은 짧은 시간 내에 워낙 다작을 한 편이라 <글리프>내에서 언급하는 책 중 모르는 것이 훨씬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흥미롭게 읽었다. 내가 알고 있던 이 작가의 글이 다른 작품에서는 어떻게 펼쳐졌는지 간접적으로 맛보기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는 이런 식으로 멋지게 글을 썼던 사람이 저 작품에서는 저런 주제를 얘기했구나.', '아, 내가 느낀 감상이 다른 책에서도 이어지는 주제 의식이구나.' 하고 잃어버렸던 퍼즐 조각을 맞추는 과정 같았다.

 

그래서 김초엽의 작품을 섭렵한 사람이든, 한 권만 읽은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모두가 다른 감상으로 즐길 수 있는 책이겠다 싶다.

 

*

 

<글리프>를 읽으며 좋았던 또 다른 부분은 한국 문학사 속에서 이 작가의 업적, 존재를 톺아보게 만든다는 점이다. 서두에 썼듯이 한국의 SF 작가 각인되어있던 김초엽 작가의 글들은 사실, 정통 SF와는 거리가 멀다고 한다.


오히려 기존 SF 문법과 거리를 두거나 진입장벽을 의도적으로 낮추는 작품들을 써서 순문학의 경계를 없애는 작업에 가깝다고 <글리프>에서는 말한다.


기존 문학계가 고집해오던 순문학이 대중에게 외면받고 있던 차에 김초엽의 작품이 대중에게 집중 받게 되자, 문학/출판계는 'SF도 먹히는구나!' 하고 그 점을 중점적으로 세일즈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실제로 사람들은 SF, SF... 김초엽부터 정세랑까지 갑자기 이곳저곳에서 보이는 SF 문학 타령에 흥미가 생겨 소설을 보게 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SF 소재 때문에 열광했는지는 생각해봐야 한다.


[김초엽의 작품이 비추고 있는 그 일상적 현실이란 '정상성'이라는 이름으로 차별과 배제가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는 지금의 세계인 것 같다. 사회 여러 분야에서 강요되고 있지만 진입은 더욱 어려워진 어떤 '정상'의 기준에서, 어딘가에선 필연적으로 '비정상'으로 불릴 수밖에 없는 세대. 우리는 김초엽의 세계 안에서만큼은 안전하게 위로를 받을 수 있게 된다. 독자들이 열광하는 점은 김초엽 작품 속의 과학 기술이나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SF 소재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납작하게 만든 정상의 기준을 김초엽의  세계에서만큼은 다시 넓혀 놓았다는 점인 것이다.]


우주, 고도로 발전된 과학 기술은 그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지, 그 주제는 너무나 인간적이고 따뜻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의 부조리함, 외로움 등을 다른 조건으로 설정한 세계에서 펼쳐 보이니 더욱 적나라하게 독자의 마음에 와닿은 것이었을 거다.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던 작가의 이야기를 숨은 뜻부터 사전적 지식, 사회적 배경 등으로 엮어 볼 수 있는 <글리프>. 이번 6호에서는 [실험]이라는 부제에 어울리는 김초엽의 세상을 잘 담아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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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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