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다락방의 미친 여자 [도서]

글 입력 2022.09.27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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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애나 러스의 <여자들이 글 못쓰게 하는 방법>에는 인상적인 말이 등장한다.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니까,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여자들은 쓴다.

살기 위해,

죽는 그 순간까지 살기를 멈추지 않기 위해.

존재하기 위해.

 

<여자들이 글 못 쓰게 하는 방법, p.18>

 

 

조애나 러스의 '그래서 그들은 썼다(So they write)'라는 문장에 깊은 인상을 받은 옮긴이가 변주한 문구이다. 여성의 글쓰기에 대한 서적들을 읽으며 꺼낸 공통 질문은 '여성들은 왜 글을 쓰려고 했을까?'였다.

 

이는 '인간은 왜 글을 쓸까?'라는 근원으로 환원될 만큼 당연한 질문일지 모르나, 상당 기간 동안 글쓰기의 주체는 남성이었기에 유의미한 질문이라 느꼈다. 그 모든 장애물을 마주하면서도, 다락방에 갇힌 광녀가 될 것임을 앎에도 여자들은 왜 쓰기를 멈추지 않았을까.

 

책 <다락방의 미친 여자>는 그 질문에 밀도 높은 답을 제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페미니즘 비평과 여성 문학의 해설에 관해서는 오랜 고전으로 유명한 이 책은 알라딘 북펀드를 통해 복판 전부터 큰 관심을 얻었다. 여성문학 팬층 사이에서 소문만 무성했던 <따락방의 미친 여자>를, 새로운 디자인과 판형으로 만나볼 수 있음은 큰 기쁨이었다.

 

주석과 참고문헌을 제하고도 무려 1000페이지 이상의 분량을 자랑하는 책인지라, 목차를 살펴 손이 뻗치는 부분들을 먼저 읽었다. 내용이 촘촘하며 다양한 문학 작품을 참고해가며 읽을 필요가 있기 때문에 완독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들리라 예상하지만, 그마저도 설레는 작업이다.

 

 

표1.jpg

 

 

<다락방의 미친 여자>는 총 6부로 이뤄져 있다. 1부는 페미니즘 문학 전반에 관한 이론을 다루며, 2부부터는 제인 오스틴, 메리 셸리, 브론테 자매, 조지 엘리엣, 에밀리 디킨슨을 비롯한 다양한 여성 작가와 그들의 작품에 대해 설명한다. 서구 문학사에서 상당한 존재감을 지닌 이 여성 작가들의 공통점은 모두 19세기에 활동했다는 점이다. 때문에 <다락방의 미친 여자>는 19세기의 시대성을 놓치지 않고 다룬다.

 

이 책은 인상적인 질문으로부터 시작한다. '펜은 음경의 은유일까?'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 어딘가 오싹하게 느껴진 건 처음이었다. 홍차와 섬세한 레이스, 무거운 드레스와 굽 높은 구두뿐으로 이뤄진 여성의 영역에 감히 펜을 들인 이들은 그 기개만큼이나 육중한 무게에 짓눌려야 했다.

 

 

펜을 들었던 최초의 여성들이 자신에 대한 불신, 무력감, 열등감에 감염되거나 그로 인해 병들었음은 분명하다. 이런 느낌은 '여성성' 교육이 유도한 결과였다. (중략) 이 말은 비록 여성이 펜을 드는 일이 부조리하지는 않다ㅡ 할지라도 병적(오늘날의 말로 하면 신경증적)임을 암시하고 있다.

 

/다락방의 미친 여자, p.161~162

 

 

다시 처음의 물음으로 되돌아간다. 여성들은 이 물음에 짓눌리면서도 왜 쓰는 쪽을 택했을까? 왜 쓰며 미치기를 허락했을까? 허무하게도 그들이 인간이며, 문명 사회의 일원인 것은 해가 뜨고 지는 것만큼이나 자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라는 것. 그것이 <다락방의 미친 여자>를 접한 내 답이다.

 

여성들이 글자를 깨우치고 스스로를 표현할 수단으로 인식하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재능있는 여성들이 새로운 문학 계보를 잇고 유의미한 문학사를 써내리고 있는 현재의 시류는 그 자체로 펜을 자신의 영역으로 들이고자 했던 여성들의 분투가 얼마나 단시간에, 또 그만큼이나 치열하게 이뤄졌는지를 짐작 가능하게 한다.

 

이들의 무대는 남성들이 장악한 광장 대신 '다락방' 구석이었고, 시대가 요한 여성으로부터 멀어진 이들에게는 마녀, 혹은 광녀의 꼬리표가 따라 다녔다. 기꺼이 미치기를 택한 여성들, 그들의 역사가 책 전반에 걸쳐 펼쳐진다.

 

이렇게 '언어'를 갖게 위한 싸움은 나아가 '서사'를 갖기 위한 싸움으로 이어졌다. 여성 주인공의 여성적 삶이 더이상 주변부에 머무르지 않고 하나의 유의미한 서사로 형상화된 역사는 벅차오를 정도이다. 그 일례로 책에 등장한 <제인에어>의 경우를 들고 싶다. 아래에 4부 내용 일부를 인용한다.

 

 

빅토리아 시대 평론가들은 <제인 에어>의 조악함이나 섹슈얼리티 때문에 충격을 받았다기 보다 사회 조직의 관습, 그리고 사회 규범을 거부하는 이 작품의 '반기독교성' (간단히 말해서 이 작품의 반항적인 페미니즘) 때문에 충격을 받았다는 사실은 충분히 소기심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중략) 다시 말해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이 경악한 것은 제인의 분노였다.

 

다락방의 미친 여자/ p.616~617

 

 

스스로의 존재를 '여성'이라는 가두리에 억압하지 않고, 기꺼이 교만과 욕심을 부리는 새로운 여성상의 제시. 19세기 남성 평론가들은 <제인 에어>의 조악함을 꼬집었지만, 이는 반항하고 반향을 이끄는 여성의 등장을 인정하지 않은 것과 다름 없었다. 평소 좋아하던 작품을 보다 올곧은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톺아볼 수 있었던 파트였다.

 

책을 읽어나갈 수록 확실해지는 것은, 글을 쓰는 나는 다락방의 미친 여자들의 딸이라는 점이다. 그들의 욕심과 용기와 역사에 빚지고 있는 나는 나만의 언어를 가져야 한다는 당위성, 여성으로서 응당 여성의 삶을 드러내는데 일조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아무 노력 없이 얻을 수 있었다. 그 어떤 시대에서나 부적절했던 그들이 적절함을 말해온 역사는 시공간을 뛰어넘어 내게 큰 씀의 동력이 되어 준다.

 

<다락방의 미친 여자> 복판을 만들기 위해 힘써주신 모든 관계자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오송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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