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나잇값이요?

후회는 언제나 늦고,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글 입력 2022.11.04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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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정리를 하다가 귀여운 원피스를 발견했다.

 

한동안 입지 않았으니까 버릴까? 하는 생각보다 이제 이런 건 입기 좀 그러려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나잇값 같은 건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튀어나온 원피스 한 벌에 반대되는 생각을 하다니 나 자신에게 조금 놀랐다. 1년 만에 마주한 옷과의 낯가림이었을까.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가만 생각해 보니 우스웠다.

 

내 옷장에 걸려있는 옷 중에 소위 말하는 나잇값 못한다는 소릴 들을만한 게 수두룩한데 겨우 원피스 하나에 이런 생각을 하다니 말이다. 이른 가을에 세일러 원피스를 입고 나갔다가 친구에게 '동년배 중에 세일러가 제일 잘 어울린다'라는 소리를 듣고 기분이 좋아서 따로 기록해뒀는데 말이다.


나이가 많아서 할 수 없는 건 키즈모델밖에 없다는 말을 좋아한다. 나이에 따라 어떤 옷을 입어야 하고 어떤 브랜드 제품을 사야 하고 어떤 걸 좋아해야 한다는 누가 만들었는지 모를 기준에 의무감을 느끼며 따라갈 필요는 없다.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행동을 하는 이유가 '남들이 다 그러니까'라면 어쩔 수 없다. 본인이 다수와 같은 행동을 함으로써 소속감을 느끼고 심리적으로 안정된다면 그 사람에게는 그게 답이다. 다만 주관이 없이 누가 그렇다고 하니까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리기엔 남은 날 중 가장 어리고 젊은 오늘이 아깝다.

 

후회는 언제나 늦고,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


다만 그런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어려 보이려는 의도는 없지만 결과적으로는 나이보다 어려 보인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다. 어른이 어려 보이는 스타일을 좋아하는데 무감각해도 되는 걸까.


어려 보이고자 귀여운 걸 좋아하는 건 아니다. 오랜 시간을 들여 차곡차곡 쌓아올린 취향이다. 조각 케이크 상자 모양의 가방 속에 죠르디 카드지갑과 리락쿠마 파우치를 넣어 다닌다.

 

핸드폰 케이스에는 사탕 같은 별이 무지개색으로 쪼르르 달려있다. 인형이나 캐릭터 용품을 선물해 주는 주변인과 어디서 인형을 받아와도 그러려니 하는 가족을 가지고 있다. 가족과 친구들 속에서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다.


따지자면 나이 들어서도 개의치 않고 귀여운 걸 좋아하는 어른이라는 지금의 나에 만족한다. 그러니 30대가 되었단 이유만으로 스타일을 바꿀 생각이 없다. 영혼을 갈아치우지 않는 이상 힘들 것 같다.

 

철이 없다고 해도 상관없다, 나잇값을 못한다는 말은 감사하다.

 

'어려 보이면 남들이 만만하게 생각한다'라고 하는데 날 때부터 만만해 보이는 인상으로 사이비 길거리 전도 대상으로 낙점되었고 길거리에서 어리숙한 사람에게 사기 치려는 사람들한테도 붙잡혀봤다.

 

그러니 염려 대신 어려 보인다고 남을 만만하게 보는 사람을 대신 욕해주면 고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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