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수많은 진심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사람]

오글거린다는 말로 숨겨버린 진심들
글 입력 2022.10.0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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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글거린다는 말이 생겨난 이후, 나는 이 표현을 아주 유용하게 쓰고 있다. 어떤 말을 던지고 나서 괜히 멋쩍은 기분이 들 때, 무거워진 듯한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싶을 때, '오글거리게 왜 그래'라며 상황을 모면한다.

 

'내가 원래 오글거리는 표현을 잘 못 해'라는 말은 감정표현이 서툰 나를 포장하기에 단연 최고의 표현이었다.

 

 

[크기변환]austin-distel-tLZhFRLj6nY-unsplash (1).jpg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내가 접속하지 않은 동안 나 몰래 업데이트된 친구들의 소식은 없는지, 사이버 공간을 유영하여 주변인들의 안부를 확인하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피드를 휙휙 넘기던 중, 나의 타임라인에 장문의 글 하나가 떴다.

 

맞팔로우는 되어 있지만 딱히 이렇다 할 교류는 없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 때 '걔는 요즘 뭐하고 산다니?'라는 문장 속에서 서로 '걔'를 맡고 있는 사이. 딱 그 정도 사이인 친구.

 

대학을 다닐 때에도 우리는 같은 동아리이긴 했지만, 진지한 대담을 나눠본 적은 없다. 그런 내가 그의 성격을 이렇다 저렇다 정의 내리긴 힘들겠지만, 겉으로 보이던 그 친구의 모습은 말수도 적고 자신의 감정을 밖으로 잘 드러내지 않던 친구였다.

 

그래서 그날 새벽에 업로드된 그의 글은 나에게 조금 의외로 다가왔다.

 

술기운을 빌린 것인지 자세한 내막은 잘 모르지만, 현재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게 쓰인 글. 이 친구가 이렇게 솔직한 글을 쓸 줄도 아는구나, 하며 스크롤을 좀 더 내려보니 그 글 아래에는 이런 류의 댓글들이 달려있었다.

 

오글거린다고, 내일 아침에 후회하지 말고 빨리 지우라고.

 

내가 작성한 글도 아니고, 글을 쓴 친구와 각별한 사이가 아님에도 왜 인지 댓글을 보다 보니 가슴 한편이 시렸다. 내가 자주 써오던 '오글거린다'라는 말로 그 친구의 진심이 가려지는 것만 같아서.

 

 

[크기변환]patrick-tomasso-Oaqk7qqNh_c-unsplash.jpg

 

 

한창 싸이월드라는 플랫폼이 유행이던 시절, 나의 다이어리 속에는 (포도알을 모으기 위해서라도) 하루 동안 내가 느꼈던 감정이나 에피소드들을 정말 가감 없이 썼다.

 

요즘 나는 누가 싫고 이래서 화가 났으며, 이런 말을 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부터 내가 어떤 연예인에게 관심이 가고 그들을 볼 때의 내 마음이 어떠한지 정말 솔직하게 적혀있었다. 댓글로는 친한 친구가 쓴 일기 내용에 맞장구를 치며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던 날들.

 

어느덧 싸이월드가 '라떼 회상'용 단어로 바뀌게 되고, 이후로도 시간이 많이 흐르고 난 뒤 나의 개인 SNS 계정들은 눈팅용이 되었다. 게시글은 거의 올리지 않고, 혹여 올리고 싶은 게시글이 있을 때면 아예 새로운 아이디를 만들어 계정을 분리하고 있다.

 

웬만큼 가까운 지인이 아닌 이상, 나는 내 감정을 쉽게 표현하지 않는다. 감정에 너무 솔직하게 되면, 뒷말이 꼭 나오게 된다는 걸 어느 순간부터 체득하였기 때문이다.

 

내 감정에 솔직해지기보다는, 누군가가 이런 나의 감정을 '오글거린다'라고 할까 봐 지레 겁부터 먹는 어른이 되었다. 나는 오글거림이라는 자체 필터를 만들어 끊임없이 나의 글을, 나의 감정을 검열한다.

 

 

[크기변환]christian-lue-qb85Joj59lw-unsplash.jpg

 

 

느지막이 일어나 다음날 다시 내려본 피드 속에 친구의 글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친구는 어떤 마음으로 그 글을 삭제했을까?

 

오글거린다는 말로 그 안에 매몰되어 놓아 버린, 전하지 못한 수많은 마음들. 그리고 그렇게 숨겨버린 진심들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싸이월드 감성이라며 다이어리와 미니홈피 비지엠 등으로 그 당시 나의 생각과 감정에 충실했던 지난날들이 조금 그리워지는 날이다.

 

 

 

백소현.jpg

 

 

[백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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