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물고기야, 거기 있니? 내 이야기 좀 들어줄래? - 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

나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
글 입력 2022.10.24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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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있습니다

 

 

01.



판옌중은 인터넷을 뒤져 정황이 유사한 사건을 서너 건 찾아냈고, 곧 포기했다. 의미 없는 일이었다. 그 사건들은 각기 단일한 사건이 아니라 '현상'에 가까웠다. 과거이고 현재이며 미래였다. -303쪽


노래방에 가면 화장실 벽에 뚫려 있는 수많은 구멍을 당연하게 여겼었다. 원래 노래방 화장실은, 상가에 있는 공중 화장실 벽은 다 그렇게 생겼으니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몰카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루어지면서 그 구멍들에 카메라가 있을 수 있음을 알게 되자 불안함이 나에게 찾아왔다. 그리고 그 맘때부터 화장실 벽에 있는 수많은 구멍에 일일이 휴지가 꽂혀 있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밖에 놀러가서 누군가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이야기하면 다들 몰카에 대한 불안함을 토로했다.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 감기가 걸린 게 아니면 마스크를 잘 쓰지 않았던 때, 우리는 편의점에서 마스크를 하나씩 구매했다. 하루종일 밖에서 놀았던 탓에 화장실에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공중 화장실보다는 카페나 패스트푸드점 화장실을 찾았다. 그곳은 벽에 구멍이 뚫려 있을 확률이 적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다들 화장실에 가기를 꺼려 했다. 그런 날은 하루만, 혹은 어느 특정 기간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현재 진행형이다. 일상이다.

 

 


02.



나는 어느 누구도 해치지 않았는데. -349쪽

물고기야, 거기 있니? 내 이야기 좀 들어줄래? -432쪽

두려웠다. 계획은 너무 컸고, 그들은 너무 작았다. -432쪽

 

미투(#MeToo) 운동은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고백하는 발판이 되었다. 권력에 눌려 있어 밝혀지지 않았던 가해 사실이 드러나면서 수많은 업계에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 운동은 학교로도 퍼져 교사들의 성폭력 가해 사실을 고발하는 스쿨미투로도 퍼져나갔다.


우리 학교에도 물결이 흘러왔다. 교직원들 중 한 명의 언행이 문제시되었다. 나는 직접 겪은 일은 없었지만 그 남성 직원으로부터 성적으로 불쾌한 말을 들은 친구들이 꽤 있었다. 경찰이 종이를 나누어주며 그 사람에 대해 자신이 들은 일, 겪은 일이 있으면 적으라고 했다. 나는 그저 친구들에게 들은 말 몇 자를 끄적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 사람은 이제 해고되는 건가?

 

그 사람은 한동안 자리를 비우는 것으로 처리되었다. 솔직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해고되었다는 소식이 안 들리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다. 다시 돌아올 수도 있다는 말인가? 다시 돌아오면? 여자 아이들만 가득한 이 학교에 또다시 그 사람이 돌아오면 나보다 어린 그 여자 아이들은 또 어떡하라는 거지? 짜증이 났다.


윤리 선생님이 있었다. 남자였다. 위에 서술한 그 직원과 거의 동시에 일이 있었다. 그 선생님은 반마다 자신이 어떠한 말을 했는지, 그리고 그 부분이 어떻게 문제가 될 수 있는지 알았다, 이에 여러분에게 사과한다며 정말 말 그대로 고개를 숙여 우리에게 사과했다.

 

긍정적인 감정을 느꼈다. 직접 우리에게 사과를 하고 자신이 앞으로 발전할 것임을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발전이라고 생각했다. 졸업한 뒤 숏컷을 한 친구와 함께 학교에 찾아간 적이 있다. 그 선생님을 만났다. 숏컷을 한 친구에게 너도 페미 그런 거 하는 거 아니지? 하고 갑자기 일장연설을 시작했다. 몇 년 간 그 선생님에 대해 가지고 있던 자그마한 희망을 버리기로 결정했다.


학생에게 선생은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집보다 더 오래 있는 공간의 선생은 학생에게 수업을 가르치는 사람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원하지 않아도 학생은 그런 환경에 놓일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아무런 보호 장치 없이 그러한 환경에 놓인다.

 

 

 

03.



"코끼리는 건조한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간다. 그들은 놀라울 만큼 기억력이 좋은데, 어떤 코끼리는 십 몇 년 전에 지나갔던 수원水源을 기억했다가 나중에 갈증에 시달리는 무리를 이끌고 그곳을 찾아가기도 한다. 그러니 코끼리는 자신에게 가해진 폭력을 영원히 잊지 않는다." 이 문장을 마지막으로 읽고 나서 오드리는 휴지를 뽑아 눈물을 닦았다. (···) 코끼리와 오드리는 다르지 않았다. -180쪽


자꾸만 나의 중고등학생 시절의 이야기를 꺼내게 되는 것은 이 소설 속 '피해자'들이 그 또래의 아이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고양이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도 스스로 그루밍을 하고 어떤 동물들은 태어난 지 몇 분 만에 뛰어다니기도 하던데, 사람은 그렇지 않다.

 

체온을 유지할 수 있도록 옷을 입혀주어야 하고, 배가 고프다고 하면 밥을 줘야 하고, 배변 활동을 하면 뒤처리까지 해줘야 한다. 사람은 참으로 까다롭기 때문에 기본적인 생존을 위한 것 외에도 신경써야 할 것들이 많다. 어른에게는 존댓말을 써야 하는 것, 돈 계산을 하는 법, 공공장소에서는 조용하게 해야 하는 것.


성인들은 아이를 성인이 되는 중인 작은 성인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아이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인격체다. 음식이 맵다는 아기에게 이게 뭐가 매워, 다리가 너무 아파서 걷기 힘들다는 아기에게 조금밖에 안 걸었잖아, 따위의 말은 참으로 모순이다.

 

10cm의 단차는 성인들에게 조그만 장애물에 불과하지만 약 100cm의 키를 가진 4세 아기에게는 엄청난 높이일 것이다. 성인에게는 아이들의 일을 별 것 아닌 일로 치부할 권리가, 사회적 약자인 그들의 위치를 이용해 그들의 권리를 빼앗을 권리가 없다. 오히려 아직 성장하는 과정에 있는, 배워가는 중의 아이들이니 더욱 신경쓰고 살펴야 할 의무만이 존재한다.

 

 

 

04.


 

하지만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판옌중은 불안한 심정으로 생각했다. 신핑이 '정상적인 모습'을 되찾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 너무 짧았다······. -300쪽

 

판옌중도 성폭력 가해자들을 여럿 만나보았다. 그들을 만날수록 깨닫게 되는 한 사람이 가해자가 되느냐 피해자가 되느냐는 그들 자신이 결정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전혀 뉘우치지 않는' 강간범들을 많이 보았다. (···) 판옌중은 그들에게 '당신은 후회하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말을 주입시켜야만 했다. -3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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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성폭력을 다룬 기사들에 삽입된 그림이 어땠는지 생각해보면 무기력하게 있는 여성과 그를 향한 그림자가 가장 대표적으로 떠오른다. 성폭력 피해자들은 피해자다움을 강요받는다. 무기력하고 슬프고, 두렵고 아무것도 하지 못 하는 상태가 요구된다. 그들은 성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에 절망을 느껴야 하며 가해자를 두려워하고 그들에 대한 분노를 가져야 한다.


우신핑은 이 소설 속에서 쑹화이구를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한다. 하지만 우신핑은 성폭력 피해자로 보이지 않는 탓에, 그리고 합의금을 받을 즈음 진술을 번복했다는 점에서 무고한 쑹화이구를 합의금을 노리고 가해자로 지목했다는 비난을 받는다.


성폭력 피해자는 개인이다. 결코 집단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성폭력 피해자'라는 집단으로 묶여 성폭력 피해자가 아닌 사람들이 정해놓은 특징을 충족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이들로부터 그들 자신이 피해자임을 '인정'받을 수 있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쑹화이쉬안은 성폭력 피해자이면서도 다른 면에서는 가해를 저지르고 있다. 타인을 살해하고 감금하기도 했다. 우신핑은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고백한 이후 합의금을 받고는 진술을 번복했다. 그리고 그는 사실 성폭행이 아닌 성추행을 당했을 뿐이었다. 그가 진술한 피해 사실보다 그 범위가 줄어드는 것이다. 나는 이 장면들에서 글을 읽어 내려가다가 멈칫했다. 그들은 모두 성폭력의 피해자이다.

 

그런데 이러한 서술을 해도 되는 것일까? 우선 의문을 넣어두고 책의 끝에 도달했을 때서야 알았다. 나 또한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하고 있던 것이다. 피해자는 과연 항상 완전무결해야 하는가? 그들은 항상 선하며 다른 범죄를 저질러서는 안 되는가? 그렇지 않다.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쑹화이쉬안이 안타까워 마음이 아파 한참을 가만 있을 수밖에는 없었다.

 

 

 

05.


 

나는 서른 살이 넘은 후에야 여성이 사회에서 '서술자의 자격'이라는 면에서 심각한 불평등 상태에 놓여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어떤 여자의 성격이 순진하고 선량하다고 해서 그녀가 반드시 무고하지는 않다.

 

원고를 마지막으로 교정하면서 별것 아닌 장면에서 눈물이 흘렀다.

 

나는 소녀들이 동화의 마지막 장면을 향유하기를 바란다. 소녀들이 가진, 너무 작아서 슬플 정도인 패 중에서 어떻게든 감동적이고 좋은 이야기를 키워내길 바란다. 우리는 각자 자기 인생의 '첫 번째 독자'다. 우리는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 나 자신에게 들려주어야 한다.


- 작가 후기 中

 

 

 

민시은.jpg

 

 

[민시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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