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 여자들은 미쳤어" - 다락방의 미친 여자

책, 다락방의 미친 여자
글 입력 2022.09.24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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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의 미친 여자

여성 작가와 19세기의 문학적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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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과 부록을 제외하고도 1,096페이지. 실로 방대한 책이다. 종이 책을 볼 때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책의 부피와 무게도 있으니, 편의성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읽어보니 실제로 그랬다. 누워서 읽기는커녕 독서대 없이는 막중한 무게를 견디기 힘들었다. 게다가 길이는 또 얼마나 긴가. 한참을 반듯한 자세로 보아야 해서 여러모로 장벽을 맛봤다.


그러나 이토록 '불편한' 책에 쏠린 관심은 폭발적이었다. 알라딘 북펀드 모금액 5,100만 원. 목표금액은 400만 원이었던 데다가 단 한 권으로 이렇게 많은 액수가 모인 건 이례적인 일이다. 목차를 살펴보면 '한 권'이라는 말이 무색하긴 하다. 제인 오스틴, 에밀리 브론테 등 19세기 여성 문학가들의 글을 분석하고, 그들 각자의 삶과 연관 짓고, 그들이 살았던 시대상과 엮어 말하였으니 이미 완성된 퍼즐을 한데 모아 더 큰 퍼즐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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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만 봐도 충실한 내용이 느껴지지 않는가. 열성적인 반응의 또 다른 이유, 이 책은 초판이 아니라 복판이다. 절판된 이후로, 프리미엄 값이 붙은 채 드문드문 중고 거래가 이루어졌다. 정가에 2~3배를 웃도는 돈을 주고서 얻기도 하면서 말이다. 이렇게 찾고 기다리던 사람들이 많았으니 5만 원 웃도는 가격은 문제가 될 게 없었다.


그럼 독자들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복판을 찬찬히 살펴보자.

 

 

 

책과 인사하기

 

이북과 달리 종이책의 매력은 실물 그 자체에 있다. 그래서 종이책을 좋아하기도 하고, 책 곳곳을 살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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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트 색, 크기, 색깔, 질감, 이미지 등 온갖 것들과 인사를 나누며 책이 줄 인상을 예상해보는 거다. 부러진 깃털 같은 펜이 장식한 커버. 흔히 깃털은 가벼움과 부드러움의 상징이거늘 커버 이미지에서는 종이에 가까운 형태다. 곳곳에 뜯긴 상처가 많은데 형태를 굳건히 유지한다. 위태로워 보이던 모양새가 은근히 안정감을 주기도 한다. 마치 새로운 손잡이를 만든 듯이.


단순히 깃털로 보일 수 있던 게 '펜', 그러니까 쓰기의 도구로 탈바꿈한 건 이것이 그려낸 한 획에 달렸다. 사실상 제목과 표지만으로 내용을 유추할 수 있다. 응접실도, 침실도, 부엌도 아닌 다락방. 퀴퀴하면서 숨겨진 좁은 공간에 있는 여성, 그것도 '미친'. 다락방에서 욕망을 억누르며 숨어야 하는 삶이라면 미치는 게 당연하다. 혹은 당시엔 용납할 수 없는 미친 짓을 했다거나.


커버를 벗기면 강렬한 레드가 사위를 가득 채운다. 핏빛이 떠오르기도 하고, 강한 의지를 표명한 상징색 같기도 하다. 손가락의 지문 혹은 나무의 나이테처럼 굽이치는 물결이 있어서인지 부드러운 느낌은 아니다. 그렇다고 거칠지도 않다. 그저 무언가의 흔적이 느껴질 뿐이다.


여기에 19세기 여성 문학가들이 주어임을 고려하면, 피로 낭자한 여성 작가들의 처지를 각자만의 의지로 맞붙어 이후의 여성 작가들과 맞닿았다는 이야기겠다. 물론 책을 읽기 전엔 이토록 디테일한 감상까지는 어렵긴 하다만. 생각보다 표지가 말해주는 것이 많으니 책 내용뿐만 아니라 겉보기의 즐거움 또한 충분히 만끽했으면 했다.



 

페이지로 들어서며


 

6부 16장의 이야기를 다 꺼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방대한 양이 첫 번째 이유고, 작품 비평이 책의 주요 논개 방식이라는 게 또 다른 이유다. 문학가들의 작품을 토대로 그들이 창조한, 혹은 자기 자신을 투사한 인물들과 그들 간의 관계, 사건의 전개와 결말 등을 다루다 보니 모든 이야기를 설명하며 예를 들 순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제목마저 생소한 작품들도 있다.『오로라 리』, 『노생거 사원』처럼. 늘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이야기만 조명하지 않고 싶으나, 애석하게도 그럴 수밖에 없겠다. 새로운 작품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는 직접 책을 열어 들춰내길 바라본다.




가장 인상 깊은 챕터라 하면

 

단연코 1부, '페미니즘 시학을 향하여'다. 장으로 따지지 않은 건 3장까지의 흐름이 다소 충격적이고 재밌었기 때문이다. 유쾌하다고는 표현 못하겠다. 다소 답답하고 얼타는 시대 상황과 남성 문학가들의 말이 담겨있으니까.


시작의 물음부터 강렬했다. '펜은 음경의 은유일까?' 어렴풋이 들어본 말인데, 이 말이 왜 통용될 수밖에 없는 사실이었는지 명확히 파악한 건 처음이다. 신을 '아버지'라고 표현하듯 창조자를 가리킬 때엔 늘 남성임을 간주한다. 글을 쓰는 작가도 마찬가지다. 작가가 창조한 세계로 사람들이, 이야기가 꾸려지는 것이므로 작가-신-가부장은 모두 하나의 맥락에서 작용한다. 이렇게 흥미로운 연결점을 제시한 건 에드워드 사이드인데, 그의 고찰 전부를 옮겨 담을 순 없으니 간략하게 적어보겠다.


권위(authority)는 사전적 의미뿐만 아니라 저자(authour)의 의미까지 내포한다고 그는 말한다. '저자'라는 단어는 '증식하다'는 의미의 과거분사인 아욱투스(auctus)와 관련된다. 여기에서 증식시키는 사람이자 창립자인 아욱토르(auctor), 소유권, 생산, 발명, 원인의 뜻을 지닌 아욱토리타스(auctoritas)까지 단어의 어원과 의미를 엮어보면 '저자'가 단순 글 짓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여길 순 없을 것이다.


개인이 무언가를 시작하게 만드는 창조의 힘을 지녔고, 이 힘과 그에 따른 결과물은 이전보다 늘어나 많아지고, 창조자 개인이 이것들을 통제하고, 권위를 앞세워 앞선 과정들을 반복한다. 과장이 아니라, 작가는 결국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행위자인 셈이다. 다만 이 거세고 강력한 힘은 가부장제 아래에서 작용한다.


 

모든 여자는 단지 남자의 몸과 정신, 즉 남자의 음경과 펜을 즐겁게 해 남자의 (시 poem든 사람이든) '숫자'를 늘려주는 '영(0, 무無, 텅 빔)'인 존재일 뿐이라고. 그러나 리처드 체이스가 '남성적 열정'이라고 일컬었던 것을 거부하고 '여성성'이 주는 비굴한 위안을 암암리에 거부하는 여성 문인 역시 이중적으로 '영'이다. 왜냐하면 여성 문인은 사실상 '거세된 남자'이기 때문이다. (p.82)

 


그 결과, 여성은 '0'의 상태에 머문다. 존재하기는 하나 아무것도 아닌 존재다. 온갖 콘텐츠를 손쉽게 접하는 요즘 세상에선 더욱 체감하기 쉽다. 권위자가 자신의 뮤즈 내지는 환상을 앞세워 캐릭터를 구성하고, 그 캐릭터는 작가 본인의 욕망 실현을 위해 움직인다. 그렇기에 여성 캐릭터들은 대개 일률적인 행동과 역할, 위치에 머물 뿐이고 상황을 주도하고 이야기를 꾸려가는 건 남자 주인공이 된다. 제아무리 여성 캐릭터의 분량을 늘렸다고 한들 그는 남성의 고된 일에 대한 보상, 트로피쯤으로 치부될 뿐이고.


 

펜이란 음경의 비유인 칼보다 더 강력하며, 가부장제 안에서는 더더욱 성적인 울림을 던진다. 작가는 자신의 뮤즈가 불러일으키는 유사 성적 흥분에 미학적 에너지를 뿜어내는 식으로 대응한다. (p.78)

 


19세기 여성 문학가들의 상황은 지금보다 훨씬 열악하고 폐쇄적이었다지만 과연 지금은 얼마나 다른지, 세상이 완전히 뒤바뀌었다고 착각하는 건 아닐지 의구심이 든다. 여성 작가들의 활발한 활동으로 문학계는 조금 다양해졌다지만, 여전히 뮤즈 역할에 국한된 여성 캐릭터들은 도처에 널렸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여성 작가들은 자신을 포함한 여성을 어떻게 내세울 수 있는가. 이미 남성 작가들이 '천사' 혹은 '괴물' (널리 퍼진 이분법으로는 성녀-창녀)이라고 분리한 두 세계에서. 책에도 적혀있듯 여성 작가는 문학적 자율성을 향해 거울을 통과하는 여정을 떠나기 전에 먼저 거울 표면에 있는 이미지와 타협해야 한다. (p.94)

 


모든 이야기는 별 수 없이 글을 짓는 창조자의 욕망과 바람, 하고자 하는 이야기, 혹은 자기 자신 그 자체가 담긴다. 여성 작가들에겐 결국 글쓰기가 힘겨울 수밖에 없다. 두 가지 정반대의 캐릭터만 존재하는 창조의 세계에서 무엇을 택한단 말인가. 자기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하고자 하는지조차 명확히 규명할 수 없는 현실을 제쳐두고 자신만의 세상을 어떻게 구축한단 말인가.


책에서는 이를 백설공주와 왕, 그리고 그들 사이에 놓인 거울을 들어 표현한다. 이 대목은 글자로 풀어내야 할 얘기를 단숨에 압축할 만큼 적절한 예시였다. 여성인 왕은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본다. 스스로를 비추어보는 듯 하지만, 거울은 왕의 자아가 아니기에 그는 제대로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거나 고민해 볼 틈이 없다. 그저 거울이 말하는 게 사실이 된다. 그래서 왕은 한없이 흔들리고, 분노하고, 안심하고, 절망한다.


왕은 거울의 말에 따라 백설공주를 괴롭히고 공격한다. 그것도 빗, 사과처럼 지극히 '여성성'이 묻어나는 도구를 이용해서. 그의 계략이 통한 줄 알았지만, 백설공주는 사냥꾼, 이웃 나라 왕자 등 다른 남성들의 도움으로 죽음에서 벗어난다. 한없이 '나쁜' 그러면서도 지극히 '여성적'인 왕, 그리고 '천사처럼 착한' 그러나 힘이 없어서 남성의 구원이 필요한 '수동적이고 온순한' 백설공주.


결국 여성의 거대한 범주는 천사-괴물, 병든-병들게 하는, 착한-나쁜 등 단순한 두 갈래로 나뉠 뿐이다. 동화로 치부하는 픽션이 현실과 전혀 다를 바 없단 사실도 중요하지만, 더 나아가 여성들의 연대를 불가능한 영역에 밀어 넣는다.


 

이 이야기에서 백설공주에게는 '착한' (죽은) 어머니와 자신의 살아 있는 화신인 '나쁜' 어머니 외에 여성에 대한 어떠한 역할 모델도 없다. (p.133)

 


착한 여성들은 세상에 순응하여 아무런 반대 기색 없이 얌전하고, 나쁜 여성들은 세상의 그릇된 말(거울)을 벗어나지 못한 채 그 분노를 맹렬히 표출한다. 앞으로를 살아갈 여성들은 대체 세상 누구를 본보기 삼으며 살아갈 수 있겠는가? 가만히 앉아 모르는 척하는 것도, 세상에 휩쓸려 마구잡이로 날뛰는 것도 원치 않는다면?


선택지라고 부르기도 뭣한 상황에서 여성 문학가들은 어떻게든 글 속에 자기 자신을 담았다. 이분법으로 나뉜 세상인지라 선택지도 두 개뿐이었지만 말이다. 남성 문학가들이 마련한 세상을 교묘하게 파고 들어가 여성 화자 대신 남성들을 앞세우며, 혹은 남성들의 비위에 맞춘 온화한 로맨스를 짓는 것이 한쪽. 반대편은 맹렬하게 저항하며 하고자 하는 말을 뚜렷하게 보여주었다.


다만 이 또한 상대적인 차이일 뿐, 그들이 다락방에 숨어있다는 건 동일하다. 모든 의미는 몇 꺼풀 벗겨내어 찬찬히 살펴보아야만 알 수 있다는 거다.『폭풍의 언덕』속 히스클리프가 캐서린의 또 다른 자아였다는 발견이나 웬스워스 대령과 엘리엇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앤의 심리라거나.


 

'유리 표면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여성 문인은 모든 여성이 지켜야 했던 사회적 규범을 그토록 오랫동안 반영해온 거울을 박살내야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19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 영미 여성 작가들은 남성 문학으로부터 계승받은 여성의 이미지들을, 특히 여왕의 거울 논의에서 보았듯이, 천사와 괴물이라는 양극적인 범례를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수정하며 해체하고 재구축했다. (p.187)

 


다락방에서 미친 여자 취급을 받으며 고군분투한 삶은 애석하긴 하나, 동시에 그들의 강직함에 감사를 표하게 된다. 책의 두 저자에 의하면 19세기 여성 작가들에 관한 연구나 논의는 18세기나 20세기 등 다른 시대에 비해 현저히 적었다고 한다. 책이 처음 나온 때와 지금 사이의 간극이 얼마간의 차이를 가져왔을진 모른다. 단지 각자의 자리에서 애쓰던 삶들이 조각조각 모여 20세기로, 20세기는 또 지금의 21세기로 이어져 왔음을 느낄 수 있어 기쁠 뿐이다.


우리는 서로의 존재가 연대이거늘.




읽기 전에 읽었더라면

 

1부를 제외한 챕터에서는 작가들의 특정 작품 1~2가지(시는 훨씬 방대하다)를 풀이하기에 대표 저서는 읽어두는 게 좋겠다. 아래에 리스트를 대략적으로 정리해두었으니, 이 열성 가득한 '벽돌 책'을 읽어나갈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물론 모든 책을 다 읽어야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인용 저서가 많다는 걸 장벽으로 느끼진 않았으면 좋겠다. 내용을 몰라도 충분히 괜찮다. 책에서도 자연스레 줄거리를 읊는다. 다만 작품에 녹아내린 작가의 문체나 어씨를 알면 텍스트의 이해가 쉽기에 권하고 싶었다.


충분히 긴 책이지만 읽을 만한 가치가 충분하니 천천히 오래오래 들여다 보길 바라며.


 

책 속의 책

제인 오스틴 : 노생거 사원, 설득, 오만과 편견

샬럿 브론테 : 교수, 셜리, 제인 에어, 빌레트

메리 셸리 : 프랑켄슈타인

에밀리 브론테 : (소설) 폭풍의 언덕 / (시) 주인에게 보내는 편지, 나는 장례식을 느꼈다 등

조지 엘리엇 : 미들 마치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 : 오로라 리

루이자 메이 올컷 : 작은 아씨들

버지니아 울프 : 자기만의 방


맥락을 같이하여 함께 읽기 좋은 책

여성과 광기

제2의 성

 

 

[박윤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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