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시로 시작해 삶으로 끝나는 슈베르트의 음악 - 슈베르트, 겨울 여행 [공연]

오래도록 추억할 겨울
글 입력 2022.12.3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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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과 클래식.

 

두 단어는 내게 어렸을 적 피아노 학원에서 꽁꽁 언 두 손을 녹이려 난로를 쬐곤 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다. 작위적인 감정이 미처 다 생기지 못한 채로 음악을 대했던 시절이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낭만주의, 가곡의 왕, 슈베르트.

 

학창 시절에는 음악 시간을 참 좋아했다. 영문도 모르고 외던 수많은 음악가들과 용어들이 희미하게 남을지언정, 쉼과 여유가 충만함은 틀림없었던 시간이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2022.12.16.-12.31. 산울림 편지콘서트 슈베르트 포스터.jpg

 

 

슈베르트, 겨울 여행.

 

겨울의 문턱에서 떠나는 산울림의 음악 여행에 초대받았다. 그동안 어렵다는 핑계를 수도 없이 대 왔던 음악이, 극장에 들어서자마자 녹아내린 추위처럼 무턱대고 다시 다가가도 좋을 것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1.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 Op.162 "그랜드 2중주" (피아노&바이올린)

Sonata for Violin and Piano in A Major, Op.162, D.574 "Grand Duo" 1. Allegro Moderato 


2. 음악에 부쳐 (피아노&바이올린)

An die Musik, D.547 


3. 즉흥곡 op.90. no.3 (피아노)

Impromptu G flat major op. 90 no. 3 D. 899


4. 마왕 (테너/베이스&피아노)

Der Erlkönig, D.328 


5. 들장미 (테너/베이스&피아노)

Heidenröslein, D.257 


6.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테너/베이스&피아노)

Die schöne Müllerin, D.795 


7. 겨울 여행 - 1. 밤 인사 (테너/베이스&피아노)

Winterreise – 1. Gute Nacht, D.911


8. 겨울 여행 – 5. 보리수 (테너/베이스&피아노)

Winterreise – 5. Der Lindenbaum, D.911

 

9. 아베마리아 (피아노&바이올린)

Ave Maria, D.839


10. 세레나데 (피아노&바이올린)

Ständchen, D.889



익숙함으로 가득 찬 셋리스트를 받아 보고 나니 정확하지 않아도 괜찮을 기억들이 마음 주위를 맴돌았다. 근처에 살면서도 한 번도 방문해보지 않았던 곳에서, 뜻밖의 향수와 묘한 포근함을 마주했다.

 

설명 없이 시작된 피아노 왼손 반주는 마치 시간의 태엽을 감는 소리처럼 느껴졌고, 배우와 관객이 서로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을 만큼 작은 크기의 소극장 안은 마이크 없이도 금세 단단한 선율로 가득 채워졌다.


첫 번째 곡의 연주가 끝나고 다음 곡을 기다리며 모두가 숨죽이던 그때, 한 청년이 관객석 사이에서 쇼버의 시 〈음악에 부쳐〉를 읊으며 등장했다. 무척이나 들뜬 듯 보이던 그의 이름은 바로 슈베르트였다.

 

수년간 이어져 온 산울림 소극장의 〈편지 콘서트〉 시리즈는 음악가의 삶과 음악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도록 연주와 낭독이 담긴 연극을 통해 기억의 저편으로 멀어져가는 순간들을 붙잡아 보는 공연이다. 〈슈베르트, 겨울 여행〉은 프란츠 슈베르트가 그의 형 페르디난트 슈베르트와 주고받은 편지들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두 배우가 읊는 편지 속에는 가곡의 왕이라는 거창한 이명과는 달리 소박하고 연약했던 한 사람이 있었다. 오랫동안 딱딱한 넘버로만 명명돼왔던 클래식 음악에서 처음으로 사람이 보였다. 새삼 슈베르트의 음악을 꽤 많이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여태까지 그가 어떤 마음으로 곡을 썼을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보이고 나니 음악이 다르게 읽혔다. 시간이 지나고, 편지가 쌓여갈수록 다채로운 감정들도 음악 위에 겹겹이 쌓여 나갔다. 마왕에는 주체할 수 없는 흠모의 마음이, 들장미에는 휘몰아치는 연정의 마음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슈베르트의 곡 중에서 가장 좋아했던 아베마리아에는 죽어가던 슈베르트의 영혼이 안식을 바라는 마음이 겹쳐졌다.

 

그는 강한 의지의 소유자는 아니었을지라도, 최선을 다해 감정에 충실했다그의 음악은 세상에게 받은 시에 열과 성을 다해 썼던 답가였다. 그의 삶은 시로 인해 점차 선명해졌다. 그의 영혼과 소통하는 기분이 들어 이야기에 어우러지는 차분하고 부드러운 선율과 매섭게 휘몰아치는 거친 선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보았다. 오랜만에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음악에 모든 것을 바쳤던 그는 충만했던 동시에 쇠약하고 위태로웠다. 예술에 살고 예술에 죽는 것이 낭만이라면, 그것은 내가 앞으로도 평생동안 추구할 수 없을 아름다움일 것이다. 삶으로부터 다시 쓰여진 그의 편지로 인해 내 계절은 더욱 오래도록 겨울로 남을 것 같다.


그는 지금 어디쯤일까. 나는 다음 편지를 기다리고 있다.

 

 

 

컬쳐리스트_민정은.jpeg

 

 

[민정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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