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킹키하라 - 뮤지컬 '킹키부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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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영상으로만 보던 장면을 직접 보고, 듣기 위해 첫 "킹키부츠"를 보러 다녀왔다. 그리고 10월, 킹키부츠의 여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결국 두번째 "킹키부츠"를 보러 다녀왔다. 소감은 말할 것도 없이 감동과 만족! 지인들에게 제발 킹키부츠 한 번만 봐달라고 애원했던 몇 개월이 참 보람차다는 것을 느끼고 왔다. 아직 내 가슴 속에 쉽게 사그라들지 못 하는 이 감동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흔히 말하는 '주접글'이라는 걸 한 번 써보려고 한다.
<본 글은 뮤지컬 킹키부츠의 스포가 담겨있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킹키부츠를 즐기고 싶다 하시면 아쉽지만 극을 먼저 보고 이 글을 읽으며 공감하는 걸 추천합니다.>
01. 시작
[ The most beautiful thing in the world ]
밝은 조명이 비추던 공연 장에 불이 탁 꺼지고, 벽돌로 꾸며진 벽이 열리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찰리와 아버지, 공장 직원들이 함께 하는 웅장한 앙상블이 극 초반 부터 킹키부츠라는 극의 화려하고 북적이는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약 6분 가량의 넘버 안에 찰리와 아버지의 관계, 어린 롤라의 인정받지 못하는 꿈 그리고 성장한 찰리의 현재 모습까지. 마치 내가 극 중 신발 공장 직원으로 일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봐왔던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후에 나올 스토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장치로 완벽한 장치가 아니였나 싶다.
나는 특히 공간을 가득 채우는 하모니와 무대 위를 꽉 채워 움직이는 다양한 소품들, 어린 롤라의 연기가 인상 깊었다. 모든지 첫인상이 중요하다고들 하는데 "The Most beautiful thing in the world"라는 넘버는 단박에 관중의 눈과 귀를 사로잡아 집중시키는데 아주 적합하다.
"잠깐! 이거 그냥 신발이야기인 거 아시죠? 그냥, 신발!"
02. 이야기의 진행
[ Land of Lola ]
갑자기 불이 탁, 꺼진다. 유혹적인 빨간 조명이 켜지고, 롤~라~하는 소리가 들리고 관객들이 환호를 지르기 시작할 때, 바로 그 때가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할 때이다. 롤라가 당신을 유혹하러 나타날테니 말이다. 롤라와 그 옆에 붙어다니는 엔젤들은 흔히 여장남자라고 알려진 드랙퀸이다. 아주 짙은 화장, 화려한 머리, 살색이 더 많이 보이는 반짝이 의상, 무엇보다 눈을 확 사로잡는 하이힐까지. 한명 한명을 눈에 다 담으려면 아주 바쁘게 눈을 굴려야한다. 귀로는 롤라의 파워풀한 목소리와 넘쳐흐르는 끼를 듣고, 눈으로는 롤라와 엔젤들의 당당한 걸음, 멋있는 기술, 춤, 몸 곳곳의 근육을 맘껏 즐기자. 노래가 끝나는 것을 아쉬워하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늦었다. 넘버의 제목인 Land of Lola에 푹 빠져 헤어나올 수 없을테니 말이다.
어느 넘버가 안 그러겠냐만, Land of Lola 라는 넘버는 특히 배우에 따른 느낌 차이가 크다. 부디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네명의 배우님의 각기 다른 롤라를 모두 봐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넘버는 앞의 상황극부터 봐줘야 그 진짜 재미를 느낄 수 있는데 아쉽게 한글버전으론 풀버전이 없어 원작의 영상을 첨부한다.
"자기야 긴장하지마, 자기는 여기 구경하러 왔지? 난 구경 당하러 왔어"
[ sex is in the heel ]
제목부터 강렬한 이 넘버는 아주 화려하다 못해 당장 일어나 기절하고 싶을 정도이다. 넘버 앞의 상황극부터 아주 웃음을 빵빵 터트려주는 개그요소가 가득! 묘하게 익숙한 디스코 비트와 밴드 연주, 화려한 앙상블이 꽉 채우는 무대. 반짝이는 조명까지 더해진 무대 위에서 엔젤들과 롤라가 하이힐을 신고 눈이 휘둥그래질 정도의 묘기를 부린다. 앙큼한 춤은 기본에 덤블링을 하고 공중에서 다리를 찢기도 한다. 중간에 롤라가 꽃가루를 뿌리며 끼를 부릴 때는 정말 웃음이 안 나올 수가 없다. 맘껏 신나는 노래에 몸을 맡기고 박수를 치고 소리를 지르다 보면 정말 노래가 눈 깜빡 하는 사이에 끝나버린다. 처음엔 어리둥절하다가 후반엔 다같이 노래를 즐기는 공장직원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하나의 소소한 재미라고 할 수 있다.
"sex is in the heel 강렬한 걸 원해
섹시한 어필, 흔들어봐 shake it~"
[ 연애의 흑역사 ]
이 넘버는 공장 직원 중 한명인 "로렌"의 솔로 넘버이다. 그저 친구로만 지냈던 찰리의 달라진 모습에 사랑의 감정을 느껴버리고, 그러지 말자며 스스로를 부정하는 내용이다. 내용도 너무 귀엽지만 가사와 그에 딱 맞는 로렌의 연기가 아주 일품이다. 짧은 넘버 안에 "로렌"이라는 캐릭터의 매력을 아주 꽉꽉 담다 못해 흘러넘치는 넘버! 다들 이 넘버를 듣고 로렌이라는 캐릭터에 푹 빠져봤으면 좋겠다.
"나 또 왜이러니 아직 덜 겪었니 연애의 흑역사에 한 명 추가하니.
예전 모습은 에이, 그냥 그랬는데 너 언제 이렇게나 존재감이 커졌니~"
[ Not my father's son ]
이 넘버를 듣다보면 마음 한켠이 아리곤 한다. 롤라와 찰리는 이 노래속에 어릴적부터 겪었던 자신들의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서로에게 공감하고 위로를 받는다. 상황만으로도 눈물을 나게 만들기 충분하지만 이 넘버의 가사를 집중해서 듣고 있으면 마치 나에게 하는 위로의 말 같아서 더 마음이 욱씬 거린다. 롤라와 찰리는 "주변의 기대와 시선에 부담을 느끼며 힘든 하루를 살아가는 자신이 어느 날 깨달은게 있어, 바로 지금 내 모습 이대로도 충분히 괜찮다는 거"라는 위로를 서로에게 건낸다. 많이 닮아있는 둘이 서로에게 위로를 받는 순간에 제 3자인 나 역시 그 둘과 많이 닮아 있는 한 사람으로써 큰 위로를 받았다. 아마 세상에는 나와 같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모두 이 넘버를 들음으로서 작게나마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
"아팠어, 하지만 난 깨달았어. 괜찮다고 이대로. 지금 내 모습 이대로"
[ Every body say yeah ]
드디어, 가장 아끼는 넘버를 소개해줄 때가 왔다. 이 넘버가 들리면 1막의 끝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머리는 아쉬움으로 가득 찬다. 하지만 표정은 이미 활짝 웃고, 엉덩이와 손은 신나서 들썩 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 넘버에서 주목해야할 것은 화려한 퍼포먼스이다. 무대 한켠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컨베이어 벨트가 무대 위를 가득 채우고, 엔젤들이 그 위에 앉아 마치 미끄럼틀을 타는 것 처럼 등장한다. 엔젤들이 내려오면 그 위를 찰리와 롤라가 리듬에 맞춰 뛰어다니기 시작한다. 정말 눈을 단 1초도 감지 못하게 시시각각으로 무대가 바뀌고 조명이 번쩍이고 화려한 퍼포먼스가 정신없이 펼쳐진다. 무대 위에서 모든 캐릭터가 함께 신나서 노래 부르고 춤추는 모습을 볼 때면 나도 저 사이에 껴서 노래부르고 타이밍에 맞춰 "어이! 어이!" 소리지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게 차오른다.
만약 당신이 이 넘버를 현장에서 직접 보게 된다면 1막의 끝을 알리는 커튼이 닫히고 꼭 심장에 손을 올려보아라. 거세게 뛰고 있는 심장이 아직 가시지 않은 여운을 다 말해주고 있을테니까 말이다.
[ In this coner ]
만약 엔젤들에게 흥미가 생겼다면, 이 넘버를 무조건, 무조건 꼭 듣기를 바란다. 엔젤들의 맛깔나는 연기와 파워풀한 노래를 아주 원없이 들을 수 있다. 롤라와 돈의 복싱 경기를 위해 다리로 줄을 연결해 링을 만들고 여기저기서 춤을 추고 온몸으로 롤라를 응원하는 엔젤들에게 홀랑 시선을 뺏길 수 밖에 없을 정도이다.
엔젤들도 주목해서 봐야할 부분이지만 그렇다고 거기에만 홀랑 넘어가 놓치기 아쉬운 부분이 너무 많다. 천천히 크게 보이는 움직임은 물론 타이밍 맞춰 번쩍이는 조명이 마치 장면에 슬로우모션을 걸어둔 것 같은 연출을 보여준다. 또 자신있게 덤볐다가 밀리기 시작하니 어리둥절해 하는 "돈"의 표정과 여유만만한 표정의 아마추어 복서 "롤라"의 끼부림이 아주 볼만하다. 그럴일은 없겠지만, 만약 눈이 바쁘지 않다면 주요 인물 외 앙상블 캐릭터들도 한번 봐주길 바란다. 옆에서 깨알처럼 하는 연기들이 정말 그냥 놓치기엔 아쉬울 정도로 알차고 재밌으니까 말이다.
"한방 먹어줬다. 까불지 마라"
"나비처럼 날아서 벌 처럼 쏜다"
[ Hold me in your heart ]
아름답다. 이 넘버를 정의하는 한 단어이다. 롤라가 하얀 드레스를 입고 소매를 펄럭이며 간절하게 호소하는 모습은 정말 비련의 여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것만 같다. 가사 역시 마음을 찡하게 만든다. 하이힐과 드레스를 좋아하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 하고 결국 떠나버린 아버지에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달라고, 서로가 상처를 줘도 서로 너무도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에 내 허물까지도 받아달라고 짙게 호소하는 롤라의 모습을 보고있자면 눈물이 절로난다.
나의 존재만으로, 내 모습 그대로 사랑받길 바라지만 그러지 못하는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를 듣고 공감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그런 사람들 중 한명이였으니까 말이다. 이 후에 더 큰 눈물자극 장면이 있지만 그건 직접 공연을 보러가서 즐겨주길 바란다. 원래 눈물이라는 건 모르고 있을 때 더 잘 나는 법이니까.
"네 허물도 사랑해. 놓치마 나를. 포기하지마 나를"
03. 엔딩
찰리와 롤라 사이의 짧은 갈등을 해결하고 무대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넘버! 극 내내 공장이던 배경이 화려한 패션쇼장으로 변하고 신나는 노래가 나오면 롤라가 강렬한 빨간 드레스와 힐을 신고 등장한다. "돈"이라는 캐릭터의 변화한 모습과 강렬한 감초역할! 모든 캐스트의 힘찬 목소리와 귀여운 안무까지. 용의 머리로 시작해서 용의 꼬리로 끝내는 정말 완벽한 엔딩을 만들어낸다.
이 넘버가 시작되면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서 박수를 치고, 춤을 따라추고 노래를 함께 부르기도 한다. 나도 열심히 춤추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보면 분명 신나는 노래에 가사도 슬플게 없지만 이상하게 눈물이 나곤 한다.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결국 다시 만나 해피엔딩을 만들어낸 극 중 캐릭터들이 기특해서일까? 힘들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나를 믿고 옆을 지켜주겠다는 위로 때문일까? 어쩌면 둘 다 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직까지도 힘든 일이 있을 때면 Raise you up을 들으면서 울다가 웃는다. 그러다 보면 내 옆에 롤라와 찰리, 그리고 모든 캐릭터들이 응원해주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묘한 위로를 받는다. 만약 내가 가는 길이 맞는 길인지 확신이 되지 않고 불안하다면, 그냥 서있는 것 조차도 힘들고 지친다면 가사에 집중해서 이 넘버를 들어주길 바란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호탕하게 어깨를 두드리며 전하는 위로가 상처받은 당신의 마음에 닿을 수 있게 말이다.
"네가 힘들 때 곁에 있을게. 삶이 지칠 때 힘이 되줄게.
인생 꼬일 때 항상 네 곁에 함께해~"
04. 마무리
내가 킹키부츠를 좋아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 쓰다보니 말이 길어져버렸는데,, 어떻게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킹키부츠에 대해 흥미를 가지는데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막 대학에 입학하고 성적, 사람, 일 특히 미래에 대한 고민 사이에서 여기저기 치이고 힘들던 나에게 큰 위로가 되어준 킹키부츠! 세상에 다양한 이유로 힘들어하는 모든 사람들이 킹키부츠를 통해 삶은 혼자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 위로를 얻을 수 있다면 좋겠다.
꼭 힘들지 않아도 신나는 에너지를 얻어가고 싶은 사람들, 화려한 연출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 공간을 꽉채우는 넘버와 앙상블의 목소리를 듣고 싶은 사람들 등등. 많은 사람들이 킹키부츠를 꼭 봐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럼 난 또 킹키부츠 넘버를 들으며 신나게 춤이나 추러 가야겠다.
오늘도 모두 킹키하라!
[조은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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