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스스로, 호명

상담에서 일어난 일
글 입력 2022.10.23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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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은 언제쯤 그만할 수 있을까. 과연 삶이란 어떤 모양인지, 무슨 안경을 끼고 바라볼 수 있는지, 얼마나 다양한 감촉을 느낄 수 있는지. 이제는 너무 상투적이기까지 한 표현을 어김없이 글의 첫 자리에 내놓는다.


쉽사리 시작과 도전을 하지 못하는 나에겐 삶을 향한 질문이 더 크고 막연하게만 다가온다.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터놓고 말하지도 못하는 이 딱하고 모난 성격이란. 속에서 흘러넘치는 것들을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쯤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은 혼자도 쏟아낼 수 있는 말이었다. 글은 훌륭한 친구가 되었다. 내 손을 잡고 이전엔 상상해보지 못했던 이리 저리를 산책시켜주며 콧바람을 쐬게 해주었다.


하지만 잊고 있었다. 나에겐 손 말고도 입이라는 소통 창구가 하나 더 있다. 소통보단 고해의 목적으로 글 대부분을 썼기 때문에 손을 통해 한 말은 어딘가로 날아가기도 했지만 내 속으로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 비워지는 듯했으나 어느 순간 다시 무언가가 쌓여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결국 바로 눈앞에 마주한 대상에게 직접 가닿아야지만 털어지는 종류의 언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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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 달 전 인생 처음으로 상담센터에 상담 신청을 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렇게 심각한 것은 아닌 것 같아서, 난 괜찮다고 애써 생각하고 싶은 마음에 미뤄왔던 상담을 ‘과감히’ 신청했다. 각종 사전 검사를 시행하고 드디어 첫 면담. 상담사를 배정받기 위해 나의 기본적인 정보를 파악하는 사전상담이 1시간 정도 진행됐다.


‘어떤 것 때문에 찾아오셨을까요?’


세상에 이렇게 막연하고 어려운 질문이 있을까? 그러게나, 나는 무엇을 위해 이곳을 찾아왔을까. 인생에 물꼬를 트고 싶다고, 모든 게 얽혀있어 도저히 어떻게 풀고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막연한 대답을 한다. 상담사는 두루뭉술한 내 언어를 노련하게 하나씩 해체한다. 그중엔 가족 문제도 있고 진로 문제도 있다. 내가 어떠한 사람인지에 대한 것도.


하지만 역시 두루뭉술하다. 상담사도, 나도 그것을 알고 있다. 상담사는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내 단단한 껍질 속을 비춰보기 위해. 나는 순간적으로 생각한다. ‘이걸 말해 말아, 이것까지 보여줘 말아.’ 말하는 와중에도 팽팽한 줄다리기를 한다. 그러나 이내 내 연한 속살을 보이지 않으면, 이곳에서조차 꺼내놓지 못하면 안 될 것 같다고 서서히 느낀다. 그렇게 나는 얼버무리며 백기를 든다. 상담사는 놓치지 않는다.


입으로는 절대 내뱉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말을 스스로 밀어내 상대에게 건넨 그 순간, 나의 입은 시키지 않은 말까지 쏟아낸다. 나는 쉬지 않고 입을 놀리며 명확히 느낀다. 이것이 나를 감싸고 있던 단단한 껍질이었다는 것을. 속으로, 손으로 그렇게 외쳤던 것이, 이제는 익숙하다고 생각하던 그것이 바로 껍데기였다.


말을 충분히 쏟아냈지만, 상담을 마치고 나오는 길은 마냥 후련하지 않았다. 이전에 나는 어떤 고민과 생각을 하고 있더라도 교묘하게 외면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니까, 어떤 고민은 분명 있으나 말하기 전까지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완전히 아니지도, 완전히 그러하지도 않은 어중간한 지점이 나를 가장 편하게 만들어주었기에.

 

하지만 그 순간부터 나는 스스로를 ‘그런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무엇이 된 나는 이전과 같아질 수 없을 것이다. 어쨌든 난 그 순간 처음으로 ‘그런 사람’이 되었다. (두루뭉술한가, 하지만 여기서는 명확히 밝힐 수 없음을 이해해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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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돌 이후 변화와 혼돈의 시기를 겪고 있다. 아직 다음 상담을 받지는 못했지만 스스로 솔루션 하나를 내렸다. 내가 원하는 가치를 현재 속해있는 관계에서 충분히 실현하고 충족하지 못한다면 결국 새로운 커뮤니티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 수많은 욕망의 결을 수놓기 위해선 당연한 진리다. 한 사람이, 몇몇 사람이 누군가가 가진 기대의 총체를 다 채워줄 수는 없다.


그래서 좁은 관계를 선호하는 것과 필요한 관계를 찾아 떠나는 것은 상충하는 개념이 아니다. 새로워지는 나의 욕구를 투영할 수 없는 ‘좁은’ 관계에만 고여 버릴 때 자아는 생기를 잃어버린다. 그렇게 푸석해지는 자아에게 무언 갈 기대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나는 천천히 새로운 사람과 커뮤니티를 찾아 나가는 연습을 하고 있다.

 

먼저 두루뭉술하게, 좋아하는 작가의 북 토크에 찾아가고 오래 팔로업 하던 셀럽의 오프라인 행사에 참여한다. 그곳에서 비슷한 욕망을 가진 이들의 존재를 두 눈으로 보고 함께 공기를 나누고 어깨를 나란히 한다. 그런 감각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 나를 0부터 소개하고 표현하고 만들어가는 법에 대해 배우고 있다. 새로운 동료와 이웃들과 잔잔히 오래도록 소통할 수 있기 위해.


지금 정체되어있다고 생각한다면, 어떤 종류든 새로움을 선물해보면 어떨까 의견을 건네 본다. 물론 아직 무엇 하나 풀린 매듭은 없다. 여전히 삶은 잔잔하고 막연할 뿐이다. 그러나 다른 위치에 있다는 감각만큼은 분명하다. 그렇게 조금씩 발을 떼어보고 있다는 새로운 감촉이 있다. 그렇게 시작해보아도 될 것이다. 답답한 알에서의 부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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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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