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겨울 나그네 슈베르트 - 슈베르트, 겨울 여행

글 입력 2022.12.27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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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극장 산울림



연극보다는 영화파였던 나는 서울에 있는 독립영화관은 어느 정도 알고 여러 곳을 가보았지만 소극장은 거의 안 가 본 편이었다. 대학로에 극장이 많다는 것을 아는 정도였다. 그러나 아트인사이트 에디터가 되면서 문화초대의 기회로 여러 공연의 정보를 접하게 되고, 몇 곳의 소극장 관람 또한 경험하게 되었다. 그런 내게도 소극장 산울림은 이름이 익숙한 곳이었는데, 내가 입시를 하던 시절부터 소극장 산울림 근처를 지날 일이 여럿 있었기 때문이다. 홍대와 신촌 어간의 터주대감 같은 극장인 줄은 알았으나 이곳의 역사와 배경은 이번 기회에 알게 되었다. 


 

창단 53년 역사의 극단 산울림 전용 극장으로, 1985년 3월 개관하여 아직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35년이 넘도록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며 좋은 무대만을 고집해온 극장입니다. 공연예술 전 분야를 통해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무대를 추구하는 복합문화공간입니다.

 


 귀에 익지만 막상 들어가 연극을 본 적은 없었던 극장으로의 초대라니. 나는 살짝 들뜬 마음으로 극장 앞 작은 부스에서 표를 받고 무대가 있는 지하로 계단을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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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 편지콘서트



예술가가 자기 형제와 주고받은 편지 중에서 단연 유명한 것은 빈센트 반 고흐가 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그 수많은 편지들일 테다. 빈센트와 테오 형제의 사후, 테오의 아내 요한나 봉허가 남편의 유품을 정리하다 그 편지들을 발견하여 읽고 묶어 정리했다. 요한나는 편지를 정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형제의 편지를 영어로 번역하여 책으로 출간했다. 이로 인해 빈센트 반 고흐라는, 살아생전 불운했던 화가의 예술이 새로이 주목을 받게 되었고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까지 불후의 화가로 알려지게 되었다. 

 

만약 요한나가 두 형제의 편지를 모아 번역하지 않았다면, 빈센트와 테오가 자기들이 주고받은 편지를 잘 보관해두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어쩌면 우리는 빈센트 반 고흐라는 화가와 그의 그림은 물론이고 그와 테오의 특별한 형제애까지 잘 알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처럼 예술가의 편지는 한 예술가의 존재를 알리기도 한다. 

 

다시 말해 예술가의 편지는 한 예술가의 예술관과 삶에 대한 고민, 그가 어떤 예술가들과 교류하고 가족과의 사이는 어떠하였는지, 언제 어디서 무슨 고민을 하며 지냈는지를 알려주는 훌륭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소극장 산울림 역시 예술가의 편지라는 요소에서 흥미로운 가능성을 보았다. 이미 소극장 산울림에서는 2019년에 차이코프스키의 편지콘서트를, 그리고 2020년과 2021년에 드보르작의 편지콘서트를 기획하여 공연했다. 


 

연극과 음악을 통해 음악가의 삶을 새로 조명하는, 라이브로 펼쳐지는 편지와 음악의 하모니.


소극장 산울림은 다양한 시도와 변화를 통해 관객들과 새로운 모습으로 만나고 있습니다. 산울림 <편지콘서트>는 낭독과 라이브 연주를 통해 관객들이 음악가의 삶과 음악을 새롭게 이해하고, 기억의 저편으로 멀어져가고 있는 소중한 순간들을 다시금 체험할 수 있는 공연입니다.

 


관람 전까지 ‘편지콘서트’가 무엇인지 바로 와닿지 않았으나 공연을 관람하며 왜 편지콘서트라는 말을 쓰는지 알 수 있었다. ‘편지콘서트’란 음악가가 생전 주고받은 편지의 내용을 기반으로 배우들이 연기를, 그리고 해당 편지를 쓴 시기 즈음 작업한 곡을 현장에서 연주자들이 연주를 하거나 성악가가 가곡을 불러주는 형태로 진행된다.

 

이번 겨울에 막을 올린 <슈베르트, 겨울여행>은 음악가 프란츠 슈베르트가 그의 형 페르디난트 슈베르트와 주고받은 편지들을 중심으로 하여 프란츠 슈베르트의 개인사와 작업기, 그리고 그의 아름다운 음악을 담아냈다.

   

 

 

겨울 나그네 슈베르트


 

<슈베르트, 겨울 여행>은 무대와 객석의 거리, 특히 객석 맨 앞줄과의 거리가 조금 과장을 보태면 코앞인 공간에서 진행되었다. 공연 관계자들은 무대와 객석이 가깝다는 이점을 잘 활용하였는데, 예를 들면 주인공인 프란츠 슈베르트의 객석에서의 첫 등장이 그러했다. 배우의 연기 호흡이 바로 느껴지는 거리감은 생생함을 배가시켰다.

 

슈베르트의 삶을 소재로 한 이 편지콘서트는 프란츠 슈베르트와 페르디난트 슈베르트를 연기하는 두 명의 배우와 바이올리니스트, 피아니스트, 그리고 성악가가 이끌었다. 무대의 왼편은 주로 프란츠 슈베르트의 공간으로 프란츠가 편지를 쓰고 작곡을 하는 책상이 놓여 있고, 무대의 오른편에는 이 공연의 해설자 역할을 겸하는 형 페르디난트가 앉는 벤치와 우편함이 있었다. 가운데 공간에는 피아노 한 대가 있어 그곳이 연주와 성악 등 콘서트의 공간이 되었고, 음악이 울려퍼지지 않는 동안은 물론 연극의 공간도 되었다. 피아노 뒤편에는 연주될 곡의 이름과 가사 등을 보여주는 스크린이 걸려 있어 외국어 예술가곡의 감상을 더욱 용이하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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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은 형 페르디난트가 동생 프란츠의 생을 회고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모차르트처럼 명성을 추구하거나 베토벤처럼 운명에 맞설 강한 의지를’ 가지지 않은 내성적이고 유약한 프란츠 슈베르트는 이 세상에서 31년이라는 짧은 생애를 살다 갔다. 페르디난트는 그러나 슈베르트에게는 자신의 슬픔과 고독을 펼쳐낼 음악이 있었고 독일 낭만주의 시인들에게서 ‘자신의 영혼과 소통하는 언어를 발견’했다며 동생 프란츠의 예술관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특히 그는 독일 낭만주의 시인 뮐러의 시에 크게 감명받아, 뮐러의 시를 가사로 삼아 곡을 만들었다. 그가 지은 수많은 예술가곡은 슈베르티아데에서 연주되었다. 슈베르티아데는 ‘슈베르트와 그의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함께 했던 작은 음악회’를 의미한다. 슈베르티아데에서 발표되었던 예술가곡에는 분위기가 밝은 것에서부터 어둡고 예술가 내면의 침잠과 절망을 보이는 것까지 다양했는데, 슈베르트 인생의 말년으로 갈수록 후자의 경향이 짙어졌다고 한다.

 

물론 슈베르트에게는 음악과 사교의 밤을 열던 예술적 친우이자 지지자들이 있었지만, 슈베르트 인생의 어둠과 외로움을 그들이 모두 보듬어줄 수는 없는 것이었다. 슈베르트는 동시대 위대한 음악가였던 베토벤을 존경했고 문학가 괴테를 흠모했다. 페르디난트의 해설에 따르면 베토벤과 괴테의 시에 대한 헌정곡, 편지 등을 썼으나 그것은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하거나 거장의 눈에 늦게 들고는 했다. 음악가로서 안정적인 직업을 갖지 못하고, 자신이 흠모하는 예술가로부터 주목받지 못한 경험은 내성적인 성격의 슈베르트를 움츠러들게 했고 우울감에 잠기게 했다. 그의 나이 30세에 작곡한 가곡 <겨울 나그네>는 슈베르트가 가난과 고독 속에서 겪은 고통이 배어있는 듯하다.

 

편지콘서트 <슈베르트, 겨울 여행>은 슈베르트의 인생을 순차적으로 전달하기 때문에 그의 처지나 상황이 어떠했을 때 어떤 음악이 작곡되었는가를 선명하게 와닿게 했다. 젊은 음악가로서의 포부와 음악에 대한 순수한 사랑으로 벅차오르는 가슴을 갖고 있던 프란츠 슈베르트. 그런 그가 인생의 겨울을 맞는 과정과 봄을 다시 맞을 희망 없이 생명이 사그라드는 모습을 보며 나는 나와 다른 시간대를 살다 간 창작자에게 연민을 느꼈다. 나와는 먼 공간, 먼 시간에 있던 그 역시 자칫하면 허망하게 흘러가는 인생사 속에서 어떻게든 의미를 남기려고 발버둥치는 또 한 명의 인간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이미 생을 다한 누군가의, 시간이 가면 변하고 사라지기 마련이라는 현실 속에서 뭔가를 이처럼 열심히 만들어 냈던 누군가의 인생을 몰아보는 경험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 깊은 곳 고독을 다시 확인하게 하여 헛헛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한 인간이 인생의 봄을 다시 맞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고 해서 그의 생을 아프게만 볼 수 있을까. 우리에게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시간 사이에서 그의 계절은 몇 번을 반복해 돌았을 것이고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이 그에게 각각 가져다 준 기쁨과 슬픔은 함부로 속단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그가 남겨둔 것을 알아가고 소중히 대할 수는 있을 테다. 가곡의 왕 프란츠 슈베르트의 음악은 여전히 남아 그를 기리는 음악회에서, 그를 소재로 한 공연에서 연주되고, 더 가깝게는 클래식 음반과 유튜브의 클래식 음악 플레이리스트에서 재생되고 있다. 슈베르트를 아끼고 알아가는 이들에 의해 슈베르티아데는 계속 열리고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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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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