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슈게이징의 계절, 가을 [음악]

가을과 어울리는 슈게이징 장르의 음악 네 곡
글 입력 2022.09.1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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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의 계절 가을이 돌아왔다. 더위를 많이 타는 사람에게 이번 여름은 유독 힘들었다. 강하게 내리쬐는 햇빛보다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계속되는 눅눅한 습기였다. 8월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고, 버석버석해지는 공기와 함께 9월이 왔다. 습하다는 핑계로 잠시 멈춰두었던 저녁 산책을 다시 시작할 때가 온 것이다.

 

계절이 바뀐다는 것은 공기가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머리카락을 스치는 바람의 세기, 공기의 습도가 변하며 기분도 함께 바뀐다. 서늘해지는 날씨와 보다 들이마시기 쉬워진 공기에 신이 나 아직은 걸치기에는 조금 더운 스웨터를 꺼내 보기도 하고 가죽 가방을 들어보기도 한다.

 

가을은 외출이 즐거워지는 계절이다. 옷장과 화장대의 향수가 조금씩 변하는 동시에 플레이리스트도 변한다. 여름에 즐겨 듣던 플레이리스트는 과감히 뒤로 밀어버리고 새로운 가을 플레이리스트를 짜기 시작한다. 그렇다, 나에게 계절이 바뀌었다는 가장 큰 신호는 자주 손이 가는 노래들의 변화를 실감하며 시작된다.

 

가을에는 스며드는 음악을 자주 듣게 된다. 무더운 여름에 지친 기분을 없애려 애써 찾아 들었던 경쾌하고 밝은 노래들 대신, 일상에 잔잔히 스며들 수 있는 음악들을 찾게 된다. 나에게 무언가를 보여주는 음악이 아닌, 산책하며 보는 가을 저녁 하늘이나 흔들리는 나뭇잎들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음악이 좋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압도시키는 음악은 가을과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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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게이징 밴드 My Bloody Valentine

 

 

그런 의미에서 가을은 진정으로 슈게이징의 계절이다. ‘신발을 뚫어지게 쳐다보다’라는 나름대로 귀여운 뜻을 가진 ‘Shoegaze’ 음악들은 그 장르명처럼 ‘내 것’이 될 수 있는 음악이다. 1980년대 영국 인디 씬에서 생겨난 슈게이징 음악의 특성은 강한 노이즈 이펙트로 인한 몽환적인 사운드에 있다. 슈게이징 특유의 몽환한 느낌은 환상적이다.

 

선선한 가을 저녁, 너무 어둡지 않은 저녁 거리와 가로등 불빛이 조화를 이룬 거리를 걸어가며 듣는 노이즈들의 조합은 아름답다. 그래서 슈게이징 장르의 음악은 가을에 들어야 한다. 온전히 이어폰으로 흘러나오는 노래와 주변을 둘러보며 천천히 걸을 여유를 주는 공기가 존재하는 가을에.

 

Ride의 Vapour Trail의 가사 중 “First you look so strong then you fade away’라는 가사처럼, 여름에서 벗어난 해방감을 선사하는 가을은 빠르게 사라지고 우리는 겨울을 맞이하게 된다. 가을이라는 계절만이 가지는 분위기가 있다. 가을의 하늘과 공기는 너무 좋아 가을을 놓치는 것은 언제나 아쉽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가을은 갈수록 짧아져만 갈 텐데, 라는 생각이 들면 울적해지기까지 한다. 가을이 지나가기 전, 가을을 120% 즐기기 위해 들어야 할 슈게이징 음악 네 곡을 추천한다.

 

 

 

Slowdive – When the Sun Hits


 

 

 

When the Sun Hits는 영국의 슈게이징 밴드 Slowdive의 2집 [Souvlaki]앨범의 수록곡이다. 흔히 3대 슈게이징 밴드로 슬로우다이브,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라이드를 꼽곤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세 밴드 중 가장 가슴 깊은 곳을 울리는 것은 슬로우다이브의 음악들이다. When the Sun Hits 역시 차곡차곡 쌓이는 노이즈섞인 기타 선율이 모여 후반부 기타 리프에서 아름다운 압도감을 선사한다.

 

As the sun hits, she’ll be waiting

With her cool things and her heaven

Hey, hey, lover, you still burn me

You’re a song, yeah (Hey hey hey)

 

 

 

My Bloody Valentine – When You Sleep


 

 

 

아일랜드 출신 슈게이징 밴드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의 2집 [Loveless]는 반박할 여지 없는 슈게이징 장르의 바이블과도 같은 앨범이다.

 

그중 가장 잘 알려진 수록곡 When You Sleep는 슈게이징 음악의 정수를 보여준다.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은 슈게이징 장르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밴드로 평가받는데, 특유의 아주 강한 노이즈가 마치 새로운 차원의 소리를 듣는 듯한 음악적 경험을 준다.

 

1991년 발매된 [Loveless] 앨범은 When You Sleep 이외의 트랙들 역시 그 유기성과 특유의 몽환적인 분위기로 새로운 사운드를 선사한다. 트랙 간의 배치와 그들의 음악을 시각적으로 효과적으로 형상화한 앨범 커버까지 감상에 재미를 더한다.

 

When I look at you

Oh, I don't know what's real

Once in a while

And you make me laugh

And I'll see you tomorrow

And it won't be long

Once in a while

Then you take me down

 


 

Ride – Vapour Trail


 

 

 

라이드는 슈게이징을 대표하는 밴드들 중 가장 경쾌하고 밝은 사운드를 가지고 있다.

 

라이드의 데뷔앨범 [Nowhere]은 발매되자마자 큰 호평과 상업적 성공을 동시에 거두었다. [Nowhere]의 수록곡이자, 라이드의 대표곡 중 하나인 Vapour Trail은 초창기 라이드 특유의 몽환적이면서도 희망찬 분위기를 잘 나타내고 있다.

 

작곡가인 앤디 벨 역시 Vapour Trail에 대해 매우 쉽게 작곡된 곡인 동시에 쉽게 느낄 수 있는 곡이며, 자신이 그 당시 만든 곡들 중 가장 자랑스러운 곡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사랑을 비행운에 빗댄 가사가 아름다운 곡이기도 하다.

 

First you look so strong

Then you fade away

The sun will blind my eyes

I love you anyway

First you form a smile

I watch you for a while

You are a vapour trail

In a deep blue sky

 

 

 

선결 – 우리의 연애는 과대평가되어있어


 

 

 

마지막으로 소개할 곡은 한국의 슈게이징이다. ‘우리의 연애는 과대평가되어있어’는 2015년 발매된 선결의 1집 [급진은 상대적 개념]에 수록된 곡이다.

 

특이한 점은 이 앨범은 가사집이 제공되지 않아, 음원 사이트에서 가사의 원문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이는 감상자가 가사를 보며 읽는 대신 노래를 여러 번 들으며 노래를 만났으면 좋겠다는 창작자의 의도라고 한다. 자신의 귀에 들리는 대로 가사를 이해하고 가사에 귀를 맡기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곡이다.

 

이 곡은 공허하다. 가을 저녁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노래이다. 연애와 이별에서 오는 공허함을 몽환적이면서도 쓸쓸한 노이즈 섞인 소리로 표현하고 있다. 유독 마음이 가는 노래들이 있다. 나에게는 선결의 이 노래가 그러하다. 마음에 귀 기울이게 하는 곡이다. 쓸쓸하지만 어딘가 포근한 사운드를 듣고 있다 보면 우리는 마음을 들여다보게 된다.

 

당신의 마음에는 얼마큼의 공허함이 존재하는가. 음악은 빈 부분을 채우기도 하고 어루만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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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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