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감정 보증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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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언가를 '좋아한다'라고 입 밖으로 내뱉기 전에, 나 혼자 머릿속으로 돌려보는 나만의 프로세스가 있다. 총 3단계로 이루어진 이 프로세스는 다음과 같다.
1단계 : 이 감정이 진심인가? - 좋아한다는 마음의 실체에 대해 곰곰이 들여다본다. 단순히 스쳐 지나갈 호감을 좋아한다는 마음으로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고, 또 의심 해본다. 결국 좋아하는 게 맞다,라는 판단이 내려진다면 2단계로 넘어간다.
2단계 : 좋아하게 된 기간이 얼마나 됐는가? - '좋아함'이라는 감정에 대한 검증이 끝나면 내가 이 대상을 좋아하게 된 기간이 어느 정도가 되었는지 살펴본다. 이 단계에서 내가 잡고 있는 기준은 약 '한 달'이다. 한 달 동안 계속 보고 싶다든가, 자기 전에 자꾸 생각이 난다면 해당 단계는 무난하게 통과가 가능하다.
3단계 : '대상'에 대해 얼마만큼 알고 있는가? - 나를 툭 치면 백과사전처럼 대상에 대한 정보를 줄줄 읊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좋아하는 대상에 대해 샅샅이 알고 있어야 내가 남들에게 이 대상의 매력 포인트가 무엇이며, 어떤 점을 중점으로 바라보아야 하는지 확신을 가지고 남들에게 소개(혹은 추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3단계를 거치고 나서야, 나는 그제야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참... 피곤하게 산다,는 말이 내 귓가에 들려오는 듯하다. 아직도 회자되는 유명 드라마 속 "이 남자가 내 남자다 왜 말을 못 해!"라는 대사처럼, 나는 왜 좋아한다는 마음을 이렇게 어렵게 말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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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에는 그저 '같이 있으면 편안한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졸업 후 돌이켜보니 '아마 내가 그 애를 좋아했던 것 같아'라고 괜히 아련한 표정을 지으며 그 아이를 떠올리곤 한다. 친구들이 '이 정도면 너 @@@ 좋아하는 거 아니야?'라고 물어올 때도 '에이, 그 정도는 아니야'라며 내 마음의 크기를 축소시켰다.
"어떤 거 먹을래?"라며 나의 의견을 물어오는 사람들에게도, '아무거나', '난 딱히 싫어하는 음식이 없어서 괜찮아'라는 손쉬운 회피법으로 내 마음을 드러내는 데에 한 발 물러났다. 딱히 내가 싫어하는 음식은 없어도, 내키지 않았던 음식은 분명 있었으면서 말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난 매사에 '나의 마음에 대한 확신'이 적었다. 아니, 부족했다. 앞서 이야기한 프로세스를 돌려보기 시작한 것도 이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고 난 뒤부터였으니까.
내 마음을 증명할 수 있는, 철저한 증거를 남기기 위해 나는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해당 프로세스를 만들어 냈다. 적어도 이 단계들을 모두 통과한 마음이라면(!)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좋아한다'라고 말할 수 있는, 일종의 내 '감정 보증서'에 힘이 실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발급되는 나만의 감정 보증서는 한편으로 나의 기질적 측면의 아킬레스건이기도 했다.
본인의 마음에 확신을 가지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나는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는 수준이 아니라 내가 건널 다리에 행여 금이라도 가 있지는 않은지 몇 날 며칠을 확인하는 스타일로, 정신을 차려보면 내 주변의 친구들은 모두 돌다리 건너편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이 점은 내게 있어 늘 못마땅한 나의 단점 중 하나였다.
그런데 며칠 전, 친구들과 재미로 기질검사를 진행한 뒤 읽어 내려간 해설지에서 뜻밖의 위로를 받았다. 내 결과는 '신중형 패턴의 원칙주의자'로 나왔는데, 나의 행동 강점이 바로 이 타고난 신중함에 있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좋아한다'라고 말을 내뱉는 순간부터 그 말에 대한 책임이 나에게도 일정 부분 부여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 마음에 있어 신중하고 싶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단계를 걸쳐 나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었고, 이 과정을 통해 검증된 이 마음에 책임을 지고 싶었다.
여기서 비롯된 신중함은 나의 또 다른 강점임이 틀림없는데, 왜 나는 자꾸 '자기 확신 부족'이라는 단어로 나의 강점을 가려 바렸을까?
이제 나는 내가 무언가를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남들보다 로딩 시간이 조금 긴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물론 가끔은 나의 길어지는 로딩 시간 때문에 종종 남들과 타이밍이 어긋날 때도 있긴 하지만, 그 부분까지 나의 단점으로 끌어안아 나 자신을 더 이상 미워하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 나의 이 감정 보증서의 힘은 꽤 강력해서, 주변인들에게 내가 좋아하는 맛집이나 애정하는 공간, 인물 등을 영업할 때면 높은 확률의 성공을 자랑한다.
그럼 그냥 이거면 되는 거 아닐까? 누가 그랬다. 누군가를 미워하며 살기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다고. 더군다나 그 '누군가'가 나라면? 그건 너무 손해 보는 것 같다.
[백소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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