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움직이는 나의 집 베니 [공간]

움직이는 나의 집, 나의 가족, 자동차 베니 이야기
글 입력 2022.08.1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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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봤자 기계에 불과한 자동차에 우리 가족은 희한하게 이름도 붙이고 정도 붙였다.

 

15년 동안 함께 한 베라크루즈 SUV, 베니는 다른 집 차들과는 다르다. 적어도 우리 가족에겐 그렇다. 미국에서 가족과 함께 살게 되었을 때 베니도 그곳에서 처음 만났다.

 

이렇게 애착을 느끼는 이유는 아마 대륙의 서쪽 끝인 샌프란시스코에서 동쪽 끝인 뉴저지로 이사하게 되었을 때 숙소에서 보내는 시간을 제외하곤 16일 동안 차에서만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후에도 차를 타고 어딘가로 가는 그 과정에서 배우고 느꼈던 여러 감정들이 이 차를 특별히 여기게 해주었다.

 

그래서 이는 이동 수단이 아니라 공간에 대한 이야기다.

 

 

 

"도착지를 입력하세요"


 

차에 시동을 걸면 자동으로 내비게이션이 켜지면서 나는 소리. 여행을 떠날 땐 매일 아침 열시쯤에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짐을 싣고, 차에 올라탄다.

 

제일 처음 하는 것은 다음 목적지를 검색하는 것이다. 입력을 마친 다음 베니는 가드레일 하나 없는 미국의 널찍한 도로를 시속 100km로 달린다. 지나가는 풍경들은 단 한순간도 같은 것이 없다.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이 좋았다. 가끔 하고 있는 일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변화 없이 멈춰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특히 재수를 하던 때가 그랬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와 함께 차를 타곤 했다.

 

창밖으로 멀리 보이는 가로수와 사람들, 빌딩들이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가 타고 있는 이 차는 분명히 목적지로 달리고 있다. 빙 돌아 집으로 돌아가는게 다지만 그때마다 그 느낌은 미국에서의 여행을 떠오르게 해주었고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굴러가는 네 개의 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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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은 어머니, 아버지, 여동생, 그리고 나 모두 네 명이다. 뉴저지로 이동하는 중에 있었던 일인데 네버다 주에서 적정 속도 표지판을 못 보고 과속해서 달리던 도중 경찰에 붙잡힌 적이 있다.

 

물론 벌금을 무는 것으로 해결되긴 했지만 그 일을 시작으로 부모님의 언성이 높아졌고 우리는 뒷좌석에 앉아 꼼짝없이 차에 갇혀서 그 대화를 듣고 있어야만 했다. 그 차 안에 있는 시간은 어린 나이의 내가 감당하기엔 힘들었다.

 

그렇지만 그때의 일은 지금처럼 서로를 더 잘 이해하는 가족이 되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좋든 나쁘든 함께 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우리 차 베니는 같이 저녁을 먹을 때보다 더 많은 대화를 나누는 곳이 되었다. 가끔은 싸우기도 하고 서로의 생각을 말하기도 하지만 즐겁다.

 

마치 네 개의 바퀴가 다 움직여야 차가 움직이는 것처럼 이 장소는 우리 가족이 잘 굴러가게 해준다.

 

 

 

1번부터 마지막 트랙까지의 적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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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 타고 있는 동안은 가족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또 나만의 시간이기도 하다.

 

밤중에 달릴 때가 특히 그렇다. 여행 중에 차 안에 있는 모든 등을 끄고 맨 뒷자리에 누워서 창밖으로 하늘을 볼 때,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모두 잠든 사이(주로 밤 운전을 맡으시는 아버지를 제외하고)에 혼자서 가만히 생각들을 정리하거나 오늘의 특별한 일, 갑자기 떠오르는 것들을 노트에 적기도 한다.

 

밖의 풍경들이 늘 새로웠기에 카페에 앉아 있는 것과는 느낌이 다르다. 차가 움직이면서 나는 진동도 싫지 않았다. 차체가 흔들리면 내 몸도 흔들리고, 그 모습이 춤 같기도 하다. 가장 아끼는 앨범인 마일리 사이러스의 [Break out]의 1번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쭉 들으면서 누워있으면 그렇게 행복할 수 없다.

 

이제는 두 다리를 완전히 뻗은 채로 눕기엔 차가 많이 작아졌다. 사실 차는 그대로이고 내가 많이 자란 것이다. 차에 타있는 동안 여러 사람들 특히 우리 가족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때 주고받은 말들은 아직도 나의 가치관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힘들 때 기분전환을 하던 장소이기도 하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던 공간이기도 하다.

 

그런 고마운 베니가 요즘 들어 자꾸 시동이 켜지지 않는다. 차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내려야 하듯이 장장 15년 동안 함께 한 우리 차도 이제 보내줘야 할 때가 온 것일 뿐이다. 나의 추억이 되어주고 나의 성장을 지켜봐 준 베니는 마지막까지도 자연스러운 헤어짐에 대한 것을 가르쳐 주는 듯하다.

 

이제 이별해야 할 공간이지만 그 느낌은 남아 기억 속에서는 영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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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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