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군인에게 추천하는 고전소설 두 가지 [도서/문학]

고전에서 찾는 극한 상황 속 인간
글 입력 2022.12.02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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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군을 다녀왔다.

 

쌀쌀한 새벽에 일어나 예비군 훈련장에 나갈 채비를 갖췄다. 먼지 묻은 군복은 왜이리 뻣뻣하고 부스럭거리는지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몸의 온기와 활력이 사라지는 감각 때문에 몸서리가 쳐진다.

 

훈련장에 도착하니 나와 비슷한 몰골의 남자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모두 힘없이 비틀거리며 훈련장으로 걸어가는데 그 모습이 마치 초록색 팽귄 같았다.

 

예비군 훈련에 들어가기 앞서 조교들이 사람들에게 번호를 부여하고 여럿 묶어 나누며 조를 짠다. 그리고 목동은 초록 팽귄을 몰아 다음 목초지로 이동한다.

 

군화를 질질 끌며 걸어가는 예비군의 군복은 피로와 무료와 은은한 분노로 듬뿍 젖어 무겁게 축 쳐져있다.

 

훈련 받을 차례를 기다리면서 우리는 모두 같은 생각을 했다. 나는 왜 이곳에 있는가. 그리고 내 머릿속에 신병 훈련소의 기억이 구깃구깃하게 떠올랐다. 무의미한 행위로 보내는 인내와 감시의 시간. 그리고 실존의 위기라는 철학적 사유를 강제하는 신비한 공간.

 

누군가는 분명 군대 또는 자유가 제약되고 시간을 견뎌야하는 공간에 대해 글을 썼을 것이라 생각한 나는 고전에서 그 답을 찾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찾은 고전소설을 소개한다.

 

 

 

등떠밀려 끌려와 군대에서 살아가는 병사의 삶 - <서부전선 이상없다>



징집된 군인의 삶은 만국공통일까.

 

작가의 제 1차 세계대전 참전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서부전선 이상없다>는 주인공의 병영생활을 세밀하게 묘사하고있다. 그리고 그 일상적 모습이 현대 한국군과 다를게 없다는게 충격적이다.

 

근무시간에 요령것 농땡이 피우며 담배와 소일거리로 시간을 때우는 모습. 신병 앞에서 두 손을 주머니에 푹 찔러 넣고 거들먹거리는 모습. 내무반을 집이라 부르고 부대에 갓 발령된 장교를 상대로 병장이 개기는 모습까지 우리나라 병사와 겹치는 부분이 많다.

 

주인공이 군대에서 느끼는 감상 또한 인상깊다. 과연 군생활이 끝나는 날이 오기는 할지, 끝난다면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사회보다 군대가 더 마음이 놓이는 괴리감은 대체 무엇인지 고뇌한다.

 

한 세기의 시간을 가로질러 작가가 전달하는 군인의 삶은 21세기에도 그닥 변하지 않았다. 그 삶이 변해야 하는지 아니면 변하지 않는 것이 그것의 속성인지는 아직도 답을 내리기 어려운 질문인지도 모르겠다.


 

 

부자유와 감시의 삶에서 적응하는 인간 -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인간은 적응의 생물이라 하던가.

 

극단적으로 통제된 삶에서 조차 인간은 적응하고 감시를 벗어난 사생활을 구축한다. 군인들 또한 마찬가지로 사회와 동떨어진 법칙을 가진 군대에서 그들만의 생활방식을 만든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역시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인 소설이다. 작가 솔제니친은 스탈린을 비방하는 편지가 발각되어 노동수용소인 굴라그로 끌려갔다. 그 속에서 직접 보고 겪은 체험은 강제적으로 집단생활을 하게된 사람들이라면 모두 공감할 내용으로 가득하다.

 

수용소는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수감자들을 노역에 동원한다. 제공되는 음식은 부실하기 짝이 없고 의무실의 의무관은 아픈 사람이 와도 진찰은 고사하고 노역장으로 돌려보내기 일쑤다.

 

간수는 수감자의 인원수에 기이하게 집착하고 수감자들은 저녁식사 이후 제공되는 짧은 자유시간만 기다린다. 수용소로 돌아간 수감자들은 간수의 눈을 피해 물물거래를 하거나 줄을 대신 서 주는 등 그들만의 경제 속에서 살아간다.

 

환자가 와도 무시하는 의무관, 병사 줄세우기에 진심인 간부, 부실한 병영식, 무의미한 노동과 간절히 기다려지는 찰나의 자유시간. 옛날, 이역만리 떨어진 러시아 땅에서 힘들게 살던 사람들의 모습이 기억 속에 생생히 그려지는 이유는 그것이 한국 군인이 살아가는 모습과 슬프게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비인간적인 상황 속에서도 역동하는 삶의 의지 또한 보여준다. 역력한 통제에 할 수 있는 최대한 저항하며 살아가는 수감자의 모습 또한 군인의 그것과 닮지 아니한가. 집단의 제도가 인간성을 지우려고 아무리 용을 써도 사람은 지울 수 없는 것이다.

 

*


아득한 과거, 먼 타국에도 당신들과 같은 마음을 느낀 사람들이 함께 공감한다는 사실이 그대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어주길 바랄 뿐이다.

 

 

[박형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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