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자신에게 주문을 거는 반 고흐의 편지 - 반 고흐, 프로방스에서 보낸 편지

반 고흐 자신에게 보내는 확언의 메시지
글 입력 2022.09.28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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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는 오늘날 걸작이라고 여기는 작품 다수를 프로방스에서 그렸다. 동시에 그는 지인에게 수많은 편지를 썼다. 책 <반 고흐, 프로방스에서 보낸 편지>는 반 고흐가 프로방스에서 보낸 편지와 그림 그리고 그의 일생을 소개한다.

 

책은 '친애하는 000에게', '그럼 이만, 빈센트'가 앞뒤로 반복하는 편지가 잇따른다. 편지 내용은 반 고흐 자신이 오늘 하루 무얼 보았고, 무엇을 그리고 있는 중이며, 그날의 생각과 감정이 대부분이다.

 

사실 반 고흐의 편지가 TMI 아닌가 생각했다. 예를 들어, '이번 그림은 어떤 색조로 어떻게 칠할 것이다.'라는 말은 반 고흐에게 중요할 뿐, 편지를 읽는 상대에게 궁금하지 않은 내용일 수 있다.

 

반 고흐의 편지는 일종의 '자기 암시' 같았다. 우리가 잠들기 전에 오늘 하루를 회상하는 일기를 적으면서 반성과 다시 내일을 살아갈 의지를 심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반 고흐가 무수히 쓴 편지는 사실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확언이 아니었을까?


 

생각을 그만하려고 애쓰지 않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둘 때면 좌절감과 패배감이 찾아온다! 살고, 일하고 싶다면, 분별 있게 행동하고 자신을 돌보아야 한다. 시원한 물, 신선한 공기, 영양가 있고 단순한 음식, 질 좋은 옷, 질 좋은 침대 그리고 여자가 없는 ... - p57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그는 '잘' 살아가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빼곡히 써놓았다. 곧 자신에게 건네는 행동 지침서 같다.


 

내 건강은 괜찮다. 그리고 밖에서보다 여기에서 작업을 하면서 더 행복하단다. 여기에서 오랜 시간을 잘 지내면서, 나는 장기적으로 규칙적인 습관을 들이게 될 거고, 그 결과 내 생활이 더욱 질서 정연해지고, 예민함이 보다 누그러지리라고 여긴다. - p183

 

 

신경 쇠약이 심해질 당시 쓴 편지에서도 반 고흐는 자신의 건강은 괜찮다고 상대방에게 말한다. 환각, 환청, 발작까지 보인 반 고흐는 '괜찮아질까?'라고 자신의 상태를 늘 의심했을 것이다. 동시에 깊은 좌절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괜찮다.'라고 내뱉음으로써 이는 스스로에게 건네는 위로의 말이었을 것이다. 그는 편지에서 '괜찮다'라고 썼지만, 왠지 그 말은 '괜찮아질 거야'라고 불안한 반 고흐를 달래는 자기 주문처럼 느껴진다.

 

빈센트 반 고흐, 살아 있는 동안에 그가 인정받은 적이 있던가? 그는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가고 싶었던 학교, 사랑하는 여인, 친구 모두가 그를 거부했다. 그의 그림 역시 대중의 눈에 띠지 않았다.

 

반 고흐가 쓴 편지는 평생 외면받았던 그의 일생을 반 고흐 본인이라도 '인정'해주고 싶은 심정이지 않았을까. 오늘 하루는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지 않았다고,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스스로를 기특하게 여기려고 애쓰는 듯하다.

 

*

 

유튜브에서 불안을 이겨내는 방법으로 '자기 암시', '자기 확신', '자기 확언' 영상을 본 적 있다. 속는 셈 치고 문장을 몇 개 읊어보았다. 긍정적인 문장을 하나씩 읽어내려갈 때마다 입꼬리가 올라갔다. 자신감이 생겼다. 거짓말이 아니다.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삶에서 느끼는 방향이 달라진다. 부정적인 생각만 가득이면 모든 것들이 부정하게 느껴진다.  '안 좋은 일은 한 번에 일어난다'라는 상황을 느껴본 적 있을 테다. 이건 불행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차이가 생긴다.

 

'오히려 좋아'가 아닌, '왜 또 이런 일이'라고 좌절하면 괜히 사소한 일도 무겁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또 다른 불행이 연쇄적으로 찾아오고, 안 좋은 일은 한 번에 일어난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럼에도 자기 주문을 계속 외웠던 반 고흐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만큼 그의 삶이 고달팠다는 것이겠지, 그래서 더욱 슬프고 안타깝다.


 

내내 한자리에서 작업을 하면서 나는 표현이 되든 안 되든 본질적인 것을 포착하여 드로잉 하려고 애쓴다네. 하지만 어떤 경우든 '느끼려고'하네. 단순화한 색조로 말이야. - p 49

 

 

어떤 경우든 '느끼려고'했던 그는 남보다 삶의 힘듦을 더 깊이 느껴서 수없이 외쳤던 자기 확신이 효과가 없었던 것 같다.


 

나는 미래가 캄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애로는 많으리라고 본다. 이따금은 그 문제들이 내게 너무나 고된 게 아닌가 자문하곤 한단다. - p 55

 

 

그러나 반 고흐가 삶에서 온몸으로 느끼려고 했던 온갖 것들이 '고된 문제'라고 낙담할 수는 있어도, 절망하지 않았다는 건 분명하다. 희망을 놓치 않았던 그는 오히려 삶에서 받아들인 느낌들을 황홀한 '색채'로 표현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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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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