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친절한 현대 예술이 좋다 [미술/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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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흥미로운 전시가 이뤄지고 있다. 현대 예술은 불친절한 줄로만 알았는데, 그 어느 곳보다도 친절한 현대 예술이 관람객을 마주하고, 안내하며, 배웅한다.
OBBA, The Cave, 2022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은 2013년부터 ‘에이피 맵(apmap)’ 프로젝트를 통해 젊은 작가들을 발굴 및 지원해왔다.
해당 프로젝트를 통해 작가들은 자신의 작업을 더 확장해 나가게 되었고, 동시에 야외 전시 프로젝트로 진행해오면서 대중에게 ‘공공 미술’의 접근성을 높이는 프로젝트가 되기도 하였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에이피 맵 리뷰’는 2013년부터 2019년까지의 에이피 맵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22팀의 작가들의 작품을 야외에서 내부로 이끌어온다. 작가들은 기존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최근의 고민을 담은 작품을 아모레퍼시픽미술관과 어우러지도록 새로이 제작하게 된다.
가장 최근의 고민을 담아서일까? ‘동시대성’의 생생함과 현장감이 몸소 느껴졌다.
그 중 기억에 남는 작품은 우주+림희영의
이다. 작가는 평범한 일상 속의 소리에서 인간다움을 발견하고, 그러한 소리를 플라스틱 쓰레기 위에 기록한다. 인류는 나날이 심화하여가는 환경 문제를 마주하고 있고, 이러한 상황에서 과연 미래의 존재들에게 인류가 남겨야 할 흔적은 무엇일지 고민한다. 우주+림희영, Song from Plastic, 2022
매일 같이 머리카락을 흘리고 쓰레기를 남기는 나에게, 진정한 나다운 흔적은 무엇일지, 정말 버려지는 것들로만 흔적을 남기는 것이 맞을지 고민하던 나에게 정말 공감이 되었던 작품이다.
어쩌면 환경 문제를 인간의 ‘환경 파괴’가 아닌, ‘인간다움의 흔적’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 그 어느 것보다도 사랑스럽고 다정한 시선이 담긴 작품일 수도 있겠다.
이 외에도 자녀의 탄생이나 유년 시절의 기억 등 자전적인 경험, AI, 일상과 같이 다양한 주제에 대한 관심을 기반으로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을 재해석한 작품들이 가득했다.
내가 이 전시에 흠뻑 빠져 관람했다는 것을 느낀 데에는 생생한 고민과 경험에 기반한 작품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작가들이 그러한 고민을 자신의 목소리로, 친절한 단어들로, 적절한 빠르기로 녹음한 도슨트가 있었다.
각 작품 하나하나에 작가들의 목소리가 녹아들어 있다. 도슨트를 들으면서, 또 듣지 않으면서 두 번에 걸쳐 감상하게 되면 작품에 자연스럽게 젖어 들게 되어있다.
그 누구보다 작품을 잘 이해하는 사람인 작가가 그들의 온도로 관람객에게 가장 가까이서 전달하고 있다.
윤민섭, 밤을 위한 무곡, 2022
좋은 레스토랑에서 셰프에게 요리와 재료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듣고 향을 음미하며 맛을 느끼고 목 넘김까지 경험하면 그야말로 최고의 경험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에이피 맵 리뷰도 마찬가지다. 작품의 제작 의도, 작가의 가장 최근의 고민, 재료 선택, 제작 방식, 관람 포인트 등 간결하면서도 직관적인, 즉 ‘친절한’ 언어는 관람 경험을 더 고차원적으로 만드는 지름길이다.
전시장에 입장하기 전, 전용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한 후 와이파이에 연결하면 전시장에서만 들을 수 있는 도슨트가 흘러나온다. 각 작가의 이름을 터치하면 도슨트가 나오고, 다 들은 작가의 탭은 흐리게 보여 헷갈리지 않고 순서대로 관람할 수 있었다.
또한, 이는 전시 관람 진행 정도를 확인하는 기능을 하기도 해서 관람 속도 조절 및 에너지 안배에도 도움이 되었다. 애플리케이션을 최적으로 활용한 전시 중 하나로 평가받을 수 있지 않을까.
[장민경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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