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짧은 글과 순간의 사진이 주는 삶의 무게 - 삶이라는 고통 [도서]

글 입력 2023.11.05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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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울이라는 도시가 참 좋다.

 

때로는 지긋지긋하고 또 때로는 벗어나고 싶어 몸서리를 쳐도 그렇다. 언제나 어느 방향으로든 변하든 이 도시는 말 그대로 역동적이다. 2021년에 상경하여 지금까지 3년째, 내가 사는 동네와 또 그 동네에 사는 나는 꽤 많이 변했다. 그래서 항상 과거의 이 도시가 궁금하다. 내가 도착하기 이전의 2020년과 아버지가 서울에서 일하던 시절인 20년 전, 내가 태어나기 이전의 30년 전, 부모님이 태어나기 이전의 50년 전의 서울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도시의 과거를 엿보기 위해 책 <삶이라는 고통>을 읽기 시작했다.

 

작가가 음악인이었다는 사실을 책을 읽기 시작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포크 록의 대부라고 불릴 정도의 유명인이었다는 검색 결과에 미묘한 기시감이 그제야 설명되는 것 같았다. 옛 서울이 궁금해 책을 펼쳤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작가 본인에게 큰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사진이 주는 힘인 것만 같다.

 

‘(...) 너무 헤프다. 너무 정확하다. 노력 없이 쉽게 얻은 이미지라 고귀함이 없다. 인간의 영혼이 안 보인다. 차갑고 냉정하다.’ 디지털 사진에 대한 작가 한대수의 평이다. 수많은 사진 작품을 보며 자라온 나에게 필름 사진 애호가들의 자부심은 익숙하나, <삶이라는 고통>이 내가 처음 읽는 필름 사진집이니만큼 이렇게 찍혀 나온 활자로 마주하는 건 처음이다. 당황스러웠지만 묘하게 기대감도 생겼다.

 

당신의 사진이 가질 생생함과 현장감이 기대됐다.

 

 

한대수_표1.jpg

 

 

 

1부: Ups and Downs


 

그의 사진에는 어딘가 투박한 구석이 있다. 예쁘게 연출된 핀터레스트 사진의 정반대다. 가장 즐겁게 읽은 부분은 역시 1부였는데, 사진에서 그의 희로애락이 가장 생생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때로는 두서없고 때로는 구도적으로 대단히 아름다운 사진들을 보고 있자니 즐거웠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뉴욕이라는 도시의, 나아가 미국이라는 나라의 역사에 그다지 일가견이 없다. 유명한 스타들의 이름은 알아도 그들을 시대에 맞춰 연관 지을 수는 없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나에게 뉴욕 입문서이기도 하다.

 

작가는 기억 속 뉴욕의 1960년대를 ‘그 어느 때보다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시대’라고 일컫는다. 온갖 문화가 퍼지고 또 만들어지던 시기의 사건들을 회상한다. 그런 그의 글에서 강한 끌림을 느꼈다. 나에게 까마득한 60년대를 그가 왜 ‘황금기’라고 불렀는지, 조금은 설득이 되었다. 이 시기 그의 사진에선 묘한 열기와 들뜸이 느껴졌다. 모두가 꿈을 꾸던 시기의 뉴욕이었다.

 

뉴욕에서의 밝은 사진과 다르게 한대수 작가의 60년대 서울은 조금 어두침침했다. 도로는 아스팔트로 포장되지 않아 질퍽거렸고, 버스는 신기한 구형이었다. 사람들의 얼굴엔 늘 그렇듯 웃음이 없었다. 낯선 이 도시의 과거를 찾아 바쁘게 눈을 굴리면서도 사진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우울함을 느꼈다.

 

뉴욕에서 한국으로 끌려오듯 돌아와 붕 떠 방황하던 그의 우울함이 나에게도 잠시 찾아온 것 같았다. 분명 이곳 또한 누군가 꿈꾸는 도시였을 테지만, 작가는 꿈을 꾸지 못했기 때문인가보다. 사진에 작가의 감정이 담긴 게 느껴졌다. 신기한 감각이었다. 내가 찍을 서울은 어떤 모습일까?

 

 

 

2부와 3부: i suffer therefore i am


 

‘삶이라는 고통’은 단지 작가 개인의 삶에 관한 제목이 아니다. 그는 늘어나는 노숙인들을 걱정하고, 거리로 내몰리는 음악인들을 찍어왔다. 그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을 계기로 ‘No Religion’이라는 노래를 만들었다는 것을 읽고서는 정말 놀랐다. 곧장 유튜브를 통해 노래를 들어봤는데, 가사가 익숙했다-책의 여백 면들에 적힌 말 중 하나였다!

 

it’s just a photograph

of ancient summer’s breeze

life’s a mirage

 

상당히 허무주의적인 가사가 취향은 아니었지만,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그 어떤 종교도 당신을 치유할 수 없다’라는 공감이 가는 가사를 담담히 노래하는 작가의 목소리가 매력적이다.

 

작가가 계속해서 사회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놀라운 까닭은 아마 내가 이 책에 기대한 것이 과거여서일 것이다. 과거의 사진을 모아둔 사진집에서, 작가 한대수는 끊임없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자살폭탄을 하는 테러리스트들을 언급한다. 그는 아마 이스라엘-하마스 분쟁도 주목하고 있을 것이다. 끔찍한 전쟁을 그만두고 평화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끊임없이 순간을 포착하는 사진작가다운 태도라고 생각했다.

 

이 순간을 과거에 남기려면 누구보다 더 열렬히 미래를 바라봐야만 했을 테다. 평화를 주창하는 글 뒤에 이어진 수많은 반전 시위의 사진들을 보며, 그가 지나온 시간의, 걸어온 행보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느껴보았다. 무거웠다.

 

 

 

다시 돌아올 과거, 새기며 나아갈 미래


 

감상을 쓰는 내내 No Religion을 반복 재생했다.

 

깊이 있는 사진들과 멋진 음악. 책 한 권으로 넘치게 많은 것들을 얻었다. 어쩌면 곧 나도 필름 카메라를 하나 장만할지도 모르겠다. 현상을 할 수 있는 곳도, 카메라를 사는 법도 모르지만, 막연히 그런 생각을 했다. 포착해 둔 순간을 매개로 시대의 향수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또다시 다른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달려갈 수 있다는 건 분명 근사할 일일 것이다.

 

가끔 서울이라는 도시에 살기가 팍팍할 때, 암담한 현실에 마음이 가라앉을 때 다시 이 사진집을 펼쳐봐야겠다. 바쁘지 않다면, 맥주나 와인 한 잔과 함께. 스마트폰을 끌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컬쳐리스트] 박주은.jpg

 

 

[박주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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