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小山 박대성의 작품 세계를 통해 보는 원융무애의 경지 [미술/전시]

- 박대성 개인전, 〈원융무애(圓融無礙)〉
글 입력 2022.10.15 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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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엑스포 내에 위치한 솔거미술관에서는 현재, 과거와 현대를 잇는 박대성 화백의 작품 세계를 조망하는 〈원융무애(圓融無礙)〉전이 진행 중이다.

 

 

 

小山 박대성, 신라인을 자처하다


 

박대성 화백은 현대미술가 중에서도 드물게 우리 회화의 수묵화와 산수화의 전통을 잇는 화가이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 한쪽 팔과 부모를 잃고 정식으로 서화 교육을 받지 못했음에도, 이에 굴하지 않고 그림 활동을 계속했다. 권위 있는 전람회로 자리했던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8차례 입선하고, 1979년 중앙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하여 그 실력과 재능을 인정받은 데에는 모두 그의 끊임없는 노력과 탐구가 있었다.


박대성 화백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키워드는 바로 경주와 신라, 수묵화이다.

 

그는 미국 체류 중 갑자기 떠오른 불국사에 〈불국설경〉(1995)이라는 대작을 완성하기도 했는데, 경주에 대한 그 남다른 관심은 1999년 작업실을 경주로 옮기면서 더욱 구체화된다. 이후 박대성 화백은 자신을 ‘신라인’으로 규정하고, 경주에 위치한 자신의 한옥에 ‘불편당’이라는 이름을 붙인 후 작품활동에 매진했다.


한반도에서 수묵화는 조선시대부터 이어져온 전통이지만,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외부적 요인에 의해 그 맥이 갑작스레 끊겼다.

 

이 당시 유입된 서구의 다양한 미술사조와 이에 따른 화단의 변화는 현재로서는 명망 있는 다수의 현대미술가를 낳았으나, 해방 이후 청산되지 못한 일제의 잔재와 전후의 혼란으로 인해 한국 미술 화단은 전통과 현대의 중간다리를 잃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그리는 것이 현대미술”이라는 박대성 화백의 말처럼, 박대성 화백이 전통과 현대를 잇고, 중간다리 역할을 자처하는 사명감만으로 작품 세계를 이어나간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겸재 정선과 추사 김정희에 영향을 받은, ‘전통 한국화를 계승하는 작가’라는 수식어를 가진 화가가 한국 화단에 있다는 사실은 분명 다행인 일이 아닐 수 없다.

 

 

 

小山 박대성의 작품 세계를 통해 보는 원융무애의 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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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폭포〉 전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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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몽유도원도〉 전시 전경

 

 

‘원융무애’는 존재하는 모든 것이 방해됨 없이 일체가 된다는 불교의 경지를 의미한다. 솔거미술관에서 직접 마주한 박대성 화백의 화면은 정말이지 무엇의 방해도 없이 천 이백 년 전의 신라와 맞닿아있는 듯했다.

 

특히 이번 전시의 주요작품인 〈신라 몽유도원도〉(2021)은 그 규모와 섬세함에도 놀라지 않을 수 없지만, 실제 신라인들이 밟았던 땅을 밟으며 서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발끝을 쭈뼛 서게 만들었다.


전통과 현대를 잇는 박대성 화백의 전시는 10월 30일까지 솔거미술관에서 관람할 수 있다.

 

걷기 좋은 계절에 전통 한국화 사이를 거닐어봄은 어떨까.

 

 

[김윤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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